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으로 뻔한 제목이다. 스물과 서른의 청춘이 만나서 겪는 일과 감정을 드라마로 쓰고 싶었다. 나의 경험을 가지고서. 제대로 된 작법도 배우기 전 무작정 워드를 켜고 자판을 두들겼지만 얼마 못 가 손이 멈췄다. 막연히 이러저러한 이야기를 써보자고만 생각했지, 속을 뭘로 채울지 진지하게 정리해본 적이 없었으니까.
'대본을 쓰려면 일단 내 얘기부터 정리해야겠구나.'
스물아홉이었던 작년에 더더욱 그런 생각이 더 강해졌다. 곧 맞이할 서른을 기념해 스무 살부터의 10년을 돌아보자고. 벌써부터 점점 희미해져 가는 20대 초반 기억을 어떻게든 남기고 싶었다. 원체 서투르고 못났다 싶어 없던 것처럼 살고 있지만, 분명 존재했던 시절.
주제도 정했고, 어떤 에피소드를 쓸지 구체적인 구상까지 해놓은 채 멈추었다. 코로나가 갑작스레 일상에 침투했고, 회사 상황이 급격히 불안정해졌다. 시시각각 변하는 코로나 상황 때문에 연간 손익이 얼마나 돌아가는지 분석하는 게 주된 업무가 되었고, 회사는 유급휴직, 희망퇴직 등 다양한 방법으로 인건비를 줄이기 시작했다. ‘드라마를 만드는 사람’이라는 꿈이 사치 같았다. 뒤숭숭한 분위기가 맴도는 사무실로 출근하면서 점점 손을 놓아버렸다. 일주일 내내 출근했던 적도 있고, 겨우 일을 끝내고 집에 왔더니 자료를 다시 만들어야겠다는 카톡을 받기도 했다. 그즈음 나는 매일 아침 눈뜨는 것만 해도 버거웠다.
밥벌이가 우선이었다. 지금보다 더 안정적인 회사로 옮겨야겠다는 일념에 꿈을 바라보며 주말 아침잠을 포기하고 참석하던 스터디도 관뒀다. 자연스레 글쓰기도, 스물아홉을 맞아 적어보겠다던 나의 에세이 프로젝트도 기약 없는 미래를 약속하며 덮어두었다.
먼지가 폴폴 내려앉은 책을 다시 펼치게 해 준 건 세 가지였다.
2020년 연말. 2021년이 되어도 아직 만으로는 서른이 아니니까. 그전에만 글을 완성하면 스스로와의 약속을 지키는 거라고 한 번 더 기회를 주기로 했다.
친구. 자주 보지 못해도 이따금 들리는 소식만으로도 자극이 되는 사람이다. 늘 하고 싶은 일을 얘기하면서도 망설이기만 하지 정작 뛰어들지 못하는 나를 보고 친구는 늘 얘기했다. 거지 같은 초고를 써야 뭐든 시작된다고. 그리고 그 초고를 발전시킬 기회가 생각보다 많다고.
“제발 일단 그냥 쓰세요.”
아이돌의 인터뷰. 정말 온갖 덕질을 해보았지만, 아이돌은 동방신기가 처음이자 마지막일 거라고 확신했다. 어른들이 흔히 하시던 말씀처럼 다양한 컨셉의 아이돌 그룹을 보면 신기하면서도 ‘가가 갸같고 갸가 가같은’ 대혼돈에 빠지고 말았으니. 하지만 절대 좋아할 일 없던 사람에게 치이는 것도 덕질의 법칙. 어쩌다 한 아이돌 그룹에 푹 빠져버렸다. 입덕 한 지 얼마 안 되어 본 인터뷰에서 한 멤버가 들려준 얘기에 뒤척이며 울었다. 처음으로 객지 생활을 시작한 스무 살의 내가 떠올라서. 누군가 잔뜩 감정을 휘저은 것만 같았고, 이대로 다시 가라앉게 두기 싫었다.
스물과 서른, 10년의 간격을 두고 열 가지 얘기를 하려 한다.
예쁘게 반짝이는 이야기는 아니다. 나를 괴롭혔고, 어쩌면 여전히 답을 찾고 있는 주제들이다. 특히 20대 초반의 대부분은 무채색의 나날 같았다. 상상하며 한껏 기대에 부풀었던 게 무색하게도.
외로움에 관한 이야기다. 19년 동안 살던 고향을 떠나 서울에서 객지 생활을 시작했고, 중간에 고향으로 돌아갔거나 가족과 함께 살았던 시간도 있었지만 대부분 혼자였다. 지금보다도 훨씬 미성숙한 자아를 방패 삼아 홀로 객지 생활을 헤쳐나가려니 스스로가 너무 작게 느껴졌던 때.
그래도 그 시간을 지나왔으니 써보기로 한다. 감히 그런 상상도 한다. 일면식도 없는 누군가, 단 한 명이라도 나의 스물과 서른을 읽고 ‘세상에 나처럼 생각하는 사람이 또 있구나‘ 위로받기를. 그게 아니어도 괜찮다. 너의 시절을 분명 기억하고 있다고 스스로에게 말해주고 싶어서 이 글을 쓰기로 했던 거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