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자나팜정 이라는 약을 새로 받았다. 지난 번의 여자 원장님께 계속 진료를 받는 건줄 알았는데 그렇지 않고, 처음에 만난 체크 셔츠가 유독 어울리지 않는 원장님을 다시 만났다. 태닝한듯한 피부가 건강해보이시는 분, 오늘도 어울리지 않는 체크 셔츠를 입고 계셨다.
현재 나에게 가장 중요한건 잠인데, 바뀐 약을 먹으면서 지난 나흘간 아침 잠이 안 깨는게 불편하다고 얘기했다. 그랬더니 선생님은 살짝 귀찮은 기색을 보였다.
지역에서 나름 잘 나가는 병원인만큼 체크셔츠 원장님은 베테랑답게 말이 아주 빠르시다. 말이 어찌나 빠른지 내가 그 사이를 비집고 들어갈 수 없다. 어쩌면 그러기 위해 빨리 말하는 건지도 모르겠다. 그래서 나한테 심리상담을 받으라는 거겠지. 찡찡대는 소리 나한테 하지말고 상담사에게 가서 하렴. 뭐 이런 의미.
뭐 어쨌든 의사에 대한 기대는 많지 않으니 나쁘지 않다. 오히려 나의 세세한 속사정보다 증상에만 집중해주니 오히려 고맙다. 그런데 오늘 진료 받으면서는 특유의 의학 상식 자랑하는 듯한 뉘양스를 풍기면서 맞는 약을 찾아가는데에는 시간이 걸린다. 이러이러한 과정 속에서 이러이러하게 맞는 약을 찾아간다. 고 하셨는데 내가 전에 다른 병원에 다녔던걸 전혀 모르는 눈치 같았다. 그치만 그 사이를 비집고 들어가 얘기할 틈이 없었다. 알든 모르든 상관 없을거 같기도 하고, 나중에 필요하다면 얘기를 해봐야겠다. 가능하다면.
그리고 한가지 궁금한건 전에 병원에서는 우울보다는 양극성장애(조울)로 진단을 받았었는데 이번에는 심한 우울과 신체화로 진단이 바뀌었으니 우울한 성향이 양극으로 벌어질수도 없게 커진걸까, 조증 증세는 전혀 없어진걸까, 자가 진단이 어려운데 어떻게 바라보면 좋을지.. 이걸 얘기해봐야할지 말아야할지 그게 좀 고민이다.
어찌됐든 4일에 한번 약 타러 가는게 좀 귀찮기도 하고 진료비도 아낄겸 조심스럽게 일주일치를 받아갈 수 있을까요 물어봤는데 결과적으로는 안 된다고 했다. 내가 병원에 다닌지 얼마 안 되었기 때문에 맞는 약을 찾기까지 정해진 기간이 있다는 답변을 받았다.
체크의사쌤이 당부한건 자기 전에 물을 적당히 마시라는데, 글쎄 그걸 고칠 수 있을지 그리고 나에게 그걸 고칠 의향이 있을지 모르겠다. 왜냐면 자기 전에 루이보스티 한사발 드링킹 하고 자는게 이미 루틴으로 자리 잡았기 때문. 그치만 잠에서 깨지 않는게 중요하다고 하니 이번주 지켜보면서 고쳐보든지 그대로 가던지 선택을 해봐야겠다. 그리고 사실 내가 매번 화장실에 갔는지 안 갔는지 잘 기억이 안 났는데 그 순간 매번 간다고 말이 나와버렸다. 진짜 그랬는지 아닌지 여전히 긴가민가하지만, 이미 그렇게 말해버렸으니 그러고 있는 것도 같다.
오늘은 오트 콜드브루 덕분인지 하루 종일 기분이 괜찮았다. 의사가 내 말을 듣고 싶지 않아해도 별로 개의치 않고, 그냥 내가 누군가에게 내 증상을 말하는 것이 어쩌면 도움이 되는 것도 같다. 하다 하다 피곤하면 다른 원장한테도 보내고 알아서 하겠지.
그리고 어제 차가 박살나서 공업사를 다녀왔다. 이것 저것 다해서 150은 깨질거 같은데 보험으로 안 하려다가 그냥 하기로 했다. 어차피 적금 만기도 기다리고 있고, 하는 김에 하는게 마음이 편할 것 같다. 그래서 차 수리하는 동안 오늘부터 12만 키로 넘게 탄 썩은 모닝과 하루를 보냈다. 사진에는 그만큼 표현이 안 되었는데 정말 써금써금 그 자체이다. 후방 카메라도 없다. 낼 모레까지 어디 안 긁히고 잘 타야할텐데.. 근데 긁혀도 티도 안 날 거 같다. 근데 다른 차를 긁으면 문제겠지만은..
어제는 해변의 폴린을 봤다
에릭 로메르 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