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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살아 숨쉬는 그녀 Jul 01. 2020

다시 만나요

코로나 시대의 친구들 01

   

한 통의 메일로부터 시작된 여행이었다. 따뜻한 환대를 경험했던 이란, 트럭을 타고 질주했던 아프리카, 벚꽃이 눈처럼 내릴 때에도 영하의 기온을 오르내리던 노르웨이‥‥․ 코로나 바이러스도 우리의 여행을 막지 못했다. 국경이 닫히고 비행기는 멈춰 섰지만, 스마트폰과 13인치의 작은 모니터로 오히려 더 많은 곳을, 더 자주, 더 자유롭게 여행했다.     





“진, 걱정 안 해도 돼. 너는 건강하잖아.”       


우리나라에 바이러스 환자가 늘어날 때였다. 노르웨이에 사는 친구 존으로부터 안부 메시지가 왔다. 개학이 연기되어 재택근무를 하고 있다는 내게 이 상황은 곧 지나갈 것이라며 걱정하지 말라고 했다. 하지만 예상과 달리 바이러스는 국경을 넘어 존이 사는 곳까지 영향을 주었다. 도서관과 미술관이 닫혔다며 아쉬워하더니, 곧이어 도시가 봉쇄되었고, 자신이 제일 좋아하는 오두막에도 갈 수 없다고 했다.      


여행길에 만났던 다른 친구들도 소식을 전해왔다. 재택근무를 해야 한다거나, 당분간 일을 쉬어야 한다거나, 산책도 제대로 하지 못해 갑갑하다는 소식이었다. 그러면서도 새로운 재미를 찾으며 지낸다고 했다. 경제적인 어려움이 따르거나 그동안 당연하게 여기며 누리던 것들을 못해 힘들지만, 바쁘게 움직이던 생활에 긴 휴식을 갖게 된 것 같다고 했다. 가족들과 더 많은 시간을 보내고, 멀리 떨어진 친구와도 더 자주 소식을 주고받는 즐거움을 누린다는 이야기도 덧붙였다.      


테헤란에 사는 마리암과는 서로 토닥이며 더 돈독해졌다. 그녀는 작년 새해에 풀, 식초, 마늘, 향신료, 사과, 연꽃 열매, 푸딩 등 7가지 음식으로 차린 멋진 상차림 사진을 보내주었다. 이런  새해 아침의 특별한 상차림을 ‘하프트신(Haft-Sin)’이라 부르는데, 행운을 기원하는 마음이 담겨 있다고 했다. 그런데 올해는 하프트신에 올릴 장식품을 마련하기 위해 시장을 누비던 즐거움을 포기해야 한다는 말을 했다. 이란의 상황이 생각보다 심각한 모양이었다. 그녀가 보내준 하프트신 사진을 보며, 다시 즐거운 마음으로 시장을 누빌 수 있기를 기원해 보았다.     

이란. 동짓날(Yalda) 저녁 상차림. 붉은색 과일과 견과류, 달콤한 디저트로 차려진 상.
이란. 새해 아침 상차림(Haft-Sin). 행운을 기원하고 따뜻한 봄을 맞는 즐거움이 담긴 상.


부러운 친구도 있었다. 존이었다. 오슬로에 거주하는 그와는 조지아 여행 중에 만나 친구가 되었다. 평소에도 노르웨이 국민의 대다수가 시골에 있는 오두막에서 휴일을 보낸다는 이야기로 나의 부러움을 샀던 친구다. 일과 여가생활이 균형 잡힌, 나의 버킷리스트를 실현하고 사는 것만 같아서 언젠가 꼭 오두막 여행을 하고 싶다는 생각도 했었는데, 코로나 바이러스 기간에 그가 보내온 소식은 잘 가꿔진 노르웨이의 시스템을 보는 것도 같았다. 석유기금이라 부르는 상당한 재원을 비축한 덕분에 경제적으로 어려워진 사람들을 지원한다고 할 때는 노르웨이라면 충분히 할 수 있는 일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바이러스에 취약한 노인을 우선적으로 보호하기 위해 생필품 판매점에 노인들만을 위한 특별 개장 시간을 마련했다는 이야기를 들었을 때는 생각지도 못한 섬세한 정책이라 놀라웠다. 그가 노르웨이 국민이라서 행복하다고 한 말을 이해할 것도 같았다.      


