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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시온 Dec 08. 2017

무지에 대해서.

흰색 방에 있었더라면.

아는 것이 힘이다. 첫 사용자 - 지금 와서 찾는 들 뭔 의미가 있겠냐만은 - 는 명백하게 밝혀지지 않은 이 문구. 이 문구가 가지는 의미가 뭘까에 대한 생각을 많이 한다. 아마 (의심되는 원작자는 프란시스 베이컨 경의 사용 경황에 비춰 보았을 시) 무지로 인해 오는 무감각에 대한 비판이겠지, 라는 생각을 하며 오늘도 인터넷을 검색하다 창을 끈다.

답답하다. 잠시 밖에 나가 담배 한 대를 태운다. 조금 우울한 감에 맥주를 몇 병 마신다.

어지러운 머리로 생각해 봐도 베이컨 '경' - 제아무리 격식을 좋아하는 내가 봐도 과한 단어 같다 - 은 틀린 것 같다는 생각에 머리가 어지럽다. 이건 분명 술기운 때문이 아닐 거라 되뇌이며 노래를 틀며 다시 생각한다. 아니다. 내가 틀리지 않았다. 그것만은 확실하다.

무지했다면 좋았던 나날들은 과분히 많다. 왜 나는 결코 도달하지 못할 점들을 향해 손을 뻗고 있었는가 의문이 든다. 행복이라는 개념을 몰랐으면 한다. 우울함 속에만 빠져 살았더라면 이게 바닥인 줄은 몰랐을 것이다. 성공이라는 개념을 몰랐으면 한다. 이 계단의 시작에 쭈그려 앉아 있어도 행복했을 것이다. 아, 아니 행복이라는 개념을 모를 터이니 이게 '정상'이라 생각했을 것이다. 타인 모두가 우울해지기를 기다린다. 아무리 둘러봐도 모두가 나보단 행복한 일들이 넘쳐 보인다. 글쎄, 그게 표면과는 다르다 한들 그렇게 보인다 하면 어찌할 건가. 결코 우울한 사람들로 넘치는 세상이 되기 힘들다면 모두가 사라지길 기다린다. 불가능하다. 폭탄이 떨어지길 기도한다. 나 혼자 온전히 안전하게. 홀로. 산다. 행복해지는 듯하지만 그것 또한 불가능하다는 것을 안다.

아, 이렇게 될 거라면 내가 소멸해야겠구나. 내가 사라지는 게 답이겠구나. 싶은 생각들이 올라온다. 에공 쉴레의 그림을 본다. 각진 사람의 모양새가 마치 나와 같다. 아니, 나보다는 아름답지만 저건 뒤틀린 사람이다. 저게 나와 같다고 믿었던 것인데 내 착각이었다 보다.

소멸은 죽음과 다르다는 생각이 든다. 소멸한다는 것은, 그저 있었던 흔적조차 함께 존재하지 않음이 된다는 뜻이다. 죽음은 삶의 일부다. 소멸은 아니다. 하지만 삶에는 소멸과 가장 근접한 것이 하나 존재하는데 그건 죽음이다. 하지만 내가 죽는다면, 만일 이 많고 많은 회색빛 날들 중 하루 내 심장이 멈춘다면, 그건 슬퍼할 필요 없는 소멸의 현상일 뿐이다. 단지 다른 개념으로 넘어간 것뿐이다.

모두가 우울해지기 불가능하다면 내가 먼저 소멸해야겠다,라고 나는 생각했다. 하지만 이내 행복하다는 말을 반복하는 말을 되뇌는 노래에 속아 잠시 행복이라는 것에 젖는다. 

모든 것들을 몰랐다면 행복했을 것이다. 음정이 맞지 않는 목소리로 나는 노래한다. 행복했을 것이다. 행복했을 것이다. 소멸할 수만 있더라면, 내가 좀 더 용기가 있었더라면, 행복했을 것이다. 좀 더 그 따뜻한 가득한 개념에 가득했을 것이다. 이게 삶의 목표가 아닐지언정, 충분한 안식처였을 것이다.

아는 것이 힘이었던 적이 있던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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