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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Chris Aug 31. 2017

지중해의 길냥이들 열여덟 번째 이야기

아픈 손가락.. 비실비실 텅

깨물면 안 아픈 손가락이 없다지만 더 아픈 손가락은 있다. 우리가 먹이를 주는 길냥이들 중에도 다른 냥이들에 비해 유독 신경이 가는 녀석이 있다.


아기 고양이 무리 중의 하나인 비실비실 텅이 그 녀석이다.

텅이란 이름은 늘 혓바닥을 조금 내밀고 있다고 해서 딸아이가 지어준 이름이다.

녀석이 혓바닥을 내밀고 있는 이유는 앞니가 빠져나가서 그 사이로 혀가 삐죽 나와있는 것이다. 녀석은 태어나면서부터 문제가 많았는지 유독 작고 비실거리며 이빨 또한 성한 것이 없다.  

내가? 나도 아기때는 혓바닥을 안 내밀었다고...
식탐 대마왕 


성한 이빨이 없다 보니 부드러운 것만 먹어야 하기 때문에 쉽게 허기가 지는 듯 유독 식탐이 많다. 

고양이 비스킷처럼 딱딱한 음식은 먹지 못하지만 부드러운 음식을 내놓으면 쏜살같이 달려들어 길냥이 무리들을 뚫고 들어가 얼굴을 묻고 음식을 먹고는 한다. 


때때로 너무 거칠게 달려들어서 다른 냥이들과 문제를 일으킬까 걱정이 되고는 했는데 희한하게도 텅만큼은 모두 내버려두는 분위기다. 오히려 텅이 달려들면 다른 길냥이들은 자리를 터주거나 다른 접시로 옮겨가며 텅이 먹이를 먹도록 양보를 한다. 


어느 날 저녁 주인과 바닷가를 산책하던 그레이 하운드 종의 개 한 마리가 먹이 주는 곳에 달려들었다. 언제나 그렇듯 모든 냥이들이 혼비백산하여 철망 뒤로 달아났는데 텅만 제 밥그릇 앞에 남아서 온몸의 털을 곤두세우고 개와 싸울 태세를 취해 모두를 놀라게 했었다. 


먹이를 주기 시작해서 끝날 때까지 끝없이 끝없이 먹는 텅. 

먹이에 대한 집념 덕분에 오늘내일할 것처럼 비실거리던 녀석은 더디지만 꾸준히 자라나 성묘가 되었다. 


하지만....

녀석이 먹는 양은 다른 냥이들의 몇 배가 되는대도 녀석이 자라는 것은 더디고 더디다. 아마도 몸속에 여러 가지 문제를 안고 있는 것 같다. 

수의사가 TNR을 시키기 위해 데려갔다 오면서 몇 가지 체크를 한 것 같기는 하지만 특별한 예방을 해 주었는지는 알 수가 없다. 

아기때부터 늘 붙어 다니는 텅과 귀염둥이...

아기 때부터 먹이를 주어서인지 어느 날 불쑥 우리에게 다가들어 만지는 것을 허락하고 심지어는 자기 잠들 때까지 쓰다듬으라고 주문까지 하는 텅. 

특히나 딸아이의 손길을 좋아해서... 텅이 옆에 벌러덩 드러누우면 딸아이는 그 옆에 쭈그리고 앉아서 손발이 저리도록 녀석을 쓰다듬고는 한다. 


비실거리기는 하지만 겁 없고, 당돌한 녀석... 요 녀석이 무리 없이 자라서 완전한 성묘가 되면 무리를 휘어잡지 않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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