욜로하다 골로갔네 미리보기 04
사회초년생의 쓴 경험, 그 땐 나도 어렸어 미리보기 04
사기업도 마찬가지지만 채용 공고가 자주 나는 회사는 안 가는게 좋다. 채용을 자주 내는 이유는 기존 근무자가 감당할 수 없을 정도로 힘들어 그만두기 때문일 것이다. 새로 간 학교는 이전 선생님이 1년을 계약했으나 2개월 반만 근무하고 그만두었다. ‘개인 사정이 있었나 보다’ 하고 개의치 않았다. 그러나 한 달 근무하니 진짜 이유를 알게 되었다. ‘힘들어서 그만 둔 거였구나. 내가 호랑이 굴인지도 모르고 들어왔구나!’ 라는 걸 깨달았다. 지금의 내가 과거의 그 때 나에게 야호 하듯 두 손 모아 외쳤다.
“도망쳐! 도망치라구!” 하지만 과거의 나는 그 소리를 듣지 못했다.
독특하게도 내가 맡은 1-2반의 학급 인원은 44명이었다. 다른 학급은 35명인데 1반과 2반만 44명이라니? 학생들은 한문 과목과 일본어 과목 중 선택할 수 있었는데 선택 인원 분배가 적당히 떨어지지 않아 이러한 학급 수가 나왔다. 학급 인원이 많으면 좀 힘들긴 하지만 이 정도는 괜찮았다. 문제는 다른 데 있었다.
당시 학교는 변화의 시기였다. 학생인권조례 도입으로 체벌이 전면 금지되었다. 나도 물론 체벌 금지에 찬성이고 학교 체벌이 결코 정당화될 수 없다고 생각한다. 문제는 학생의 잘못에 대한 의미있는 처벌이 필요한데 좋은 대안이 없다는 데 있다. 상벌제를 도입하였지만 벌점 100점 넘는 학생들이 속출하였다. 벌점 누적으로 인한 교내 봉사를 해야 하는데 이를 무시하면서 “벌점 계속 주세요” 라며 안하무인한 학생들도 많았다.
그 학교는 일진 무리가 있어 안 보이는 곳에서 학생들을 괴롭히는 일들이 많았다. 어떤 학생들은 지체 장애 학생을 집단으로 몰래 괴롭혔고 참다 못한 그의 형이 학교로 와 난리를 피우기도 했다. 학생이 수업 중 화장실 간다며 몰래 나와 학급으로 들어가 절도하는 일도 종종 일어났다. 2학년 일진 여학생은 자기 생일이 되었을 때 선물을 명목으로 1학년 후배로부터 많은 돈을 강압에 의해 받았다가 걸려서 자진 전학을 갔다. 학급 내에도 따돌림 등 문제들이 많았다. 도저히 선생님들이 감당할 수 없는 문제들이 마구 터졌고, 병가, 육아 휴직 등 교사 공백은 계속 늘어만 갔다. 내가 속해 있던 생활지도 부장님의 하소연이 기억난다.
“내가 가족과 행복하려고 일하는데, 퇴근하고 나면 나도 모르게 집에서 짜증을 내. 일하면서 생긴 스트레스를 집에까지 가져온거야. 이게 뭐하는가 싶어.”
그 만큼 선생님들이 받는 스트레스가 심했다.
집중이수제는 나를 괴롭힌 또 하나의 축이었다. 집중이수제란 국영수를 제외한 과목을 원래대로인 1,2,3학년 동안 균형있게 배우지 않고, 한 학기에 몰아 배울 수 있는 방법이었다. 1학년 도덕 과목은 원래 주당 2시간이지만 한 주에 무려 5시간을 배우면서 3년치 수업을 한 학기에 끝내도록 하였다. 도덕 수업이 매일 있다니. 학생들도 힘들어 했지만 가르치는 선생 또한 고역이었다.
한 번은 근무하다가 혼자 있고 싶어서 건물의 옥상 계단으로 올라갔다. 보통 옥상 문은 잠겨 있고 문 입구 공간에서 잠시 쉬려했다. 계단에 올라 옥상 입구에 이르자 놀라운 모습이 펼쳐졌다. 나의 반 학생이 자기 친구와 쭈구려 앉아 담배를 피고 있던 것이다. 침은 얼마나 찍찍 뱉던지 바닥은 흥건했다. 무슨 알파카도 아니고 너무 침을 뱉어서 탈수 증상이 오는 건 아닌지 걱정했다.
담배피는 모습은 류승범 담배 연기 저리가라였다. 도대체 중 1학생이 얼마나 흡연했길래 저토록 맛있게 피울까? 흡사 논산 육군훈련소에서 꽁초 주워 몰래 펴대는 훈련병의 모습 같았다. 두 학생을 나의 교무실인 생활지도부로 인계하였다. 속으로 생각했다. ‘쉬러 갔다가 일을 만들고 왔네. 가는 곳 마다 사건이 펑펑 터지는구나.
그 때 너무나 힘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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