노르웨이. 오슬로 근교. 존의 오두막.

 

노르웨이. 오슬로 근교. 오두막에서 겨울 장작을 준비 중인 존


안타까운 사연도 있었다. 작년 여름 여행에 일주일 동안 머물며 빵을 배웠던 강화대 할머니였다. 일본 아이치 현에 사는 그녀는 정원이 예쁜 자신의 집에서 빵 교실을 운영한다. 빵 교실을 닫아야 해 경제적으로 어려워졌지만 정부로부터 아무런 도움도 받지 못해 곤란을 겪는다고 했다. “집 마당에는 꽃들만 가득한데, 미래를 생각해서 야채를 가꾸어야겠어요. 그래서 방울토마토, 파프리카, 파슬리를 심기 시작했답니다.”라는 말을 전할 때에는 타샤의 정원처럼 예쁜, 할머니의 정원을 앞으로는 보지 못할 것만 같았다. 70대의 나이에도 자신이 만든 원피스를 입고 논두렁길을 폴짝거리는 할머니가 정원을 야채밭으로 바꿀 모습을 생각하니 내 마음이 다 아팠다.      


일본. 아이치현. 강화대 할머니의 빵교실. 
일본. 아이치현. 언제나 꽃이 가득한 강화대 할머니의 집.

  

내 생활에도 변화가 있었다. 바쁜 직장생활로 저녁이 없었던 내게 코로나 바이러스는 온전한 저녁시간과 휴일을 선물했다. 다른 지방에서 대학을 다니느라 얼굴 보기 힘들었던 딸아이가 졸업식 없는 졸업을 하고 취업을 준비하며 집에 머물면서 함께 요리하고, 산책하는 즐거움을 누렸다. 이른 아침과 한밤에 동네 주변을 걸었고, 산과 강, 시골 들판을 걸었다. 그동안 눈여겨보지 않던 주변도 돌아보았다. 딸아이의 도움을 받아 여행 친구들에게 내가 사는 동네, 금정산, 범어사, 오륜대를 사진과 동영상으로 소개했다. 코로나 바이러스로 물리적 거리는 멀어졌지만 마음의 거리는 더 가까워진 셈이었다. 그렇게 ‘코로나 시대의 친구들’ 지도가 만들어졌다.       


코로나 시대의 봄에 비록 국경은 닫혔지만, SNS로 시간과 공간을 넘나들며 추억의 여행지로, 친구들의 나라로 여행하는 즐거움이 컸다. 한 번도 겪어보지 못했던 어려움을 친구들과 함께 나누고 위로하며 여행할 때보다 더 가까워진 듯도 했다. 우리에게 꼭 필요한 것, 우리가 지켜가야 할 것, 새롭게 선택해야 할 가치를 나눈 여행은 코로나가 준 선물이기도 했다. 하지만 여전히 자유롭게 여행할 때가 그립다.      


닫혔던 국경이 열리고, 하늘길이 열려서 자유롭게 여행할 수 있는 날이 왔으면 좋겠다. 존이 자랑하던 오두막 여행도 하고 싶고, 마리암의 집에서 동짓날 저녁에 함께 시도 읊고 싶다. 무엇보다 타샤의 정원처럼 예쁜 강화대 할머니의 집 정원을 가꾸고, 빵을 만들고, 바느질하고, 차를 마시는 날이 왔으면 좋겠다.      


이란. 아비아네 전통마을. 따뜻한 환대를 베풀어주던 마을 주민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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