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슈라 Mar 05. 2024

결국 공황장애가 오고 말았다.

욜로하다 골로갔네 05(마지막화)

결국 공황장애가 오고 말았다. 미리보기 마지막화


초보교사였던 나는 수업을 장악하지 못했다. 수업에서 멋대로인 학생들이 있었고 말로 해선 듣질 않자 제발 조용하라고 소리를 크게 질렀다. 학급 내에서 여학생들 사이의 따돌림 문제도 자꾸 일어났다. 사건 사고는 여의도에서 바라보는 세계불꽃축제 마냥 펑펑 터졌고, 내 역량에 도저히 감당하기 힘들었다. 


한 번은 은따(은근히 따돌림)를 주도하고 이간질, 뒷담화를 일삼는 여학생(S라고 호칭)이 있었다. 결국 학폭위가 열렸다. 그 날 S의 아버지가 학교에 오셨고 그는 계단으로 올라오고 있었다. 나는 S와 그 복도에 있었는데 태도가 안 좋았던 가해 학생인 그녀가 나에게 다가와 친근한 목소리로 “선생님~” 하며 태세전환했다. 그녀는 아버지가 무서워 내게 다가와 숨은 것있다. 그것도 몰랐던 나는 S가 밉고 짜증나서 화를 냈다. 


“너 대체 이런 일이 몇 번째야. 지난 번에도 그러지 말라고 했잖아. 왜 계속 그 모양이야?!”


 그녀는 몸을 반대편으로 돌렸고, 고개를 숙였다. 한 손으로 눈가를 닦고 반대편 눈가도 마저 닦았다. 그 모습을 보고 무언가 잘못됨을 느꼈다. 그 때 왜 화를 내었을까 두고두고 후회가 되었다. 


그녀에게는 14살 소녀가 감당하기 힘든 삶의 버거움이 있었다. 어린 소녀의 고단함은 교실에서 나쁜 방향으로 분출되었다. 기댈 곳 없는 그녀가 혹시 내게 신호를 보낸 것일 수도 있을텐데 나는 알아차리지 못했다. 


사실 내가 힘들다는 이유로 학생들에게 죄를 짓고 있었다. 어리고 여린 학생들을 더 보살펴 줬어야 했는데. 수업 중 학생들 통제가 안 돼 화를 낸 일들은 여전히 마음 속 부채 의식으로 남아있다. 그 마음의 빚을 갚기 위해 다음 학교, 다음 학생들에게는 더 배려하고 이해하며 도움을 주려 다짐했다. 


2학기 때 발령받은 새내기 선생님이 기억에 남는다. 20대 중반의 젊은 여자 선생님은 어려운 영어 임용 시험을 합격하고 첫 근무지로 이 곳에 발령받았다. 그런데 오자마자 1학년 학급 담임이라니. 1학기면 모를까 2학기 담임 교체는 학생이나 담임 모두 어렵고 곤란한 일이었다. 그러나 휴직 교사가 많아 불가피했다. 


내가 기억하는 첫 인상은 해맑고 순수한 모습이었다. 그러다 한 달 후 눈가의 다크 서클이 해질녘 땅꺼미처럼 내려오더니 안색이 안 좋아 보였다. 같은 1학년 담임이다 보니 복도에서 우연히 마주쳤을 때 내가 물었다. 


“선생님 괜찮으세요?” 

“아… 네. 괜찮습니다.” 

말과는 달리 전혀 괜찮아 보이지 않았다. 


그녀 또한 힘든 학급을 맡았다. 치킨을 튀기는 기름 가득한 튀김기에 생수 한 병을 부우면 기름이 저렇게 튈까? 저 학급도 끓는 기름에 물을 붇듯 사건 사고가 펑펑 터졌다. 학생들 사건으로 인한 면담과 학부모들 항의와 상담까지 일이 커져만 갔다. 결국 새내기 선생님은 두 달만에 휴직을 하였다. 나도 그만 두면 해결될 일인데 당장 그만두면 새로 도덕 선생님 구하기도 어렵고 책임감에 차마 그만두지 못했다. 


