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때 내가 너에게
이 영화가 다른 타임슬립을 소재로 한 영화와 차이가 있는 점은, 과거의 주인공과 현재의 주인공이 직접 마주한다는 점입니다. 대부분의 영화 속의 과거는 매개일 뿐, 과거의 주인공의 행동은 현재에 크게 영향을 끼치지 못합니다. 현재의 주인공이 바꾼 과거가 현재에 영향을 주게 되죠. 30년이라는 시간이 평행으로 이어진다는 점도 흥미롭습니다. 대개 타임슬립 영화에서는 과거에 변화를 줬을 때 그 이후의 시간들이 즉각적으로 변화되어 현재에 영향을 끼치는 반면, 이 영화에서는 시간이 똑같이 흐르기 때문에 과거의 주인공의 상황에 따라 현실도 시간에 따라 계속 바뀌어 갑니다.
여심을 흔들만한 로맨스적인 요소가 많습니다. 특히나 물에 빠진 채로 풍선을 들고 연아를 마주하는 과거의 수현의 모습은 정말로 로맨틱하죠. 전반부의 멜로씬에는 여성 감독의 섬세한 부분이 많이 담겨 있습니다. 연아의 집에 놓인 소품 또한 그렇고요. 그래도 이 영화는 여성보다는 남성 관객의 좋은 호응을 얻을 것 같습니다. 너무나도 사랑스러운 캐릭터인 연아 때문도 있지만, 극 중 현재의 수현이 처한 상황이 관객의 공감을 얻을 수 있을 것 같아요.
영화에 수록된 음악들 또한 매력적입니다. 배경음악으로 깔리는 OST도 좋지만, 수록되어 있는 노래들이 인상적입니다. 밥 딜런의 'Make You Feel My Love'나 존 레논의 'Love'를 영화 속에 흘러나오고요. 주로 다루고 있진 않지만 김현식이라는 존재는 많은 사람들의 향수를 불러일으킬 것입니다. <백 투 더 퓨처>의 OST이기도 한 'Johnny B. Goode'를 통해 오마주를 전합니다.
다만, 장점도 많지만 단점도 큰 영화입니다. 우선 문어체로 된 대사가 관객으로 하여금 몰입을 방해합니다. 특히나 미래의 수현의 대사 중에, 일상적으로 쓰지 않는 단어나 어투가 느껴져 배우의 연기 또한 퇴색되어 보입니다. 무엇보다도 큰 문제는 시간여행을 다루는 영화들의 숙명과도 같은 개연성 문제겠지요. 개연성에 관해서는 스포일러가 될 수 있으니 아래에서 다시 언급하겠습니다.
*여기서부터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는 부분이 많으니 유의해주세요.
과거를 바뀌면 현재의 상황에도 영향을 끼친다는 건, 다른 많은 시간을 다룬 영화에서 차용하는 방식입니다. 대표적으로 <나비효과>가 그러하고, 한 때 기욤 뮈소의 동명의 소설을 표절했다고 논란이 일었던 드라마 <나인>과도 유사하고요. 최근에 개봉한 <세상에서 고양이가 사라진다면>과도 궤를 같이 합니다. 무언가 변화가 있다면 그에 따른 대가가 상응한다는 것이 그것입니다. 최대한 현실에 영향을 끼치지 않기 위해, 과거의 수현이 30년간 침묵했던 시간이 떠오릅니다. 시간을 역행한다는 것에 대한 엄중하고도 무거운 대가이겠지요.
"꼭 해피엔딩이어야만 하니? 중요한 건 이야기 자체인데" 영화는 친절히도 대사를 통해 이 영화의 주제를 알려줍니다. 영화 속에선 연아를 구해야 한다는 과거의 수현과, 자신의 딸인 수아를 지켜야 하는 미래의 수현이 대립합니다. 연아를 살리기 위해서 과거의 수현은 연아와 이별하게 됩니다. 하지만 최선이 아닌 차선을 선택하더라도, 인생을 살아가는 데에 소중한 것들은 많습니다. 과거의 수현이 10년 후에 만나게 되는 딸 수아가 그러하겠죠. 인생을 살아가는 데 있어서 과거를 바꾸는 것보다 현재에 충실하며 살아가는 것이라는 걸 말하는 듯합니다.
그럼에도 이 영화는 너무나도 급박합니다. 이야기가 너무 쉽게 풀리고, 개연성 또한 허술합니다. 김현식 LP판에 꽂혀 있는 마지막 알약과 과거로 돌아간 태호가 담배를 뺏는 장면은 물음표를 남깁니다. 우스갯소리로 2시간짜리 금연 영화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지요. 주인공인 한수현을 제외한 나머지 주변 인물들이 너무나도 평면적인 부분도 아쉽습니다. 첫사랑인 연아, 절친한 친구인 태호와 혜원, 수아의 친엄마인 일리나에 대한 묘사가 겉핥기 식으로만 표현되어 있습니다. 러닝타임을 조금 더 가져가더라도, 서브 캐릭터들에 대한 스토리를 좀 더 가미했으면 좋았을 것 같아요.
6/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