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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살아 숨쉬는 그녀 Jul 03. 2020

우리 모두 안녕들 합시다

코로나 시대의 친구들 02

 

많은 항공사들이 운행을 중단했고, 활주로에 내려앉은 비행기는 멈춰 섰다. 코로나 바이러스에는 국경이 없지만, 하늘 길에는 국경이 있다는 것을 실감한 봄이었다. 여행 중에 만난 친구들과 한 계절이 지나도록 서로의 안녕을 걱정했다. ‘코로나 바이러스가 삶을 어떻게 변화시켰는지, 사회적 거리두기 혹은 도시 봉쇄로 힘든 점은 무엇이었는지, 그 와중에 발견한 소중한 가치는 무엇이었는지’를 주제로 이웃에 사는 고3 수험생부터 가까운 일본을 비롯한 먼 노르웨이, 아프리카의 친구들과도 이야기를 나누었다. 여행지가 더 이상 남의 나라가 아닌, 내 소중한 사람들이 살고 있는 동네라는 것을 다시금 마음에 새겼다. 살아가는데 중요한 것이 무엇일까를 고민했다.      




1. 존(노르웨이. 오슬로. 80대. 은퇴 공무원) 

존과는 조지아 여행 중에 만나 나이를 넘어서 친구가 되었다. 지난 11월에는 존이 부산을 방문해 내가 근무 중인 학교에서 ‘세계시민’을 주제로 학생들과 토론회를 가지기도 했다. 노르웨이 오슬로에 거주하는 그는 근교 오두막에서 시간 보내는 것을 좋아한다.      


“대체로 오슬로 사람들은 오두막에서 휴일을 즐겨요. 그런데 코로나 바이러스 환자가 늘어나자 부활절 무렵에는 오두막을 방문할 수 있는 사람의 수를 제한했고, 오두막에서 하룻밤 묵는 것도 금지했어요. 숲 속에서 일을 하거나 산책은 할 수 있지만, 너무 아쉬워요. 하루빨리 오두막에서 묵을 수 있는 날이 왔으면 좋겠어요.”   

   

오슬로 근교. 존의 오두막. 

2. 박문순(일본. 도쿄. 40대. 출판사 편집자)

박문순은 도쿄에 거주하는 재일교포 3세이다. 초등학교 2학년 아들을 둔 그녀는 출판사에 근무한다. 친구들을 집으로 초대해 요리하고 이야기 나누는 것을 좋아하는 그녀는 페이스북에 자신의 일상을 글로, 사진으로 꼬박꼬박 남긴다. 나는 2017년 겨울 여행 때 그녀의 집에서 일주일을 묵었고, 추억 창고 같은 그녀의 페이스북을 읽는 쏠쏠한 재미를 즐긴다.     

  

“집에서 일하는 효율은 50% 정도밖에 되지 않아 힘들어요. 하지만 아들의 공부를 도와줄 수 있어서 다행이에요. 지난 3월에 학교는 문을 닫았고, 온라인 수업을 시작했죠. 저와 남편은 집에서 아들과 공예와 캠핑을 즐기며 가르침을 주고 있어요. 저는 미래를 책임질 제 아들이 사물을 일방적 관점이 아닌, 전체를 조감할 수 있는 관점을 가졌으면 좋겠어요.”     


온라인 수업 중이던 지난봄. 집에서 캠핑 중인 모습. 


3. 후안(브라질. 브라질리아. 40대. 다이버) 

후안은 브라질리아에 거주한다. 그는 수중 다이버이다. 2018년 요르단의 와디럼 사막에서 만나 페트라를 함께 여행했고, 페이스북으로 가끔 근황을 전한다. 신천지 대구 교회로 인해 바이러스 확진자가 늘어갈 때, 그는 도시를 봉쇄하지 않는 우리나라의 정책이 사실인지를 묻기도 했다.     


“브라질에서는 대부분의 도시들이 봉쇄되었어요. 공원도 문을 닫았죠. 공원 산책을 즐기는 저와 아내는 지금에 와서야 자유롭게 공원을 산책하던 때가 얼마나 좋았는지를 깨닫고 있어요. 요즘은 집에서 함께 TV를 보는데 많은 시간을 보내. 좀 전에도 넷플릭스에서 ‘브레이킹 배드’ 시리즈를 보았어요.”     

후안. 

4. 강화대(일본. 아이치 현. 70대. 빵 교실 운영) 

강화대 할머니는 일본 아이치 현의 바다가 보이는 시골마을에 거주하는 재일교포 2세이다. 사회복지사로 병원에서 근무하다 은퇴한 그녀는 집에서 빵 교실을 운영한다. 2019년 7월에 그녀의 집에서 일주일 동안 일본 요리와 빵 만들기를 배웠다. 타샤의 정원을 연상케 하는 그녀의 정원에서 빵과 차를 마시던 시간은 소중한 추억으로 남아 있다.      


