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골짜기 의료정보학 이야기 번외편 최종화
이번 산골짜기 의료정보학 이야기 최종화는 돌고 돌아 의료정보학의 알파이자 오메가인 EHR 이야기로 마무리를 지어볼까 합니다.
코로나가 전 세계를 강타한 2020년 올해 거의 대부분의 컨퍼런스는 온라인으로 치뤄졌고 그동안 인터마운틴이 써너(Cerner)에 갖다바친 돈을 얼마라도 뽑을 겸 필자가 올해는 꼭 한번 가보려고 했던 Cerner Health Conference (CHC)도 결국 지난주에 온라인으로 열렸습니다. 써너 컨퍼런스는 원래 본사가 위치한 유타보다 더 시골인 미저리주의 캔자스 시티에 열리는데 생각하시는 동화 오즈의 마법사의 그 캔자스 맞습니다. 한국인들이 포항 하면 포항제철, 울산 하면 현대중공업/자동차를 생각하는 것처럼 캔자스 사람들은 써너에 대한 자부심이 크고 실제로도 써너의 지역 경제 기여도는 절대적입니다.
써너는 EHR 시스템 탑 벤더로 지난 10년간 고속성장을 거듭하였고 그에 비례해 자체 컨퍼런스도 갈수록 크고 성대해졌습니다. 볼거리도 많고 다양한 고객사들에서 발표도 하다보니 몇년 전만 해도 교수나 연구원들이 Travel support (일년에 한두번 본인이 원하는 컨퍼런스에 보내주는 일종의 혜택)로 AMIA같은 의료정보학 학술대회를 선택하는 경우가 대부분이었으나 지금은 써너나 에픽, 또는 HL7 FHIR의 컨퍼런스를 선택하는 경우가 흔해졌습니다.
올해의 써너 컨퍼런스에서는 스크립스 연구소의 에릭 토폴이 둘째날 첫 연사로 나서 주목을 받기도 했습니다. 토폴은 의료 분야에서의 AI의 광범위한 도입 현황과 비전, 코비드 19과 연계된 AI의 활용 케이스를 생생하게 소개하였는데, 단순히 AI 짱 좋아요가 아닌 현재의 미국의 의료시스템과 EHR이 갖고 있는 문제점들을 AI가 어떻게 해결할 수 있는지 구체적이고도 실제적인 해결 방안들을 명확하게 제시하였고 필자는 무척 감명받았습니다. 이번 주제가 EHR이니만큼 인공지능 얘기는 건너뛰고 토폴의 슬라이드 중에서 EHR의 문제점을 지적한 내용을 공유하자면 아래와 같습니다.
특히 위에서 인용한 저 논문은 Annals of Internal Medicine에 게재되고 써너의 SVP이자 Informatics Officer인 David McCallie가 공저자로 들어갔는데, 데이터는 써너의 빅데이터 Analytics 플랫폼인 LightsOn에서 긁어온 지라 거의 대부분의 써너 고객사 병원의 데이터로부터 뽑아낸 통계라고 볼 수 있습니다. 대략 전미 병원의 20% 남짓 커버한다고 봐도 무방하고 필자가 아는 한 이정도로 대규모 EHR 데이터를 뽑아낸 실증 연구는 보기 드물 것 같습니다.
EHR이 공공의 적이 된 것은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지만 이 논문의 수치를 보면 상황이 정말 심각해보입니다. 평균적으로 OutPatient 한명당 16분 이상의 시간을 EHR에 썼다는 겁니다. 한국에선 그 시간이면 환자 5명을 보고도 1분이 남는데 그러니 의사들이 EHR을 싫어하는 것도 무리는 아닙니다. 단순히 시간만 많이 뺏기는 것이 아니라 문제점이 거의 총체적인 수준인데 일일이 나열하자면
1. 일단 입력해야 할 데이터가 너무 많다.
2. 그런데 유저 인터페이스가 조악하여 입력하기가 힘들다.
3. 기껏 입력했더니 저장이 안되거나 뭐? 시스템 반응속도가 너무 느리다.
4. 그러면 예전에 입력했던 이전 환자 데이터라도 불러왔으면 좋겠는데 (상호운용성) 그것도 잘 안된다.
5. 그래서 EHR 시스템 붙잡고 씨름하느라 환자와 인터랙션할 시간이 부족하다.
6. 그런데 EHR 시스템 가격은 너무 비싸다 뭐뭐?
7. 그래서 병원 경영진에 불만을 토로해도 다른 시스템은 이보다 더 하다고 하더라 뭐뭐뭐?
