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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시온 Feb 24. 2019

나의 반만 보이는 월드컵.

다시 고개를 고쳐 들자.

2002년의 월드컵을 선명하게 기억하지는 못한다. 하지만 그 해의 여름, 작은 아파트의 마룻바닥에서 부모님과 아주 어린 동생과 함께 방송으로 축구 경기를 봤다는 아주 희미한 그림만 그려진다. 마치 그 당시 왼쪽 눈에 안대를 차고 고개를 오른쪽으로 갸우뚱거리며 어지럽게 흔들리는 화면 위의 색들을 바라보던 내 모습과 같이 말이다. 왜 내가 안대를 차게 됐는지는 그로부터 대략 1년 전의 시간이 설명해 준다.


나는 이 시간을 기억하지 못한다. 부모님의 말씀을 통해 전해 들은 바로는 나쁘지 않던 왼쪽 눈의 시력에 비해 비약적으로 나쁘던 4살 무렵의 내 오른 눈이 있었다. 아마 조금이라도 잘 보이는 눈으로 보려고 했던 본능적인 몸부림이었을 거라 생각한다. 자꾸 고개를 오른쪽으로 갸우뚱 거리며 허리를 구부리며 화면을 쳐다보던 나. 이런 내 모습을 보고 외가와 친가의 반응이 갈렸다 들었다. 외가는 신경계 문제 거나 시력 문제일 테니 병원에 데리고 가라고 재촉했으나, 친가는 아이들은 자라면서 다들 그런다고 호통을 치며 병원에는 절대 못 간다고 했다. 분명 아버지도 첫 자식이었던 나에게 문제가 있던 사실을 받아들이기에는 아버지라는 일을 받아들인 지 오래되지 못했다. 그런 마음에 나에게 베개를 던지며 호통을 쳤다 한다. 좀 똑바로 보라고. 왜 자세가 그런 식이냐고. 참다못한 어머니께서는 자식 한 명도 병원에 데리고 갈 수 없다면 결혼을 파하자고 제안했다. 그 말 한마디에 온 집안이 또 뒤집혔다. 구체적인 싸움의 경과는 모르지만, 결국에 병원으로 향한 나는 가림 치료를 받게 됐다. 잘 보이는 눈을 안대로 가리고 시력이 안 좋던 오른쪽 눈만 쓰게 해서 두 눈의 시력 간의 차이를 메우는 치료인데, 의사 왈 조금이라도 늦었으면 오른쪽 눈이 있으나 마나 한 꼴이 됐을 거라 했다. 그렇게 고맙게도 나는 근 3, 4년간을 안대를 차고 다녔다. 자꾸만 기울어지는 고개를 바로잡으면서, 한쪽만 미끄러지는 시력을 바로잡으면서 말이다.


그 시절은 다행히도 트라우마로 남지 않았다. 얼마 전에서야 이 이야기를 듣게 됐던 나는 마치 남 이야기를 듣듯이 차분했다. 그랬구나, 그랬나 보다. 나 한 사람이 있기 전까지 너무나도 많은 사람이 부닥끼고 머리에 열을 올렸다는 사실이 속상했다. 결과적으로는 잘 된 일이긴 했다. 지금 내 시력은 안경을 쓰지 않고도 일상생활에 아무런 지장이 없을 정도로 괜찮다. 약간의 난시 때문에 모니터를 오래 보면 눈이 피곤한 점은 어쩔 수 없음을 알기에 지금의 결과에 감사하다.


나의 반만 보이던 2002년의 월드컵으로부터 무려 16년이라는 시간이 흘렀다. 입만 열면 침을 흘리던 나는 그때의 모습과는 매우 다르다. 나뿐만 아니라 가족의 모습도 바뀌었다. 일이 좀 더 바빠지신 아버지는 평일에는 집에서 보기 힘들고, 어머니는 일을 마치고 피곤에 이끌려 일찍 잠에 드신다. 우리 집에서 월드컵을 보는 사람은 하나 없다. 하지만, 역시나, 예상했던 것처럼, 월드컵은 정상적으로 시작했고 대한민국과 스웨덴이 경기를 치렀다는 소식을 들었다. 스쳐 지나가듯이 뉴스 헤드라인을 읽어 보아도 우리나라의 실적이 부진했음을 알 수 있었다. 유효 슈팅이 0인 게임은 정말 오랜만이라고 하면서, 칭찬할만한 점이 골키퍼 한 명이라는 점, 해외 언론에서 볼 이유가 없다는 경기였다는 말까지, 정말 최악이었나 보다 싶었다. 1:0으로 끝난 게임은 정말 상처로만 남은 것 같았다. SNS에서는 욕이 난무했다. 그럴 만도 하지, 라며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인터넷 창을 껐다.


그 날로부터 며칠 뒤였다. 어머니로부터 가림 치료 이야기를 듣게 된 날이. 결과만 보면 훌륭했지만 과정을 보면 상처뿐이던 기억들을 받았다. 과정이 훌륭했으나 결과가 상처뿐이던 기억 또한 있다. 나의 삶은 단순한 [좌:0.8/우:0.8]로 종결시킬 수 있는 문장이 아니다. 마치 [유효슈팅:0/득점:0]이라는 숫자만으로 요약할 수 없는 대한민국의 경기처럼. 그렇게 나는 아직도 오른쪽으로 기울기만 하는 내 고개를 다시 왼쪽으로 올린다.

나는 아직도 월드컵을 반만 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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