“시골에서 혼자 사는 저는 책을 읽고, 정원을 가꾸고, 취미 활동을 하며 정신적인 건강을 유지하려고 노력해요. 며칠 전에는 뜰에 여문 여름 귤로 마말레이드를 만들고, 이웃에서 얻은 죽순으로 닭고기 찜을 만들었어요. 벌레가 먹은 구멍 난 스웨터에 둥글둥글 자수를 놓아서 수선했고, 앞치마를 만들었어요. 봄철에 입을 원피스도 만들었지만, 코로나 시대에 입고 나갈 곳도 없어서, 논두렁길 산책에 입고 나가 아이처럼 폴짝폴짝 뛰어다녔답니다.”     

강화대 할머니의 빵교실

5. 라디(불가리아. 플로브디프. 20대. 프로농구선수)

라디는 불가리아의 플로브디프에 거주하는 프로농구선수이다. 그녀는 개 두 마리를 키우며, 쌍둥이를 둔 친구와 함께 산다. 2018년 불가리아 여행 때 그녀의 집에서 일주일을 머물렀다. 농구 경기를 응원하며 그녀의 팀원들과 친구가 되었고, 동네 사람들과도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책을 읽고, 흥미 있는 주제를 조사하고, 분석할 시간이 생긴 건 좋은 일이죠. 요즘은 제 인생과 목표, 그리고 꿈에 대해 전보다 더 많이 생각하고 있어요. 가족들에게 더 감사하고, 그들과 더 많은 시간을 보내고, 바쁘게 지내면서 놓쳤던 작은 것들에도 주의를 기울이고 있죠.”     

강아지와 즐거운 시간을 보내는 라디. 


6. 이정희(캐나다. 토론토. 40대. 합기도장 운영) 

친구의 소개로 알게 된 40대의 이정희 씨는 토론토에서 합기도장을 운영한다. 대체로 남편의 회사일과 자신의 사업, 개인 여행, 가족 여행 일정을 한 달에서 6개월 단위로 미리 짜두고 움직인다는 그녀의 가족은 코로나 바이러스로 계획을 세울 수도 없다며 안타까워했다.      


“매일 아침 아기를 데리고 산책을 나가는데 사람들의 표정이 어두웠어요. 먼저 "hello" 하거나 웃는 사람들이 안 보이더라고요. hugs and kisses, 친절함, 웃음, 일상생활의 소소한 배려들이 참 그리워요. 그래서 저는 마스크는 썼지만, 사람들을 멀찌감치 만나도 눈웃음치거나 많이 웃으려고 하는 편이에요.”     

아이와 즐거운 시간을 보내는 이정희 씨.


7. 정청(중국. 칭다오. 30대. 대학교수)

정청은 칭다오 과학기술대학교 교수이다. 그녀가 부산외국어대학교에서 박사 후 과정을 밟을 때 우연히 수영장에서 만나 친구가 되었다. 그녀는 나에게 틈틈이 중국어를 가르쳐 주었고, 나는 한국어를 가르쳐 주었다. 2018년 여름 칭다오 여행 때 나는 그녀를 방문했고, 그녀는 나의 중국 여행을 도와주었다. 출산 휴가 중이던 그녀는 2월에 복직하여 온라인 수업을 진행하고 있다.       


“바이러스의 위험을 깨달았을 때가 춘절 때였어요. 그때만 해도 코로나가 독감보다 더 사나울지도 모르는 바이러스라고만 생각했죠. 아기 때문에 음력 섣달 그믐날의 가족모임을 우리 집에서 가졌거든요. 춘절 낮에 다시 만날 계획도 세웠는데 취소해야 했어요. 엄격한 도시 봉쇄 명령이 내려졌거든요. 5일 뒤에는 의약품과 유아용품 등을 판매하는 업소를 제외한 모든 상점과 음식점, 스포츠센터가 문을 닫았고요.”     

가족과 즐거운 시간을 보내는 정청.


8. 마리암(이란. 테헤란. 20대. 직장인) 

테헤란에 거주하는 마리암과는 카샨 근교 유적지 여행에서 만난 후 온라인으로 소식을 주고받는다. 가끔 우리에게는 낯선 이란의 문화를 소개해주는 마리암 덕분에 이란을 가까운 나라로 느끼고 있다.      


“이란에서는 밤과 낮의 길이가 같은 춘분에 맞춰 시작되는 새해 노루즈(Nowruz)가 시작돼요. 올해는 3월 21일이었는데, 행복하지 않은 새해를 시작해야 했어요. 새해 아침의 중요한 관습인 입맞춤과 포옹을 나눌 수 없었고, 가족, 친척, 친구들도 만날 수 없었으니까. 무엇보다 할아버지 할머니를 화상 통화로 만나야 해서 제일 아쉬웠어요.”      

마스크를 꼭 써야한다고 당부하던 마리암. 


9. 베레니스(벨기에. 브뤼셀. 20대. 전직 잡지사 직원) 

브뤼셀 거주하는 베레니스는 딸의 친구이다. 두 사람은 벨기에 적십자사에서 운영하는 난민캠프에서 만난 친구가 된 후 지금도 연락을 주고받는다. 베레니스는 사회적 거리두기 기간에 브뤼셀 근교 시골 어머니 집에 머물고 있다.      


