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are Process Model과 Knowldege Management
지난번에 이어서 브렌트 제임스 이야기를 계속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제임스는 기본적으로 통계를 믿는 사람이었는데, 그것이 정확히 무슨 의미인지 구체적으로 예를 들어보겠습니다. 어떤 병원에서 A질환을 진단받은 환자에게 새로운 치료방법을 적용하도록 권고하는 가이드라인 B를 만들어서 배포했다고 합시다. 지난 6개월간 5명의 닥터가 A 증상을 보이는 50명의 환자를 이 가이드라인을 따라서 치료했고 5명의 다른 닥터는 가이드라인을 따르지 않고 치료했다고 합시다. 이 두 그룹의 환자 (이렇게 공통의 특징을 갖는 특정한 환자 집단을 전문용어로 Cohort라고 부릅니다)의 경과를 비교하면 가이드라인이 얼마나 효과가 있는지 알수 있습니다. 물론 비교 대상을 더 확장해서 같은 병원의 가이드라인 B를 적용하기 이전의 환자들과 비교할 수도 있고 다른 병원의 유사한 환자들과 해도 되며 이 질환을 다룬 논문이나 보고서 등 문헌을 참조하여 평균적인 환자 데이터와 비교 분석할 수도 있겠습니다. 그러면 프로젝트 하나 해서 논문 여러편을 뽑아먹을수 있죠
아무튼 6개월 후에 결과를 분석한 후 이 부서에서 새 가이드라인을 계속 써야 하는가 하는 의사결정의 시기가 왔다고 합시다. 만약 가이드라인을 따른 환자 집단이 경과가 나쁘다고 하면 꽤 머리 아픈 일이 될 수 있습니다. 새 가이드라인은 뭔가 새로운 지식 또는 가설을 첨가해서 아무튼 의학적으로 그래도 개선되었다고 생각되니 만든 것일 겁니다. 따라서 이 이론적으로는 이 가이드라인의 활용 결과는 "긍정적인 데이터"로서 나타나길 기대된 것인데 그 기대가 깨지게 된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연구책임자도 깨지고 펠로우들도 깨지고 추가 펀딩도 깨지고 이 경우 이 가이드라인을 쓸 것인가 말 것인가 의사결정을 한다는 것은 어쨌든 이 가이드라인은 뭔가 더 나은 것이다라는 "도메인 지식"과 실제로 나타난 나쁜 결과 즉 "통계"와의 싸움이 붙게 된 것인데, 자연과학 분야에서는 이런 경우 극단적으로 통계의 편을 듭니다. 즉 아무리 이론이 폼나고 말 되고 멋져도 실험 결과가 꽝이면 말 그대로 꽝입니다. 치 떨리는 그놈의 p-Value 우리가 이름만 들어도 아는 유명한 사람들, 스티븐 호킹 같은 사람들이 노벨상을 못 탄 이유는 그들의 이론이 (생전에) 실험으로 입증이 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농담조로 노벨상 타는 조건은 1) 젊어서 혁신적인 이론 하나 지르고 2) 그거 입증될 때까지 죽지 않고 오래 산다라는 말도 있습니다.
하지만 의학분야에서는 상대적으로 통계 쪽 파워가 그렇게 강하지는 않습니다. 좀 더 엄밀히 따지자면, Clinical trial 등의 리서치 영역에서는 당연히 자연과학처럼 통계가 심판 역할을 합니다. 하지만 이걸 임상에서 (Bedside) 적용할 때는 의사의 직관을 존중하거나 더 우선시합니다. 비행기 조종사가 매뉴얼을 열심히 공부했다고 해서 꼭 그대로 따라 하는 게 아니고 그 위에 자신의 경험과 판단을 가미하는 것과 비슷하다고 할 수 있겠습니다. 위의 가이드라인의 예는 그 중간 정도 되는데, 개별 의사가 아닌 병원이나 Clinical department에서 해야 하는 의사결정이기에 통계(데이터)에 좀 더 비중을 두기 때문입니다. 하여간 위의 예에서 결국 두 가지 선택지가 있는데
1. 결과가 나쁘지만 새 가이드라인의 로직과 도메인 지식을 존중하여 계속 쓴다.
