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러니 이제까지 결혼을 못 했지
그녀는 코끼리처럼 기억력이 좋아서 사소한 것을 언제까지고 기억했다.
머리가 나쁜 것을 기억력으로 때우는 것이다. 내가 다른 여자와 친하게 지낼때만 봐도 그렇다.
“자기는 나 말고 다른 여자와는 데이트 비슷한 것 따위를 하면 절대 안 돼.”
그녀가 역사를 훑듯 당연하다는 듯이 말했다.
“데이트도 아니고 데이트 비슷한 것 따위라니?”
나는 정말 순수하게 물었지만 그녀의 눈썹은 미간을 중심으로 모였다.
내가 자신을 비꼰다고 생각을 한 거다.
“뭐?”
그녀가 반사적으로 대답했다. 분명 생각보다 신경이 먼저 반응했으리라.
“나 말고 다른 여자와 만나는 게 당연하다는 거야?”
이게 무슨 말이람.
“자기는 전에도 다른 여자와 영화를 보고 카페에 가서 그 영화에 대해 얘기를 나눴고,
주변 바에 가서도 끊임없이 얘기를 했잖아. 보통 그런 데이트 순서는 연인 사이에서나 하는 거라고.”
“그건 벌써 1년 전 일이야. 게다가 그건 자기를 사귀기도 전에 일이라고”
물론 그때 얘기를 나눈 그녀와 지금의 여자 친구를 두고 갈등을 하던 시기다.
그렇다고 해서 내가 잘못을 했다고 생각을 하지는 않는다.
그녀가 입을 다문채 양쪽 어금니를 앙 문다.
위험한 징조.
“자기가 우리 만나고 초반에 말했지, 서로의 사생활은 존중하자고.
나도 동의해. 하지만 사생활에도 선이 필요하다고 생각해.”
정확한 선이 없이 감정에 호소를 하고 있다.
이대로라면 내가 절대 그녀를 이길 수 없다.
“그러면, 카페랑 바에 갔다가 영화를 보고 헤어지는 건 괜찮아?”
훌륭한 답변이다.
“.....”
그녀가 테이블 위에 올려져 있던 거울 대용의 파운데이션과 립글로즈를 가방에 넣는다.
훌륭한 답변이 아니었다는 거다. 훌륭한 답변의 기준이 나와 다른가보다.
나의 기준은 이 문제를 올바르게 해결하는 거고, 그녀의 기준은 자신의 기분에 맞추는 거다.
이러한 기준의 척도에 대해 혼자 생각하는 동안 그녀는 가방을 다 쌌지만 일어나지는 않는다.
단지 자신이 얼마나 화가 났는지는 표현을 하는 거다.
그래도 여전히 말이 없다.
“그러면 자기가 원하는 사생활의 기준은 어느 정도야?”
그녀의 기분을 풀어주기 위해 나긋나긋하게 물어본다.
“......”
여전히 말이 없다. 자신도 모르는 것이다.
이성 친구를 아예 못 만나게 하는 그런 꽉 막힌 애인이 되기는 싫지만 제대로 된 반박을 하지 못 하는 것이다.
모든 연애는 항상 이렇게 아닌 척 시작하고, 결국 이렇게 끝난다.
(본문의 '코끼리' 비유는 무라카미 하루키의 '빵가게 재습격'의 일부를 인용도 하고 응용도 했습니다)
(아 그리고, 픽션입니다.)
(아 그렇다고 해서 결혼에 성공한 건 아닙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