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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H Green Oct 07. 2024

생각보다 무서운 갈등(葛藤)

2024.09.10.

내가 속한 푸른꿈고등학교에서는 ‘907 기후정의행동’에 참여하기 전에 최원형 생태작가를 초청해서 학생과 교사를 대상으로 환경 연수를 진행했다. 최원형 작가의 연수를 듣기 전, 그분의 최근 저서인 “질문으로 시작하는 생태 감수성 수업” 책을 주문해서 읽었다. 최 작가는 생태 감수성이란 결국 대상을 알아가기 위한 무수한 질문과 그 질문의 답을 알아가기 위한 과정과 자연의 상호 연관성을 이해하는 것이라는 것을 독자에게 말하고 있었다.


책 내용 중, 갈등(葛藤)이란 말이 식물에서 유래한 것을 설명하는 부분이 나온다. 솔직히 그 글을 읽기 전까지는 갈등(葛藤)이 칡 갈(葛)자와 등나무 등(藤)자를 합쳐 ‘갈등’을 만들었다는 것을 몰랐다. 칡과 등나무는 덩굴식물 가운데 풀이 아닌 나무란 것도 알게 되었다. 또한 두 식물 모두 콩과 식물이란 것도.


콩과 나무인 칡과 등나무는 비슷한 점이 많다. 일단 꽃이 무척 향기롭다. 등나무꽃은 5월이면 연보랏빛의 포도송이처럼 피어난다. 칡도 이와 비슷하다. 칡은 7~8월에 등나무꽃보다 진한 자줏빛 꽃이 핀다. 그 달달한 향은 상당히 매력적이다. 칡은 장미목 콩과 식물이고 다년생이다.


요즘이야 칡을 먹는 이가 거의 없으나, 칡은 매우 유용한 구황작물이다. 구황작물(救荒作物)은 가뭄이나 장마 같은 기후의 영향을 적게 받고 비교적 척박한 땅에서도 가꿀 수 있어 흉년 등으로 기근이 심할 때 주식으로 대용할 수 있는 작물을 말한다. 비황작물(備荒作物)이라고도 한다. 조, 피, 기장, 메밀, 감자, 돼지감자, 콩, 옥수수, 순무, 토란, 칡 등이 이에 속한다. ‘보릿고개’, 지금이야 우리나라의 봄철 기근인 춘궁기(春窮期)가 없지만 배고픈 시기를 보내는 것이 고개를 힘겹게 넘어가는 것과 같다고 하여 보릿고개라 하였고, 보릿고개는 1970년대까지도 존재했다. 이 보릿고개에 역할을 톡톡히 했던 것이 칡이었다. 칡은 어디서나 잘 자랐기 때문에 보릿고개 기간인 봄에 칡뿌리는 대표적인 구황작물이었다.


칡과 등나무가 꽃을 피우고, 다른 것들을 지지대 삼아 타고 올라가는 덩굴식물인 것은 같으나, 가장 다른 점은 줄기를 감고 올라가는 방향이다. 등나무 줄기는 시계방향으로 올라가는데, 칡은 시계 반대 방향으로 올라가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를 알던 우리의 선조들은 칡과 등이 서로 반대 방향으로 같은 기둥을 감고 올라간다면 마구 꼬일 것이니, 이러한 상황을 두 나무에 빗대서 ‘갈등’이라고 말하게 된 것이다.


나무 처지에서 보면 수종을 가리지 않고 나무줄기를 감아 올라가는 칡과 등은 골치 아픈 존재이다. 좀 더 정확히는 무서운 존재이다. 칡과 등이 마구 얽혀 있으면 그 둘은 떼어 풀어 놓기가 여간 힘든 게 아니다. 단순히 힘든 존재가 아니라 칡과 등나무는 관리하지 않으면 숲을 해친다. 그래서 나무를 가꾸거나 숲을 관리하는 사람들에게 칡과 등나무는 너무너무 미운 존재다. 나무 종류와 상관없이 타고 올라와 줄기를 감으며 올라간다. 공존하려는 바도 없다. 숨통을 조이면서 올라간다. 수백 년 된 소나무도 이들의 공격을 받으면 고사하고 만다.


안타깝게도 최근 우리나라에는 칡과 등나무뿐만 아니라 외래식물인 환삼덩굴, 가시박 등이 세력을 넓혀 가면서 숲을 망치는 것이 늘어가고 있다. 2023년 산림청 자료에 따르면 우리나라 전체 산림 면적 633만ha 가운데 약 5만3천ha가 덩굴류로 피해를 보고 있다고 한다. 산림청이 매년 덩굴류 제거 사업을 추진하고 있지만 덩굴의 확산 속도가 빨라 도로변 및 생활권 산림에 피해가 늘고 있다.


악재는 한가지가 더 있다. 바로 기후변화에 따른 위기!


최근 기후변화 등의 요인으로 도로변 산림에 덩굴류의 확산 속도가 빨라지고 있다. 덩굴식물은 주로 더운 지방에서 자란다. 더운 지방은 일 년 내내 따뜻해서 식물도 일 년 내내 무성하다. 그러니 뒤늦게 자라는 식물은 빛을 쬐기가 쉽지 않으니 이미 있는 식물을 붙잡고 올라가면서 잎을 펼치는 방식으로 살길을 찾다가 덩굴식물이 된 것으로 추정한다. 그러니 덩굴 식물에게 요즘의 우리나라 기후는 너무 좋은 조건이 되어버렸다.


이번 주 KBS 대전 뉴스에서는 “기후변화에 ‘덩굴류’ 창궐…농촌은 제거 전쟁 중” 소식을 전했다. 뉴스에서는 10년 전, 전국 2만여 헥타르에 불과했지만, 지난해 5만 3천 헥타르를 뒤덮을 정도로 급증했다는 소식과 이 문제는, 우리나라가 고온 다습한 기후로 변하고 있고 이러한 환경변화로 갈수록 덩굴식물의 번식력이 더욱 강해지고 있다는 점을 전했다.


내가 사랑에 빠진 이곳 전라북도 무주 산골도 예외가 아니다. 도로 주변을 살펴보면 거의 덩굴식물로 뒤덮여 있다. 덩굴식물의 특성상 햇빛이 지속해서 노출되는 곳을 좋아하는데, 도로 주변 경사면은 그 조건에 너무 잘 맞는 곳이다. 인간의 편리한 삶을 위해 도로를 확장하는 것은 어느 정도 불가피한 필요일 수 있다. 그러나 산과 그 안의 숲이 아름다운 무주라면 개발을 어떻게 고민할지 다른 차원이 필요한 곳이다.


숲과 나무에만 갈등이 해로운 것이 아니다. 인간관계에서도 ‘갈등’은 웬만해서는 해결되지 않는다. 숲에서나 인간 세상에서나 칡과 등, 갈등은 무서운 놈들이다. 발생 초기에 제거하지 못하면 숲도, 사람 관계도 망가지고 만다.


푸른꿈고등학교를 품고 있는 무주 산골의 비할 수 없는 아름다움이 ‘갈등(葛藤)’으로 덮이는 일이 없기를 바라며, 학교 정원에 올라온 갈등(칡 넝쿨)을 없애러 교장실을 나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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