날씨가 꽤나 쌀쌀해진 11월 말이었다. 평소처럼 아침 6시에 일어났다. 그러던 어느 날 갑자기 일어나서 숨이 쉬어지지 않았다. ‘헉. 허. 흐어어.’ 문제의 심각성을 파악했다. 차분이 호흡을 가다듬었고 숨은 쉴 수 있었다. 그러나 심장은 가쁘게 요동쳤다. 마치 해발 7000m를 걷는 산악인 마냥 숨이 가빴다. 그럼에도 몸은 움직였다. 내 의지가 아닌 출근에 습관화 된 육체가 나를 이끌고 학교로 데려다 주었다. 지하철을 타고 가는 도중에도 호흡은 정상으로 돌아오지 않았다. 공황 장애였다.


독특하게도 증세의 발현 시간은 규칙적이었다. 아침에 눈을 뜬 후부터 출근 후 책상에 앉기까지 증세가 마구 요동쳤다. 막상 일과를 시작하면 급류에 휩쓸려가듯이 일에 바빴고 증세는 나타나지 않았다. 그리고 퇴근하면 지친 심신을 술로 달랬다. 아침이 되면 증세는 다시 반복되었다. 지하철로 들어가는 계단은 마치 지옥으로 가는 동굴 입구처럼 느껴졌다. 증세가 심각함에도 당시에는 병원에 갈 생각을 하지 못했다. 정신과 진료가 지금처럼 대중적이지도 않았고 그저 한 달만 지나면 방학이니까 조금만 버티자 라는 생각이었다. 


결국 방학까지 존버했다(나를 존중하며 버텼다). 출근을 안 하니 놀랍게도 증세가 사라졌다. 그리고 더 이상 학교에서 일 할 수 없다고 판단했다. 스물 아홉의 1월, 겨울이었다. 이제서야 떠나기로 결심했다. 그 때 글감이 떠 올라 글을 한 편 끄적였다.



아침에 눈을 뜨면 안다. 내 삶이 즐거운지 괴로운지. 

새벽 5시 50분에 눈을 뜨면 옥죄어오는 심장, 

가빠지는 호흡, 지하철로 향하는 무거운 발걸음,

오늘 하루는 어떻게 견딜까 괴로움이 몰려온다.

더 이상 견딜 수 없을 때, 잊혀진 꿈이 내게로 왔다.     

이제 가슴이 뛰는 곳으로 갑니다.

그곳은 선망과 높은 등급표가 붙는 곳이 아닌, 

걱정 어린 시선과 남루한 천이 기다리는 곳     

내일 가슴이 뛰는 곳으로 갑니다.

그곳은 물질보다는, 마음의 풍요를 쌓는 곳

멋진 차와 집은 없지만 행복과 삶의 성찰이 있는 곳.     

지금 가슴이 뛰는 곳으로 갑니다. 

이 시련들 모두 진정한 모습을 찾기 위한 과정이었겠지요. 

그렇게 나의 길을 갑니다. 



그렇게 여행자의 삶이 시작되었다.




이번 화는 <욜로하다 골로갔네> 미리보기의 마지막회입니다. 책으로는 처음부터 25쪽까지 해당하는 분량입니다. (지인이라서가 아닌) 읽은 사람들 모두 재미있고 쉽게 잘 읽힌다 라고 좋은 평을 해주었습니다. 


아래의 링크에서 저의 책을 구매할 수 있습니다. 감사합니다.

https://indiepub.kr/product/%EC%9A%9C%EB%A1%9C%ED%95%98%EB%8B%A4-%EA%B3%A8%EB%A1%9C%EA%B0%94%EB%84%A4/6199/category/1/display/16/

작가의 이전글 사회초년생의 쓴 경험, 그 땐 나도 어렸어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