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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송어 Mar 13. 2024

다자이 흉내내기

2022, <사소한 고백>


1.

 해 질 녘 선선한 바람을 맞으며 불긋한 노을을 바라보며 걷는 일은 산뜻한 기분을 줍니다. 걱정 없이 활짝 웃을 수 있게 해주는 이와 함께하는 시간은 설레는 마음을 줍니다. 마음을 무겁게 짓누르는 무언가에 밀려서 쏟아지는 울음은 개운함을 줍니다. 도망가고 싶은 오늘을 잊으려 마셔보는 술은 씁쓸함을 줍니다. 타인이 내가 될 수 없다는 건 외롭습니다. 그게 그렇게 지독하게 외로워서 내 마음을 알아주는 시 한 구절을 만날 때면 가득 차는 충만함에 따뜻해집니다.     


2.

 외로웠습니다. 일어나지 않은 일들에 대한 상상을 자주 했습니다. 주로 그때그때 스치는 사람들과의 대화를 상상합니다. 내가 야라고 하면 당신은 예라고 답해주길 바랍니다. 상상 속의 나는 즐겁습니다. 언제나 아름답고 빛이 납니다. 100개의 상상 중에 한두 개 정도를 행동으로 옮겨봅니다. 비록 내가 상상대로 움직일지라도 그들은 절대로 상상과는 다른 말과 표정을 건넵니다. 기분이 언짢아집니다. 그런 내 모습이 추한 줄은 잘 알고 있습니다. 아니, 실은 알게 된 지 얼마 되지 않았습니다. 추한 나를 지켜보는 일이 괴롭습니다. 다시는 상상 따위 하지 않겠다고, 혹은 예라고 답해주지 않는 그대를 다시는 보지 않겠다는 다짐을 해봅니다. 그러면 다시 시린 외로움이 가슴을 감쌉니다. 다시 사람을 찾고 다시 또 상상 나라를 찾는 나를 만납니다.      

 가난이 창피했습니다. 통장 잔고가 만원이 안 되어도 후배들을 만나면 밥 한 끼 정도는 시원하게 쏘는 멋진 선배 노릇을 하고 싶었습니다. 그들이 나를 그렇게 불러주기를 원했습니다. 돈 버는 일을 티 나게 열심히 하는 것을 추하게 여겼습니다. 가난을 부끄러워하면서도 돈에 목매는 마음은 드러내지 않으려 부단히 노력했습니다. 그러면서도 샤넬과 프라다 백을 메는 친구들을 부러워했습니다. 그리고 미워했습니다. 진정한 삶의 가치를 모르는 그들이라며 비하했습니다. 따뜻한 음료와 차가운 음료 사이에 500원을 더 받는 카페에 가지 않는 나를 자랑스러워했습니다. 매일 500원을 아끼는 나를 예뻐했습니다. 원플러스원, 투플러스원, 5만원을 채워서 배송비를 아끼면 그렇게 뿌듯할 수가 없었습니다.     

 욕망 가득한 눈빛을 사랑으로 정의하도록 했습니다. 그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도무지 살아갈 수가 없는 것이라고 믿기로 했습니다. 이성의 손이 닿을 때 느껴지는 신체의 감각을 갈망합니다. 동시에 그런 내가 부끄럽습니다. 그래야만 살아갈 수 있는 나약한 내가 싫습니다. 그렇지만 그것 없이는 살아갈 수 없는 평범한 이성애자임을 받아들여야만 합니다. 또한 이러한 의식을 통해 우월감이라도 느껴야지 살아갈 수 있는 거랍니다.   

   

3.

 하고 싶은 말은 늘 넘쳐나고, 매일 매일 무언가를 써도 매일 매일 쓰고 싶은 말들이 떠오릅니다. 동시에 언어로 무언가를 규정하는 것에 많은 두려움을 느낍니다. 모순을 받아들이는 것, 변화하는 나를 관찰하는 것은 늘 두렵습니다. 타인에게 관대한 만큼 나를 그렇게 대해보려 애를 씁니다. 타인의 시선이 아무렴 상관이 없다가도, 그것이 혹여나 진리일까 크나큰 두려움에 아무에게도 말하지 못한 채 도저히 떨쳐낼 수 없을 때가 있습니다. 내가 나를 모르는 걸 당연하게 받아들이다가도 그 역시 부끄러워집니다. 명확하게 파악되지 않는 이유들 중에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것은 아마도 20 후반이라는 숫자일 듯 합니다. 그 숫자와 그것을 바라보는 여러 의식은 너무나도 공포스럽기에 내 입술은 더더욱 나이는 숫자뿐이라며 뻔뻔스럽게 벌어지기를 즐깁니다. 남과 나를 속이는 일은 저에게 매우 익숙한 일이라 무엇이 속이는 거고 무엇이 진실인지 때때로 헷갈립니다. 그럴 수밖에 없는 삶을 살아왔습니다. 부끄러운 것을 부끄러워하지 않으려 애쓰며 살아갑니다. 그런 나를 안쓰럽게 여긴 누군가가 어깨를 내어주길 바라며 살아갑니다. 그걸 사랑이라 부르며 누리고 싶습니다.      


4.

 여기까지 써 내려본 문자가 오늘로 과거가 되기를 바라봅니다. 나와 멀리 떨어진 당신께서 이 글을 읽을 때쯤에는 자신 있게 현재의 나는 그렇지 않다며 여유 있고 아름다운 미소를 짓고 싶습니다. 그렇지만 사실이 그렇지 않더라도 그런 척을 할 테지요. 사랑받고 싶으니까요. 그래야만 살아갈 수 있으니까요. 살고 싶습니다. 사람들은 불편한 감정을 싫어하고 피합니다. 그리고 저는 외면당하고 싶지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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