이쯤되면 이 시스템의 존재의 이유를 물어야할 판인데, 그럼 EHR은 대체 어쩌다가 이 지경이 된 걸까요. 현재 EHR의 문제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두 가지, 현재 상용 EHR 시스템의 역사와 EHR 비즈니스의 본질을 들여다 볼 필요가 있습니다.
먼저 역사부터 살펴봅시다. 필자의 블로그 시리즈를 처음부터 꾸준히 읽어보신 어차피 다 저랑 아는 분들이라면 의료정보학 선구자인 Homer Warner나 Edward Shortliffe가 최초로 개발한 시스템이 Electronic Health Record가 아닌 Clinical Decision Support System이라는 것을 기억하시길 바랍니다. 즉 원래 병원정보시스템이 처음 개발된 이유는 컴퓨팅 파워를 활용해서 복잡한 의료 의사 결정을 지원하는 것이였지 단순히 종이 차트를 전자화하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이건 어찌보면 당연한 것이, 1960-80년대까지는 컴퓨터가 어마어마하게 비싼 물건이었기 때문에 종이차트를 전자화하면 훨씬 더 많은 비용이 들었고, 따라서 뭔가 확실한 "효용"이 있지 않고서는 그렇게 할 이유가 없었습니다. 1970년대 최초의 EHR 도입 사례중 하나로 알려진 인디애나의 Regenstrief Institute의 EHR도 비용문제로 결국 쓰지 않게 되었으며, 결국 EHR이 미국 각 병원에 제대로 도입되기 시작한 것은 개인용 컴퓨터, 일명 PC가 급속도로 보급된 1980년대 이후입니다. 학술적으로 EHR의 개념과 기능이 제대로 정의된 것은 Instutute of Medicine에 의해 1991년에야 이루어졌습니다.
초창기의 EHR은 대부분의 병원들이 각 부서 단위로 자기들이 필요한 시스템을 각자 개발하였습니다. 그래서 주로 병원 내에서 규모가 크고 돈이 많은 부서들인 Cardiovascular, Intensive Care Unit, Emergency 등의 입원환자 위주로 개발되었습니다. 지금은 거대기업인 Epic이나 Cerner도 이 시기에 창업했으며, 처음 시작은 지역 기반의 병원 한두군데에서 시스템 개발 용역을 하는 소규모 회사였었습니다. 시간이 흘러 다양한 부서에서 각자 제각각인 시스템들이 운용되자 이때부터 시스템 및 데이터 통합 문제가 발생하기 시작합니다. 예를 들어 병원에 응급환자가 들어오면 환자의 첫 등록은 ER 부서의 EHR에서 이루어집니다. 이후 Triage를 하고 환자가 입원으로 넘어가게 되면 Inpatient EHR로 데이터가 넘어가야 하는데, 이 시스템들은 각자 따로 노는 시스템이기에 데이터가 연결이 안되어 있었습니다. 그래서 예전에는 아래 스크린샷처럼 한 화면에 여러 시스템을 띄워놓고 필요한 곳으로 일일이 복사해서 붙여넣기를 하곤 했는데, 이걸 몇십개 병원 / 부서 / 시스템간에 해야 된다고 상상해 보시기 바랍니다. 싫어 안해 못해
이렇게 산발적으로 활용되던 EHR은 2009년 HITECH ACT법안에 의해 시작된 Meaningful Use 프로그램에 의해 전환점을 맞이하게 됩니다. 2007년 리만 브라더스 파산으로 촉발된 금융위기를 타개하기 위해 미국 정부는 천문학적인 돈 찍어내기로 경기부양에 나섭니다. 그런데 돈을 그냥 뿌릴수는 없고 뭔가를 하긴 해야 줄텐데 그래서 나온 정책 중 하나가 Meaningful Use 프로그램입니다. EHR 시스템을 활용하는 병원과 의사들에게 인센티브를 줌으로써 병원정보화도 앞당기고 헬스케어 IT시장도 키우며 경기 부양까지 하는 효과를 노린 것이었고, 50 Billion 달러에 달하는 인센티브는 그야말로 강려크해서 2010년에 20%남짓이었던 EHR 도입율은 2017년까지 100%에 가깝게 수직상승합니다. 그와 함께 EHR Top 2 벤더인 Epic과 Cerner은 폭풍성장과 함께 전성시대를 맞이하게 됩니다.