2. 어찌 됐건 결과가 나쁘게 나왔으니 이 데이터를 존중하여 가이드라인을 철수시킨다.
둘 중의 어느 것도 무조건 정답은 아닙니다. 실제 현장에서는 가이드라인의 무엇이 문제였는지 분석해서 고쳐서 다시 적용해볼 가능성이 제일 높겠죠. 근거중심 의학의 큰 고민은 여기에 있으며 제임스는 위에서 언급했듯이 이 중에서 통계를 더 선호하였습니다. (그렇다고 의사의 직관을 무시한 것도 아니며 그 얘기는 밑에서 더 자세히 하도록 하겠습니다) 즉 표준화된 프로토콜을 만들고 의사들이 따르도록 한 후 그 결과인 데이터를 반영하여 프로토콜을 개선함으로써 궁극적으로 Outcome을 향상할 수 있다고 믿었습니다.
반면 이 생각의 반대편에 선 사람들도 많았는데, 하버드 의사인 Jerome Groopman는 사람은 생물학적으로 너무 다양하고 변동이 큰 대상이기에 근거중심의학은 아주 제한적인 상황에서만 적용 가능하다고 주장하였습니다. 사실 이 양반도 프로토콜 자체의 유용성을 아예 무시한건 당연히 아니며, 그보다는 시스템적 분석 기반의 방법론이 의사들로 하여금 넓은 영역의 치료를 고려하지 못하도록 제한하는 근본적인 문제가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프로토콜을 너무 강조하면 의사들이 기계적으로 거기에 맞추려고만 하게되며 (특히나 인센티브가 강하게 주어졌을 경우), 환자의 Outcome에 대한 책임을 프로토콜로 돌려버리게 되기 쉽기 때문입니다. Groopman은 프로토콜보다는 개별 의사들의 의사결정능력을 강조하며 동시에 인간의 직관은 주관적이고 한계가 있다는 것을 항상 주지하도록 훈련시키는 것을 해법으로 제시하였습니다.
제임스 역시 환자란 기본적으로 너무 Variable하기에 어떤 프로토콜도 완벽하게 환자에게 적용되지는 않는다는 것에는 동의하였으나 동시에 다음과 같이 얘기했다고 합니다.
“Don’t argue philosophy. Show me your mortality rates, and then I’ll believe you.”
결국은 데이터로 결과가 나타나는 것이 중요한 것이며, 통계적 접근방법의 핵심 철학이라고 할수 있겠습니다.
전 챕터에서 언급했듯이 제임스는 표준화된 임상 프로토콜을 개발 및 보급하기 위해 인터마운틴 내에 클리니컬 프로그램이라는 팀을 만들었습니다. 이 팀들은 의사, 간호사, 병원 관리자, 정보학자, 분석가, 데이터 매니저 등의 다양한 배경을 지닌 구성원들로 이루어졌습니다. 초창기의 클리니컬 프로그램들은 어떤 프로토콜에 집중해야 하는지 파악하기 위해 인터마운틴 내의 1400개나 되는 프로세스들을 모두 분석한 후 빈도, 임상적 중요성 등을 계산하여 순위를 매겼으며, 이중 104개의 프로세스가 95%의 입원/외래 환자 케이스를 커버한다는 결론을 얻게 됩니다. 제임스는 이를 그 유명한 파레토의 법칙 (경제학에서 유명한 20%가 80%의 자원을 차지한다는 법칙)에 빗대어 설명하곤 했는데, 이 104개의 프로세스를 구현한 것이 인터마운틴의 임상 가이드라인인 Care Process Model (CPM)입니다. 잠깐만요 80%가 아니라 95%잖아요 CPM은 지난 20여년간 꾸준히 개발 및 개선되면서 현재 기준으로 약 70여개의 CPM이 활용되고 있습니다.
CPM은 기본적으로 공개되어 있으며, 다른 기관, 병원들도 연구, 임상 등의 목적으로 자유롭게 활용할 수 있습니다.
