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와 관계를 쌓아가는 일
"Hi! A latte for you?"
여느 때처럼 주문을 하기 위해 들어선 카페에서 평소와 다른 인사말이 나를 반겼다. 예기치 못한 환대에 크게 웃으며 맞다고 대답한 뒤 라떼에 곁들일 쿠키까지 골랐다. 드디어 네덜란드에도 "오늘도 라떼로 드릴까요?" "네. 그걸로 주세요"라는 말로 주문과 함께 안부를 전하게 된 카페가 생겼다. 운하 근처 벤치에 앉아 커피를 마시는데 왠지 또 킥킥 거리며 웃게 된다.
내 입장에서야 외출을 할 때마다 찾는 카페지만, 코로나19 조치가 내려진 이후로는 한 달에 두 번, 많아야 세 번 밖에 못 가는 카페다. (아무도 마스크를 끼지 않는 로테르담에서 항상 마스크를 끼고 다니는 아시아인 손님이니 기억에 남기야 했겠지만...) 이사 온 지 네 달을 채 채우기 전에 일어난, (나에게만) 기념비적인 사건이다. 이전에 우트렉에서 매일 같이 가던 카페는 학교 캠퍼스에 있어서 누군가를 기억하기엔 손님이 늘 많았고, 일하는 사람도 자주 바뀌었다. 그다음으로 자주 가던 카페는 가볍게 눈인사를 나누거나 시시한 농담을 주고받는 정도였고, 이것 역시 다른 형태의 환대라는 것을 알고 있다. 하지만 내가 즐겨 찾는 메뉴를 부담스럽지 않게 편안한 톤으로 물어봐주는 것은 정말 사람을 웃게 만드는 수준의 환대다.
내가 시킬 커피의 종류를 이미 알고 있는 카페는 오늘 로테르담의 이 카페 이전에도 한 군데가 더 있었다. 1년 여 간 살았던 그라나다의 'deti'라는 카페로 그곳을 운영하는 Steve는 스페인어를 유창하게 하는 영국인이었다. (그리고 나의 오늘을 특별하게 만들어 준 사람은 아시아계 더치 바리스타였다!) 좀처럼 입맛에 맞는 커피를 찾기 힘든 스페인에서 라떼를 끝내주게 내려주는 카페가 도보 10분 거리에 있었다니 지금 생각해도 정말 큰 행운이었다. 2019년 그라나다를 다시 찾았을 때는 안타깝게도 부활절 연휴에 일정이 걸린 데다 곧 문을 닫을 거라는 청천벽력 같은 소식도 들었다. deti는 행정서류를 내기 위해 찾은 국제학생처에서 만난 인턴 학생의 제안이자 초대로 처음 가보게 된 곳이었다. 그러니까 타지에서는 처음으로 친구를 사귀게 된 곳이면서 그곳에서 대화를 나눈 모두가 결국엔 친구가 되어버린 곳이었다. 그라나다를 떠나는 날 마지막으로 사진을 찍은 장소도 deti였다. 내가 그 카페의 단골이었던 것은 2015년에서 2016년, 딱 1년의 시간이지만 나와 친구들의 아지트였던 만큼 이런저런 기억이 빼곡하게 엮여있는 곳이었다. 매일매일 새로운 만큼, 오랜 시간 두렵기도 했던, 시간이 지나도 좀처럼 긴장을 풀 수 없었던 그 도시에서 "라떼에 바나나 케이크?"라는 인사말을 건네주던 deti는 2019년 5월로 영업을 종료했다.
브런치에 글을 쓰는 게 3주 만인데 사실 이 글을 발행하기 전 한참 동안 저장만 해둔 글이 있었다.
집에 있는 시간이 길어지다 보니 아무래도 "사는 곳"에 대한 이야기보다 더 좋은 글감을 찾기가 어렵다. 지금까지 여행한 유럽 도시들이 어림잡아 50개 정도 되는데 그중 가장 좋았던 곳, 살아보고 싶은 곳이 어디냐 물으면 대외적으로는 암스테르담, 코펜하겐, 빈을 말하지만 내 마음속 1위는 언제나 로테르담이었다. 로테르담을 선뜻 먼저 말하지 못하는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는데 1. 수도가 아니다 보니 상대적으로 인지도가 낮고 2. 미디어에서 비추는 오래되고 아기자기한 모습의 유럽과는 거리가 있으며 3. 그러다 보니 여행지로는 실망하는 경우를 종종 봐왔기 때문이다. 그래도 네덜란드 안에서 갈 곳을 추천해달라는 질문에는 언제나 로테르담을 말하곤 한다.
