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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Chris Aug 18. 2017

지중해의 길냥이들 열일곱 번째 이야기

사냥 못하는 집사야!! 도마뱀은 내 선물이야.

몇 주 전 길냥이 만두에게 먹이를 주려고 현관문을 여는 순간 뿌듯한 얼굴을 한 만두 눈에 띄었다. 그리고 이내 흠칫 놀라게 만드는 물체가 함께 시야에 들어왔다.


현관 앞 발판에 놓여있는 이상한 물체...  꼬리 잘린 도마뱀.

혹시나 움직일까 싶어서 잠시 쳐다봤는데 도저히 움직일 생각을 하지 않는다.

나를 한번 보고 도마뱀을 한번 보고.. 뿌듯해 하는 만두를 보니 녀석이 나를 위해 잡아온 것임이 분명하다.


(두 번째 사진에 꼬리 잘린 도마뱀 사진이 등장하니.. 원치 않는 분은 스크롤해서 넘겨버리시길...)









왜 안가져가? 선물이 맘에 안드니? 넌 이게 얼마나 좋은건지 모르니???

아침 식사를 하면서도 내가 도마뱀에 대한 반응이 없자 계속 도마뱀을 주시하고 있다.

"집사야.

덩치 크고 느려 터져서 사냥 못하는 너희들을 위해서 내가 특별히 잡아 온 거라고.

너희가 내게 아침, 저녁으로 바치는 음식에 대한 기특함에 부응하는 작은 선물이라고 해도 좋고..

어쨌거나 두 손 벌리고 기뻐하라고...-_-!!!"


음식을 입으로 먹는지 코로 먹는지 모를 정도로 뚫어지게 주시하는 녀석을 위해 도마뱀을 앞에 두고 앉았다.

"네가 잡아온 거야?

나에게 주려고?

도마뱀이네. 넌 사냥도 잘하는구나.... 주저리주저리.... 주저리"

만두가 알아듣건 말건 한참을 떠들다가 주방으로 들어가서 만두에게 음식을 담아주는 것과 똑같은 플라스틱 접시를 가져왔다.  


내 앞에서 먹다가 다리 하나만 남겨주지 ... 치사하게 혼자서 먹으려고 가지고 들어가냐?

플라스틱 접시로 도마뱀을 떠 올린 뒤 겉으로는 마치 대단한 선물을 받은 양 호들갑을 떨었지만 집안으로 들어서자마자 바로 휴지통으로 직행~~~

나의 도에 넘치는 칭찬이 마음에 들었는지 자기 아침 식사를 깨끗이 비운 만두의 표정은 더없이 만족스럽다.


"게으른 집사에게 사냥을 해주다니... 정말 보람찬 하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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