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슈라 Jan 24. 2021

프랑스의 방랑자, 회의주의자


20세기 최고의 종교학자로 불리는 메르체아 엘리아데는 부쿠레스티 대학 시절 알고 지내는 후배가 있었다. 후에 소르본 대학교에서 강사로 활동하던 시절 후배는 석사 과정을 밝고 있었다. 이후 엘리아데는 세계의 원시 종교를 연구하기 위해 인도, 이란 등 해외에서 오랜 시간을 보냈다.


엘리아데의 대학 후배는 에밀 시오랑이라는 수필가다. 국내에선 반출생주의(Anti-natalism)으로 알려져 있는데 반출생주의라는 개념은 비교적 최근의 개념이라 그에게 적용하긴 어렵다. 당대에 시오랑의 글을 보고 사람들은 그를 허무주의자라고 칭했다. 인생, 진리, 도덕 등에 대한 회의. 허무주의로 볼 수도 있겠지만 시오랑은 자신은 그렇지 않다고 선을 그었다. 허무주의라는 어감이 19~20세기 러시아의 허무주의(니힐리스트 운동)으로 오인할 여지가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자신을 '회의주의자'에 가깝다고 한다.


에밀 시오랑


부쿠레스티 대학 졸업 후 독일의 '흄볼트 재단'의 후원을 받아 3년간 공부하고 잠시 모국 루마니아에 돌아와 1년간 교사 생활을 하였다. 그리고 프랑스 문화원의 장학생 자격으로 소르본 대학에서 석사 과정을 밝았다.


그리 성실한 학생은 아니었다. 그는 자전거 하나 끌고 프랑스의 많은 지역을 여행했다. 더 나아가 스위스, 벨기에, 영국, 스페인 지역을 무전여행하였다. 내가 흥미있어 하는 부분이 이 지점이다! 오, 당시 주변국을 자전거와 도보로 여행하였다니, 그것도 무전으로! 돈이 필요하면 레스토랑에서 서빙을 하였다고.


지독한 회의주의자가 하는 여행은 어땠을까? 아쉽게도 기록이 없다. 작가로 살면서 여행 기록은 남겨놓지 않다니. 그는 약 20여권의 에세이를 발표하였는데 대부분 인기가 없었다. 지나치게 염세적이고 내가 봐도 솔직히 무슨 말인지 모르겠다. 만약 당시 여행하였던 에세이를 썼다면 그래도 다른 책 보단 인기 있었을텐데!


소르본 대학에서 박사 과정도 진행하였는데, 학문에는 관심없고, 프랑스 여행을 다니거나 하루 종일 기숙사에 박혀있기만 했다. 참다못한 대학측은 40까지 학위를 수료하지 못하면 퇴교 처리한다고 경고 하였고, 그렇게 40이 되자 퇴교당했다. 오, So, 시크!


젊은 날 1년간 교사생활, 프랑스에서의 레스토랑 알바 생활을 잠시 한 것 외에 평생 노동을 하지 않았다. 그의 글은 그리 팔리지 않았고 큰 돈이 되지도 않았다. 돈이 없어서인지 매우 절제된 삶을 살았다. 아마도 프랑스 정부의 복지 혜택을 일부 누린 것으로 보인다.


'노동하지 않고 평생을 살았다고! 오, 부러워.. '


나도 소득이 없어도 집에서 글을 쓰며 평생을 살 수 있다면 그 삶을 택하겠네!



/


그의 번역된 도서는 국내에 3권 출간되었다. 프랑스에서의 첫 출판작이자, 아름다운 글로 호평을 받은 '절망의 끝에서'는 국내에 '해뜨기 전이 가장 어둡다'로 나와있다.


'아니 이건 제목 세탁아냐? 어떻게 '절망의 끝에서'가 '해뜨기 전이 가장 어둡다'로 번역해?'


하긴 원제 그대로 번역하면 잘 팔릴 것 같진 않다. 이 책은 내가 전자책으로 소유하고 있다. 밀란 쿤데라는 그를 "동시대 프랑스의 위대한 작가"라고 호평했지만 글만 봤을 땐 사실 뭔 소린지 모르겠다. 그나마 절망의 끝에서가 한 쪽 짜리 분량의 수필이라 읽을만 하지만 나머지 출간된 '지금 이 순간, 나는 괴롭다', '독설의 팡세'는 한 문장으로 구성된 아포리즘 형식이다. 예를 들어,


인간으로 태어난 것은 불룬의 별 밑에서 태어난 것이라고 생각하며, 우리가 시도해 온 것, 시도하고자 하는 모든 것이 불운에 의해 실패하리라 생각하면 알 수 없는 즐거움을 느낀다


이런 글이 약 200쪽 가량 채워져있다. 도서관에서 좀 읽다가 덮었다.




가아끔 날씨의 영향인지 왠지 모를 우울감이 오거나, 삶이 허무하다 느낄 때, 전자책의 전원을 켜 그의 글을 읽는다. 나같은 일반인들이야 가끔 느낄 감정을 이 사람은 평생 느끼며 살았구나, 그의 생각, 정서를 훔쳐본다. 그의 글은 이해하기 어렵고 잘 와닫지 않아도 조금은 마음이 편해진다. 어쩌면 나도 그 처럼 살고 싶어서 일지도..


르퓌길을 걷다 만난 마을, 프랑스. 2019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