이제 드디어 의료정보학 이야기로 돌아와서, 이렇게 만들어진 CPM이 어떻게 구현되었는지 알아봅시다. CPM을 만들기 위해서는 먼저 위 연구에서 정의된 프로세스 중 하나를 선택합니다. 위의 논문을 보면 분석한 프로세스 중에서 얼마나 반복적이고 빈도가 높은지, 개선효과가 큰지, 개선하기 어려운지 등등을 따져 점수를 매긴후 선정하였다고 되어 있습니다. CPM에서는 특정 질환 (예를 들어 Breast cancer) 또는 특정 Procedure (예를 들어 맹장수술) 중심으로, 이 조건에 해당하는 환자가 왔을때 어떻게 Treat해야 하는지를 자세히 기술하고 있습니다. 보다 세부적으로는 각 단계별로 어떻게 판단하고 처치해야 하는지 조건부로 기술하였습니다. 컴퓨터 전공인 분들은 바로 감이 오시겠지만 이는 바로 IF THEN ELSE의 연속입니다. 따라서 그림으로 도식화하면 대부분의 CPM은 아래와 같이 플로우차트 형식의 문서로 표현됩니다.
이 PDF형식의 문서들은 인터마운틴의 Knowldege repository에 저장되어 관리됩니다. Knowldege repository라고 하면 뭔가 상당히 쿨한 이름이긴 하지만 실제로는 웹 문서 저장소입니다. Knowledge repository가 일반적인 웹 문서 저장소와 다른 점은 클리니컬 메타데이터 관리에 매우 특화되어 있다는 점입니다. 예를 들어 Appendicitis CPM이 Surgical service에 의해 개발되어 Knowledege repository에 저장되었다고 하면 이 문서의 시작부터 끝까지 모든 연관된 이벤트를 추적하고 기록합니다. 예를 들어
* 언제, 누구에 의해 문서가 작성되어 언제 배포되었나
* 중간에 수정 또는 개선되었다면 언제, 누구에 의해, 무엇이 바뀌었나
* 누가 이 문서를 (정확히 어떤 버전의 문서를) 열람하였는가, 언제, 어디서, 무슨 용도로 (정보학에서 Context aware 라고 합니다)?
이 세번째가 특히 중요한데 이유는 어떤 임상적인 상황에서 CPM이 활용되었는지 알수 있기 때문입니다. 같은 ED Sepsis CPM이라 하더라도 Hospitalist인지 ED doctor인지 Nursing practioner 등의 Position에 따라 다를수 있고, 환자의 성별, 나이, 증상 등에 따라 다르게 활용될 수 있습니다. 이러한 정보를 추적하면 CPM이 Patient outcome에 어떤 영향을 주었는지 알수 있습니다.
CPM은 PDF문서 말고도 플래시카드 형태로 프린트해서 휴대하고 다닐수도 있으며 요즘 추세에 맞춰 모바일 버전도 있습니다. 하지만 이는 어디까지나 전자화된 문서 형태이며 사람이 보고 읽고 이해해야합니다. 따라서 EHR 시스템 내에 아예 로직으로 심을수도 있는데, Cerner EHR의 경우 CarePathway라는 컴포넌트를 활용하여 로직을 구현할수 있습니다. 아래 스크린샷을 보면 PDF버전의 플로우차트가 질문/응답지 형식으로 웹상에 구현된 것을 볼수 있습니다. 사용자가 하나씩 이 질문에 대답하며 따라가다 보면 오른쪽에 시스템이 권고하는 Treatment option이 제시됩니다.
CPM의 향후 계획은 CPM을 성과보상 지불제도 (Value based payment 혹은 Outcome based payment)와 통합하는 것입니다. 성과보상 지불제도는 기존의 방식처럼 치료 행위 자체에 비용을 지불하는 것이 아니라, 치료의 결과 (혹은 예방)에 비용을 지불한다는 개념이며 이를 구현하기 위해서는 객관적인 의료서비스의 질을 평가하는 것이 필수입니다. CPM은 표준화된 의료서비스모델이므로 CPM의 활용 또는 준수 여부는 의사가 “적합한 치료”를 행했다는 평가기준으로 활용될 수 있습니다.