“성인이 된 후 처음으로 24시간을 집에만 있는 생활이 당황스러웠어요. 유럽에서는 생겐 조약에 따라 프랑스, 이탈리아, 스페인 등 어떤 나라든 여권 없이 갈 수 있고, 공부할 수 있었는데, 그런 것에 제약받는 것 자체가 위기로 느껴졌거든요. 하지만, 온라인으로 친구들을 만나기 시작하면서 제가 느끼는 불안감이 저만의 문제가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되면서 위로가 되었어요.”      


10. 블레어(타이완. 30대. 실내 인테리어 디자이너) 

블레어는 타이베이에 거주하고 있다. 그녀와는 불가리아 국경도시의 한 게스트하우스에서 만났다. 블레어는 6개월의 여행 후 타이완으로 돌아가 프리랜스로 디자인 일을 계속하고 있다.      


“대만에서는 전염병이 심하지 않기 때문에 외국에 나가지 못해 고민이라는 것 외에는 큰 변화도 없어요. 그래도 대중교통을 이용할 때나 붐비는 곳으로 외출할 때는 손을 씻고, 마스크를 착용하며 정부의 정책을 준수하고 있어요. 사람들이 약간의 개인적인 불편함만 참으면, 방역 비용이 줄어들 수 있다는 것을 이해했으면 좋겠어요.”     

아리산 등산 열차.

11. 지아(중국. 시안. 20대. 부산대학교 대학원생)

시안 근처가 고향인 유학생 지아(班歌欣)는 부산대학교 대학원생이다. 지난 2월에 학교 프로그램으로 상하이에 가려고 했으나 코로나 바이러스로 인해 가지 못했다. 부산에서 여섯 번째 생일을 맞은 그녀는 온라인으로 중국에 있는 가족, 친구와 안부를 주고받는다고 했다.     


“우한에 살고 있는 친구가 한 명 있어요. 며칠 전에 봉사활동으로 마스크 공장에 마스크 생산지원을 갔다고 하더라고요. 그 소식에 감동했어요. 우한에서는 제 친구 외에도 많은 20대들이 봉사활동에 지원하고 있다고 하더라고요. 저는 중국에 못 가지만 마음속으로 기도하고 있어요. 고통이 없는 행복한 세상이 되었으면 좋겠다고요.”     

지난해 서울 여행 때의 사진을 보내 준 지아. 

12. 박준영(해운대구. 고등학교 3학년) 

박준영은 이웃이다. 두 달 넘게 학교에 가지 못하고 온라인 수업 중일 때, 엄마를 따라 우리 집에 와 수능을 앞둔 고3 수험생의 어려움을 나누었다. 


“학교에서 이루어지던 사소한 일상과 멀어진 일이 가장 아쉬워요. 친구들과의 수다, 복작거리던 급식 시간의 풍경, 교실 창문에서 바라보던 노을 같은 것이요. 친구들과 어울려 먹던 햄버거, 라면, 돈가스가 생각나기도 하고요. 수업만큼 중요한 것이 수업 사이사이에 이루어지던 수많은 잡다한 일들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어요.”     

교과서를 받으러 학교에 닸을 때 친구들과 잠깐의 만남을 즐겼던 준영.

13. 장량(영국. 런던. 40대. 대학교수)

장량은 정청의 지도교수였다. 지금은 런던의 한 대학에서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다. ‘코로나 시대의 친구들’이라는 프로젝트에 대해 알게 된 그는 자신의 영국 생활에 대해 들려주었다. 


“우리가 가진 것을 당연하게 여겨서는 안 된다는 것을 깨달았죠. 인생은 한 걸음 뒤로 물러나 다른 각도로 바라보면서 삶을 마음껏 즐길 필요가 있어요.”     


14. 사이마(나미비아. 빈트후크. 30대. 여행 가이드)

사이마는 2019년 아프리카 여행 때 만났던 여행 가이드이다. 코로나로 인해 아프리카 관광객이 사라지고 집에 있게 된 그녀는 가끔씩 페이스북으로 근황을 보내왔다. 


“여행 가이드 일이 없어져서 집에 있어. 더 이상 예전과 같지 않아. 하지만 집은 안전하니까 걱정 마.”


15. 데이비드 David. 인도네시아. 발리. 30대. 서핑 강사

데이비드는 지난 1월 발리 여행에서 만났다. 서핑 가이드인 그는 숙소 부근의 식당 2층에 살고 있어서 해변으로 오갈 때마다 만나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쿠타 해변이 봉쇄되었어. 관광객이 가득하던 해변에는 파도소리만 들려요. 바다가 그리워요.”     


쿠타 해변에서의 데이비드. 

여전히 코로나 바이러스 환자는 생겨나고, 다가올 겨울에도 코로나 바이러스가 급증할 수 있다는 소식이 들려오지만, 가족이나 이웃을 걱정하고, 나누는 소소한 즐거움으로 힘을 내는 소식도 들려온다. 국경 없는 바이러스처럼 먼 나라 친구들의 안녕을 걱정하고 위로하는 마음에도 국경이 없다는 것을 떠올리며 코로나 이후를 모색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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