그러면 이렇게 커진 상용 EHR 시스템 개발사들이 어떻게 비즈니스를 하고 있는지 살펴봅시다. 어떤 "업"의 본질을 보는 좋은 방법 중의 하나는 그 업이 어떻게 돈을 벌어들이는가, 즉 비즈니스 모델을 보는 것입니다. 일례로 맥도날드는 햄버거가 아니라 부동산으로 돈을 번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창업자인 레이 크록의 얘기이기도 하고 다큐멘터리와 영화로도 알려져 있습니다). 필자는 미국에서 맥도날드에 갈 때마다 도대체 이 가격에 어떻게 햄버거가 나올까 궁금하곤 했는데, 물론 맥도날드 햄버거 품질이 그닥 좋진 않다고는 해도 다른 가게는 애초에 그 가격에 햄버거를 만드는 것 자체가 불가능할 정도로 싼지라, 결국 맥도날드는 햄버거 팔아서는 전혀 돈을 남지기 못합니다. 비결은 맥도날드의 엄청난 보유 부동산과 매장의 입지 분석 능력인데, 즉 햄버거는 손해보는 수준으로 팔아 압도적인 가성비로 손님을 끌고, 그로 인해 주변의 유동인구가 늘어나면 점포의 부동산 가치가 올라가며, 그 돈으로 매장을 늘려서 또다시 부동산을 사들이는 것이 맥도날드의 핵심 비즈니스 모델입니다.
그럼 EMR 회사인 써너와 대표적으로 잘 알려진 IT기업인 구글의 지주회사 알파벳과 마이크로소프트의 재무구조를 비교해 봅시다. 알파벳의 지난 2년이내의 Annual report를 살펴보면
전체 Revenue가 약 $46 빌리언 (50조원) 정도인데 Cost of revenue의 대부분은 구글 서버 운용 비용이며, 연구개발이 $7빌리언 정도로 비중이 높고 Sales & Marketing은 10% 언저리에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Administrative는 5% 수준인데 주력 사업이 검색엔진 기반 인터넷 기업인지라 낮은 편이라 할 수 있습니다. 마이크로소프트의 경우를 보면,
매출은 윈도우와 오피스로 대표되는 제품(Product)과 클라우드(서비스) 양대 라인에서 나오고, 비용을 보면 연구개발이 약 13%로 상당히 높고 Sales & Markering이 15%인데, 마이크로소프트가 엔터프라이즈 시스템 위주 사업을 한다는 것을 고려하면 알파벳에 비해 높은 것이 이해가 갑니다. 그리고 왜 사람들이 구글 고객 서비스 욕하는지도 그럼 써너의 재무제표를 봅시다.
비용에서 두가지 항목이 눈에 띕니다. Sales and client service가 무려 47%라는 것과 위의 두 회사에서는 있었던 R&D 항목 자체가 없습니다. 한마디로 버는 돈의 거의 반을 세일즈와 서비스에다가 쓰고 R&D가 없으며 S/W 개발은 13% (여기에는 대충 신규 컴포넌트 개발이 포함되어 있다고 합니다) 정도에만 쓴다는 것입니다. 조금 자세하게 Sales and client service가 포함하는 항목을 보면 아래와 같이 나옵니다.
Sales and client service expenses include salaries and benefits of sales, marketing, support, and services personnel, depreciation and other expenses associated with our managed services business, communications expenses, unreimbursed travel expenses, expense for share-based payments, and trade show and advertising costs.
결국 세일즈맨 월급과 인센티브 주고 마케팅, 홍보 비용쓰고 서비스 라인과 오만가지 비즈니스 간접 지원에 돈을 다 쓴다는 건데, 그러니 위에서 말한 EHR 시스템이 왜 "비싸면서도 거지같은지" 이해가 됩니다. 기본적으로 EHR 회사의 비즈니스의 본질은 서비스업인 것입니다. 서비스업이 본질인 것이 문제가 아니라 제품을 개발해야하는 회사가 서비스가 우선이니 그게 문제입니다. 엑센추어나 옵텀(서비스사업부)처럼 남이 만들어놓은 제품을 잘 쓸수 있도록 지원하는 컨설팅을 업으로 삼는 회사는 돈을 벌면 인력 개발과 교육 프로그램을 개선하는데 쓰고 그것이 서비스 품질 향상으로 이어집니다. 근데 써너처럼 제품 자체를 개발해야 하는 회사가 버는 돈의 반을 세일즈와 지원서비스에 쓰고 연구개발은 하지 않으니 좋은 제품이 나올 수가 없습니다. 이 상황은 Epic을 제외한 (Epic의 독특한 전략과 경영스타일은 전편에서 따로 다뤘습니다) 대부분의 EHR회사에 해당되는데, 특히 써너가 좀 심각하기로 유명합니다.
