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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살아 숨쉬는 그녀 May 05. 2020

쿠타 해변

발리에서 나이를 잊다 09


“여행자가 없는 쿠타에서 살아가는 일이 쉽지는 않지만, 이곳 의료 환경을 생각한다면 아직은 외국인을 받아들여서는 안 돼.....”     


30만 원주민과 10만의 이주민이 관광을 기반으로 살아가는 곳 발리. 여행객들의 발길이 끊긴 거리에도 아침마다 신에게 드리는 차낭에서는 여전히 향불이 피어오르겠지. 발목까지 내려오는 긴치마, 샤롱을 입은 여인들이 코로나 바이러스가 사라지길, 섬의 일상이 회복되길, 세계의 모든 사람이 건강하기를 바라며 사원, 부엌, 대문을 지나 도로, 해변에까지 차낭을 바치겠지. 사람들이 찾지 않는 해변에도 아침은 오고, 낮이 지나가고, 또 노을은 내려앉아 해변을 물들이다 새까만 어둠 속으로 사라질 테지. 개들만이 넓은 해변을 뛰어다닐 테지...... 그곳의 친구들과 SNS로 소식을 주고받으며 지난겨울의 쿠타 해변을 떠올려 본다.       


    




쿠타에 있는 동안 해변을 걷는 재미가 쏠쏠했다. 해변은 끝없이 이어졌다. 하루 종일 걸어도 끝나지 않을 기세였다. 아침은 아침대로, 낮은 낮대로, 또 저녁은 저녁대로 다른 얼굴이었다.  이슬람을 섬기는 인도네시아의 다른 지역과 달리 발리 사람들은 힌두 신을 섬긴다. 신에 대한 숭배를 최고의 행복으로 생각하는 발리 사람들에게는 생활 자체가 종교여서 곳곳에 힌두 문화가 묻어났다. 해변 역시 마찬가지였다. 우선, 해변으로 가려면 힌두사원에 들어가듯 문을 통과해야 했다.      



한 개의 탑을 마치 두 개로 쪼개 놓은 듯한 문이 해변으로 길을 터주었다. 힌두사원의 어느 곳에서나 볼 수 있는, 찬디 븐타르(Candi Bentar)라 불리는 문이었다. 선과 악에 대한 발리 사람들의 생각이 담긴 문이라고 했다. 오른쪽은 신성, 삶, 선, 정화, 광명 등을 의미하고, 왼쪽은 악, 죽음, 부정, 어둠 등을 뜻한다고 했다. 들어갈 때는 오른쪽이던 문이 나올 때는 왼쪽이 되었다. 선과 악이 동전의 양면처럼 서로 떨어질 수 없으며, 누구에게나 선과 악이 공존한다는 것을 의미한다고 했다. 그래서 발리 사람들은 선과 악의 균형을 유지하기 위해 매일 아침 신에게 제물을 바치고 기도를 올리며 생활한다고도 했다. 



'천국의 문'이라고도 부른다는데, 천국이 있다면 이런 모습일까? 아름다웠다. 이른 아침에는 막 문을 열기 시작한 해변 바의 스태프들이 파라솔, 의자 등을 준비하며 손님을 이끌었다. 손사래 치며 거절하면 그뿐이었다. 평화로웠다. 파도가 몰아치는 물속에서는 서핑에 도전하는 젊음이, 모래사장에서는 가족끼리, 연인끼리, 또는 혼자서, 반려견과 앉거나 걷는 모습이 바라보기만 해도 좋았다. 태양이 강렬해지는 한낮에는 파도와 싸워가며 서핑하거나, 파라솔 밑에서 여유를 즐겼다. 노을이 지는 저녁 무렵에는 저마다 발리 맥주, 빈땅 한 병 들고 노을에 젖어드는 사람들로 또다시 붐볐다. 노을이 사라지고, 까만 밤이 찾아올 때까지도 해변은 북적거렸다.  


  


북쪽을 향해 30분쯤 걸으면 레기안 비치에 이르렀다. 리조트와 고급 호텔이 몰려 있는 곳이라 분위기가 사뭇 달랐다. 파도가 잔잔해서인지 서핑하는 사람들은 별로 없었다.  산책이나 조깅하는 사람들, 낚시하는 사람들, 모래놀이를 즐기는 사람들이었다. 북쪽으로 갈수록 모래보다 흙이 많아, 아침의 모래사장은 바다생물들의 세계였다. 또 다른 생명체들의 우주가 펼쳐졌다. 파도가 쓸린 뒤, 꼬물꼬물 바다 생물들이 지나간 뒤... 마치 거대한 예술작품 같았다. 경이로웠다. 내가 무심코 내딛는 걸음에 그곳을 터전 삼아 살고 있는 작은 생명들이 부서질까 조심스러웠다.      



더 북쪽으로 가면 더블식스 비치(Double Six Beach)였다. 해변 카페가 유명한 곳이어서 이른 아침과 낮보다 노을 질 무렵, 밤이 더 멋진 곳이었다. 노을 질 때 이곳을 지나다 보면 경쾌한 음악소리에 취한 분위기가 좋았다. 저마다 많은 사연들도 있겠지만, 자연과 음악에 몸을 맡기고 지는 노을을 가슴에 담은, 그 순간만큼은  평화로워 보였다.  


나의 산책코스는,  이른 아침에도 해지는 저녁에도 세미냑 비치(Seminyak Beach)까지였다. 쿠타 해변에서 출발하면 1 시간 30분 정도가 걸렸다.  


이른 아침의 세미냑 비치는, 누군가 아침 기도로 올렸던 차낭사리가 주인공이었다. 코코넛 잎으로 만든 사각형의 대바구니에 초록색 판단 잎, 바나나 잎, 쌀밥 조금, 하얀 꽃, 노란 꽃, 붉은 꽃, 그리고 달콤한 과자 한 조각.....  가족의 행복과 세계의 평화를 위해 기도했을 누군가의 염원이 담겼을 차낭사리. 


여행객이 사라진 쿠타 해변.  코로나 바이러스의 위력에도 파도는 끝도 없이 몰려왔다 갈 것이고, 노을은 붉게 타다 어둠 속으로 살질 것이고. 차낭사리도 여전히 해변의 한 부분을 차지하고 있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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