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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시온 Mar 08. 2019

대학생 C.

쳇바퀴에 대한 연구.

나는 C가 우리 과에 있다는 사실 조차 몰랐다. 과 단톡 방에서도 없었고, 당연히 MT나 신입생 환영회에서 보지 못했다. 그를 처음 본 것은 학생회 출마 후보 리스트였다. 옆에 있던 선배는 동기라는 C를 아냐고 물었고 나는 침묵으로 답했다. 그러고 우리는 한 교양 수업에서 만났다. 출석을 부르는 도중 C의 이름을 듣고는 고개를 돌려서 봤더니 그는 역시 소문처럼 생겼었다. 그의 외모에 대한 소문이 아니다. 그는 그저 「소문」과 같이 뭔가 불확실하며 어딘가 잊혀도 이상하지 않은 그런 얼굴이다. 그렇게 그는 사람들 사이에서 무기력하게 떠다니고 있었다.


그런 C에게 내가 굳이 말을 걸어야 했던 것은 그가 수업 후에 양복을 차려입은 여러 명의 사람들과 같이 교실을 나갔기 때문이다. 그것을 제외하고는 말을 걸 흥미조차 생기지 않던 그였지만 그런 의아한 장면을 보고는 나는 궁금증을 참을 수 없었다. 옆 자리에 있는 수강생에게 물었다.


"저기, 혹시 저 애가 왜 저 사람들이랑 나가는지 알아?" 나는 최대한 상냥하게 물었다.

"쟤 그거잖아. 루퍼." 다행히도 그 아이는 똑같은 상냥함으로 대답해줬다.

"아 역시! 알려줘서 고마워."


나는 안도하며 급하게 가방을 챙기며 일어났다. 루퍼, 분명 자신의 죽음을 기점으로 다시 태어나는 시점으로 돌아가게 되는 이들이다. 그들은 하나의 시간대에 대한 영향력이 막강해 한번 존재가 확인된 후로는 정부의 밀접한 모니터링이 이뤄지며 본인의 죽음에 대한 정보의 대가로 막강한 재정적 지원을 받는다. 그런데 왜 저렇게 사는 걸까, 하는 궁금증이 솟았다. 나에겐 누군가의 인생을 판단할 권리는 없었지만 내가 아는 루퍼는 C와 분명 달랐다. 좀 더 반짝반짝하고, 당당하고 너무나도 다른 세상에서 살아온 듯한 느낌이 그에게는 없었다. 양복의 사람들과 방에 따라 들어간 C가 나오기를 기다린 나는 그에게 당당하게 말을 걸었다.


"너 루퍼라면서."

C는 잠깐 놀란듯한 표정을 짓더니 이내 긴장을 풀었다.

"너구나."

"나를 알아?" 예상외의 답변이었다.

"... 같이 수업 듣잖아."

그러곤 어색한 침묵이었다. C도 나도 더 이상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몰랐다. 시간이 몇 분 흘렀는지, C는 어떻게든 이 상황을 모면하려는 듯 입을 열었다.

"이제 다음 수업 가봐야 할 것 같아."

그가 발걸음을 돌리려는 순간 나도 모르게 나는 그를 붙잡았다.
"나 너에 대해 알고 싶어." 내뱉는 순간 이상한 단어 선택에 후회했지만 C는 어울리지 않는 기묘한 웃음을 짓고는 답했다.

"그래?"


그렇게 나는 C와 만났다. C는 나와 만나는 인생을 이미 살았을지도 모른다. 그런 수십 아니 수천번을 넘는 인생에도 나에게 해줬을 루퍼에 대한 이야기를 C는 천천히 설명해 줬다. 사실 루퍼는 시간의 불균형을 맞추기 위해 생겨난 종양 같은 존재라고, 최초의 루퍼의 실수를 바로잡기 위해 다른 루퍼가 생겨났고, 그 순환의 구조가 지금의 세상을 만들어 냈다는 사실은 몇 번을 들어도 흥미로운 이야기였다. 그러면 최초의 루퍼는 어떻게 생겨났는데? 그럼 루퍼가 실수를 한번 하면 한 명의 루퍼가 생겨나는 거야? 끊임없는 물음에도 지칠법했지만 C는 본인이 아는 내용은 답해줬다. 모른다는 부분은 모르다고 해줬다. 그가 모르는 내용을 내가 알 리는 없었다.


C가 가장 대답하기 곤란해했던 질문은 본인의 죽음에 대한 이야기였다. 몇 번을 물어봐도 그는 그저 보잘것없는 죽음일 뿐이라고 답했다. 그래서 본인은 다른 루퍼만큼 큰 정부의 지원이 없다고 말하는 C의 말이 나는 이해가 가지 않았다. 보잘것없는 죽음은 없어.라고 강하게 반박하는 나에게 그는 그저 고개를 저었다.

"너는 이해하지 못할 거야. 나도 이런 죽음은 싫어."라고 말하는 그의 얼굴은 너무나도 슬펐다. 내가 봤던 가장 감정적인 C의 얼굴이었다. C의 죽음에 대한 대화는 항상 같은 결론이었다. '본인의 죽음을 지키지 못한다면 또 다른 루퍼가 생길 것이다. 그래서 지켜야만 한다.'가 다였다. 거기서 굳이 더 자세하게 설명하려 하지 않았다. 그 선만큼은 C는 넘지 않았다. 그가 어떻게 죽는지, 언제 죽는지, 왜 죽는지에 대한 이야기는 직접 듣지 못했다. 그런 C와 나의 기묘한 친구 관계는 어느 날 끝이 났다. C나 나 중 누가 먼저 끊어낸 것이 아니었다. C는 예고도 없이 죽었다. 뉴스에 나올 법한 대규모 테러도 아니었고 부실공사로 인한 사고로 생긴 인명피해도 아니었다.


C는 자살했다. 우울증이라고 했다.


C는 분명 알고 있었다. 어느 날 어느 시각에 죽을 것인지. 왜 죽을 것인지. 그의 안에서 자라는 검은 개에게 그는 결국 잡아 먹히고 말았다. 그럼에도 그는 보잘것없는 죽음일 뿐이라고 했다. 새로운 가능성, 삶을 의미하는 탄생을 앞으로도 계속 경험하면서 그는 「보잘것없는 죽음」을 반복해야만 할 것이다. 그가 제 때에 죽지 않는다면 또 다른 루퍼가 생길 것이라는 책임감이 그를 죽음으로 이끌었다는 생각이 나를 복잡하게 한다. C의 인생은 이기심이 허락되지 않는 인생이었다. 삶에 대한 이기심, 사람에 대한 이기심, 사랑에 대한 이기심도 가지게 되는 순간 그는 죽지 못했을지도 모른다.


결국 죽었어야 했다. 그는 불행했어야만 했다. 나는 알고 있었다.




나는 원고지의 마지막 줄을 그렇게 마무리 짓고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집 안에는 연기와 열기가 가득했다. 이미 깨진 창문 밖에서 가족들이 나를 부르는 소리는 들리지 않는다. 그들은 기다리고 있다. 아아, 이게 끝이다. 나의 실수로 떨어진 작은 불씨가 이미 거대해져 나의 집을 집어삼키고 있다. 이미 타기 시작한 나의 원고지 묶음을 바라본다. 이 이야기는 아무도 보지 못할 것이다. C의 이야기를 기억하는 이는 이제 없다. 그는 드디어 죽는 것이다.


나는 눈을 감고 나의 죽음을 맞이한다.


하나




나는 눈을 뜬다.


나는 태어났다. C의 보잘것없는 죽음이 다시 어디선가 언젠가 일어날 세상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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