정상적인 시장논리가 작동하는 곳이라면 애초에 비싸고 거지같은 제품은 아무도 안 살테니 싸고 거지같은 제품으로 갈아타던가, 경쟁을 통해 비싸고 좋은 제품을 개발하게 되고 시장에서 선택받으며, 기술 혁신을 통해 시간이 지날수록 싸고 좋은 제품으로 발전해야 합니다. 하지만 이 바닥에선 그게 안되는데, 그럼 도대체 고객사인 의료기관들은 왜 이걸 알면서도 비싼 돈을 내고 상용 EHR을 쓰고 있을까요? 이렇게 된 과정을 보면 의료분야의 특수성과 결합된 일종의 순환논리인데, 메이저 헬스케어 시스템의 경우 대개 의사결정 패턴이 아래와 같습니다.
1. (2009년) 정부에서 EHR 시스템을 도입해 쓰면 돈을 준댄다 오오오!!
2. 돈 풀어 경기 부양해야 해서 시간이 얼마 없단다. 급하다. 만들어 쓸 시간 없다. 어디 다 되어 있는 제품 그냥 사다 쓰면 안되나.
3. EMR 회사 세일즈맨들이 다운타운의 제일 비싼 호텔에서 제품 설명회를 한답니다. 일단 가서 밥이라도 먹고 옵시다.
4. 3번 과정을 수십번 반복한다. (......)
5. 마켓이 작고 제품이 다 거기서 거기고 세일즈들도 지들이 무슨 말 하는지도 모르는 것 같고 아오 의사결정 머리 아프다. 그래서 옆에 Mayo랑 Kaiser는 뭘로 결정했대?
6. Epic or Cerner
7. 그럼 나도 그걸로. 어차피 거기서 거긴데 괜히 다른걸로 결정했다가 잘못되면 내가 책임져야 하니까.
8. Epic or Cerner: 애플리케이션 500개 패키지로 계약하시면 10억 불, 1000개 패키지로 계약하시면 11억불, 2000개 패키지로 계약하시면 12억불입니다.
9. 엄청 비싸네. 다시 생각좀 해볼까. 5번으로 간다. 그래봐야 결론은 다시 9번으로....
10. 어차피 사는거 2000개 패키지로 가자. 어차피 거기서 거긴데 괜히 뭐 빼놨다가 잘못되면 내가 책임져야
하니까.
11. 그렇게 12억불을 주고 산 시스템은 애플리케이션 2000개짜리 중에 주로 쓰는 건 50개 쯤 되는 패키지로서 넣어야 할 데이터 항목 수는 미친듯이 많고 오더 하나 넣을때 레이턴시는 3-5초쯤 되고 사용자 인터페이스는 허접하였다.
12. 의사들 참다참다 터지고 그때마다 컨설턴트들이 광속으로 달려와 교육과 지원서비스로 어찌어찌 막음.
13. 의사들 결국 대폭발. 경영진들 사태가 심각하다는 걸 그제서야 깨달음.
14. 아놔 이 사태를 어쩌지. 어떻게 고칠수 있는 문제도 아니고 확 갈아엎어야 하나. 생각좀 해보자. 5번으로 간다.
15. 그래봐야 결론은 다시 14번으로 (..............)
그럼 반대로 EMR 회사는 왜 연구개발과 제품 혁신을 하지 않을까요? 이것도 순환논리인데 대체로 패턴은 아래와 같습니다.
1. (2009년) 정부에서 EHR 시스템을 도입해 쓰면 돈을 준댄다. Thank God, show me the money!!
2. 콧대높은 병원들이 왠일로 여기저기서 자꾸 궁금한거 물어본다. 다운타운에 제일 좋은 호텔 잡아라.
3. 우리 제품은 90년대 로컬 병원에서 쓰려고 개발한 거라 아키텍처도 안되어 있고 기술부채도 많은데. 뭐 어차피 다른 회사도 다 거기서 거긴데 일단 팔고 보자.
4. 의사들한테 오는 전화로 고객 센터 불이 남. 컨설턴트들 오후에 짐싸서 밤비행기로 보내고 불 다 꺼질때까지 돌아올 생각 말어. 사람 부족해? 옵텀이랑 라이도스에 전화 돌려! 있는대로 무조건 다 보내라고 해.
5. 사용자 세션은 늘어나는데 시스템이 스케일 업이 안되어 계속 장애 터지고 성능은 느려짐. 오더 하나 넣는데 5초 걸린답니다. 그래도 돈 좀 벌었는데 제품개발 좀 할까?
6. 뭐, 메이저 병원 C도 EHR 도입 사업한다고? 얘들아 세일즈 애들 다 풀어. 인센티브 맥스로 걸고 실탄은 무제한으로 써도 된다고 해. 돈 벌은 걸로 풀 베팅하자 (................)