지금까지 간략하게 의료 프로세스 표준화의 기본적인 철학과 발전과정, 그리고 이를 지원하는 의료정보학의 역할을 살펴보았습니다. 그 많은 연구들과 가열찬 논의에도 불구하고 표준화에 관련해서는 많은 풀리지 않은 질문들이 남아있습니다.
1. 의료 프로세스가 표준화되면 정말로 Outcome이 좋아지나?
이 질문을 하기 전에 이것부터 물어봐야 합니다. "의료 프로세스는 표준화가 가능한가?" 애초에 가능하지 않으면 굳이 위의 질문을 할 필요도 없겠죠. 필자가 처음의 자동차 산업의 비교해서 예를 들긴 했지만 아무리 그래도 자동차는 사람이 설계해서 만든 기계이며 살아있는 생물인 인간은 비교할수 없이 복잡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확실한 사실은 현대의 근거중심의학에서 의사는 이미 정보과부하 상태라는 것입니다. 의사가 평생 학습해야하는 문헌과 가이드라인들의 증가하는 속도는 인간의 학습속도를 이미 추월하였습니다. 의학지식이 두 배로 늘어나는 시간은 1950년에 50년이었던 반면 2010년에는 3.5년에 불과하고 이 추세대로라면 2020년에는 73일에 불과할 것으로 예상됩니다. (Denson, 2011) 따라서 어떤 형태로든 프로세스를 최적화하고 (특히 정보학의 지원을 받아) 효율을 높이지 않으면 근본적인 한계에 봉착하리라고들 예상하고 있습니다.
2. 의사의 역할은 어떻게 되는가?
제임스는 표준화와 통계의 강력한 지지자였지만 그조차도 인공지능이 의사를 대체하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보았습니다. 제임스는 오히려 단순반복적인 프로세스가 표준화 및 자동화되면 의사는 복잡하고 어려운 질병의 치료에 집중함으로써 할일이 더 많아질것이라 보았습니다. 잠깐만요 지금보다 더 일이 많아진다고요?
3. 표준화가 실현되면 의료분야의 4차 산업혁명도 가능할까?
의료 프로세스에서 정보기술의 비중이 커질수록 의료정보, 지식 및 서비스의 표준화로 인한 의료행위의 시공간 경계 확대, 인공지능에 의한 의사의 역할의 대부분 대체가 가능하리라고 보고 있습니다. 그로 인해 의료서비스의 대량생산화, 품질관리, 정보화, 자동화를 통한 의료비의 획기적인 절감, 그로인한 비약적인 건강 증진 등 다양한 가능성이 논의되고 있습니다.
그러나 4차 산업혁명 자체도 제대로 정의도 되지 않은 용어인데다가 어떤 사회현상이 산업혁명 정도의 이름을 붙일 만큼 근본적인 변화인지는 나중 가봐서 알게 되는 것이기에 현시점에서는 말하기는 어렵다고 봅니다. 예를 들어 자동차의 대량 생산은 불과 20년만에 (미국 동부 대도시 기준) 마차를 대체했는데 생각해보면 단순히 사용자 입장에서 그날그날 출근하려고 타던 이동수단만 바뀐것 뿐아니라 그 많은 말들을 키우고 먹이고 똥치우고 유지하던 시스템이 공장에서 자동차를 생산하고 유지보수하며 땅에서 기름을 퍼다가 정제해서 주유소에서 매일 넣는 시스템으로 바뀐것이니 어마어마한 변화가 아닐수 없습니다. 의료분야에서 이러한 수준의 변화가 이루어지려면 현행 의료시스템과 서비스의 형태가 근본적으로 바뀌고 심평원이 없어지고 수가도 올려주고 질병치료, 건강, 평균수명, 의료비용 등의 지표에서 획기적인 개선을 가져올만한 파급력이 있어야 할 텐데, 과연 그렇게 될지는 두고 볼 일입니다.
참고문헌
Densen P. Challenges and Opportunities Facing Medical Education. Transactions of the American Clinical and Climatological Association. 2011;122:48-5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