7. 이왕 파는 김에 풀패키지로 팔자. 다 거기서 거기임.
8. 일단 팔고나면 그때부터 새 고객사에서 4번 상황 시작
9. 4-8번 연속재생
이 악순환을 잘 살펴보면 결국 문제의 시작은 1번 항목, 즉 인위적인 경기부양을 위한 인센티브 살포 기반의 EHR 도입이었고, 단시간 내에 진행하려다 보니 의사결정이 빨리빨리 위주의 졸속으로 이뤄지며 결국 악화가 악화를 구축하는 악순환이 벌어졌음을 알 수 있습니다. 물론 어떤 정책이든지 강력하게 주도하면 그에 따른 부작용은 항상 있으며, 그래도 그렇게 드라이브한 덕분에 단기간에 병원전산화가 이뤄지고 데이터 기반 의료의 인프라가 갖춰진 성과를 내었습니다. 이 기반 위에서 All of us로 대표되는 빅데이터 프로젝트, 정밀의료, 가치 기반 지불시스템 (Value based care) 개혁, 의료 인공지능, Digital Transformation 등이 가능해졌음을 부인할 수 없는 사실입니다. EHR에 대해 불평하는 의료인들도 시스템을 어떻게든 개선하는 방향으로 가고 싶어하지 그렇다고 종이차트 시대로 다시 돌아가고 싶어하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어쨌든 당면한 문제는 문제이고 이제부터 어떻게 해결해 나갈지 다같이 머리를 맞대고 고민해야 할 때입니다.
다시금 옛날 의료정보학의 초창기로 돌아가 이 분야의 선구자들이 했던 행적을 돌아보면 그들은 기본적으로 "효용"과 "가치"를 찾는 것에서부터 시작했고 항상 그 중심을 잃지 않았다는 것을 떠올리게 됩니다. EHR이든 인공지능이든 디지털 헬스든 결국은 환자를 케어하는 의료 현장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만들어진 것이라는 기본을 잃지 않으면 시행착오를 겪고 시간이 걸릴지라도 결국 조금씩 개선하는 방향으로 나아갈 수 있습니다. 하지만 여기서 다른 잿밥이 끼어들어오면 본래의 목적은 변질되고 문제는 엉킨 실타래처럼 복잡해져서 어디서부터 뭐가 잘못되었는지 알수 없게 됩니다.
이번 최종편을 쓰면서 EHR의 산적한 문제들을 어필하긴 했지만 해결책으로 필자가 특별히 뭔가 비결같은걸 알려드릴 지식이나 수준은 안되기에 마지막은 도움될만한 옛날 자료 몇개 공유하는 것으로 마무리하려고 합니다. 필자가 이 분야에 10년 넘게 있으면서 계속 Classic한 안 팔리는 Clinical informatics 연구를 해왔고 딥러닝 한 번 안해본 고리타분한 스타일이라서 그렇긴 합니다만, 필자는 의료정보학의 오래된 선구자들과 선배들의 역사 이야기를 좋아하고 그 속에 해답이 있다고 생각하는 편입니다. 그 양반들이 했던 것처럼 복잡한 문제에 부딪혔을 땐 항상 뒤로 한발자국 물러서 기본으로 돌아가면 느리지만 결국 꾸준히 전진할 수 있다고 믿습니다. 아, 그리고 번외편은 여기서 끝이지만 EHR이 앞으로 어떤 방향으로 나아갈지 업계와 학계의 재미있는 이야기들을 앞으로 짤막짤막한 단편 위주로 부담없이 올려볼까 계획중입니다.
그동안 번외편도 재미있게 읽어주신 많은 분들께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National Library of Medicine은 2004년부터 의료정보학 분야의 선구자들의 이야기들을 역사로 보존하기 위해 생존한 인물들을 인터뷰하여 기록으로 남기기 위한 작업을 시작합니다. Joan S. Ash와 Dean F. Sittig이 인터뷰를 주로 담당하였고 17명을 목표로 시작한 프로젝트는 2013년 총 15명의 인터뷰 기록을 출판하면서 마무리하게 됩니다. 전체 자료는 아래의 사이트에 공유되어 있습니다.
https://lhncbc.nlm.nih.gov/project/medical-informatics-pioneers
모든 기록이 다 의미있지만 필자가 가장 좋아하는 세 명의 선구자 Donald Lindberg, Homer Warner, Clem McDonald 의 이야기들을 특히 추천합니다. 역사적 사실뿐 아니라 개인사를 따라가 보는 것도 재미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