지난 1월 말, 로테르담 영화제가 한창이던 그 주간에 나는 로테르담을 다시 찾았다. 영화제 티켓도 예매해두었고, 보고 싶은 전시도 메모해두었지만, 이번에는 살러 왔다. 집을 구하기도 전부터 로테르담의 좋아하는 장소들을 곱씹어보며 들뜬 마음으로 하루하루를 보냈다. 이전에 살았던 우트렉이나 스페인의 그라나다는 학교를 정하면서 자연스레 "살게 된" 곳이었다. 태어나서 자란 서울은 말할 것도 없다. 이 도시들을 아끼지 않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이런저런 것들을 따져보며 "살기로 마음먹은" 도시에 대한 애착과 기대는 다를 수밖에 없다.
도입부를 이렇게 써놓고 끝내 마치지 못한 / 않은 사정이야 있기도 하고 또 없기도 한데 그중 하나는 "내가 로테르담을 이렇게나 좋아한다고 벌써 말해도 되나?"였다. 오늘부로 그 고민은 정리되었지만 아직 해결되지 않은 고민들이 많다. 그리고 시간이 해결해주지 않을 이 고민들 때문에 이 글은 매우 높은 확률로 미래의 나에게 황당하게 읽힐 것이다. 그래도 좋아할 수 있을 때 좋아하는 마음 역시 소중하니까, 이 글을 어떻게든 마무리해보기로 했다.
위에 쓴 것처럼 나에게 "라떼로 드릴까요?"라고 물었던 카페는 지금까지 딱 두 곳으로 하나는 스페인에 있'었'고, 다른 하나는 지금 사는 네덜란드에 있다. 해외 생활에서 쌓은 이 단골 관계는 어쩌면 피부색으로나, 사용하는 언어로나, 억양으로나 내가 "눈에 띄는" 손님이어서 가능했을지도 모른다. 서울에서는 일주일에 최소 3번 이상, 많게는 매일 같이 카페를 갔었지만 이렇다 할 단골은 없었다. 서울 곳곳에 카페가 많기도 하고, 맛있는 커피라면 지하철 타고 40분 거리는 거뜬하니 어디 한 군데에 정을 붙일 겨를이 없다. 어플로 주문을 대신하고 닉네임 혹은 A-11 등의 번호로 불리는 곳에서 "올 때마다" 특정 메뉴를 주문하는 손님 같은 건 애초에 존재할 수가 없다. 이러한 익명성은 도시가 개인에게 줄 수 있는 최고의 선물이자 동시에 여러 가지 문제를 발생시키는 원인이 되기도 한다. (하지만 이 글에서 자세히 다루지는 않겠다)
단골 가게가 없는 건 사실 지극히 개인적인 사정이다. 내가 좀 더 자주 갔더라면, 고정된 시간에 방문했더라면, 갈 때마다 살갑게 인사를 했더라면 달라졌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게 나뿐만 아니라 여러 사람들의 보편적인 사정과 안타까움이라면, 이건 서울이라는 도시가 그곳에서 생활하는 사람들과 관계를 맺는 방식에 대한 "문제"가 된다. 2년 단위로, 혹은 더 짧은 간격으로 집을 옮겨 다녀야 하는 사정, 또 비슷한 이유로 가게를 옮겨야 하는 사정, 누군가 세를 감당하지 못해 빈자리에 대규모의 자본이 들어오는 사정, 이러저러한 때로는 구구절절한 사정이 모여 정을 붙이기 힘든 대도시의 삶을 만든다.
시간이 지나고 경험이 쌓인다고 해서 사는 게 쉬워지지 않는 건 어디에서나 마찬가지일 것이다. 해외 생활은 그 나름대로의 고충이 있지만, 오늘 이야기의 주제는 아니다. 이처럼 매일 같이 새롭게 맞닥뜨리는 어려움을 조금이나마 견딜만한 것으로 만들어주는 건 결국 도시 곳곳에 숨어 있는 느슨한 관계이다. 처음 보는 사람에게 길을 알려주다가 난처해진 나를, 마침 가게 문을 열기 위해 지나가던 Steve가 구제해주었던 날을 기억한다. 그 날은 내가 그라나다에 도착한 지 한 달이 채 되지 않은 시점이었다. deti에 가서 커피를 마신지는 열흘이나 지난날이었을까. 근데 너무나도 자연스럽게 "왜 여기서 기다리고 있어?"라고 물어주었던, "얘 내 친구인데 나랑 만나기로 했어"라며 그 상황에서 나를 빼내 주었던 그의 태도가 계속 기억에 남아있다. 그리고 그 말들이 단순한 임기응변을 위해 꾸며낸 소리가 아니라 진짜 대화 속에서 나오기 시작했을 때의 시간도 함께 떠올려 본다. 나와 이 도시의 복잡한 사정을 조금이나마 산뜻한 것으로 바꿔주었던 친구 아닌 친구들의 친절함 말이다.
로테르담에 이사를 와서 처음 장을 보러 갔을 때 "로테르담은 마음에 드세요?"라고 물었던 식료품 가게의 직원에게서, "처음 오신 거라면 쿠키를 추천해드릴까요?"라고 물었던 과자점의 직원에게서 느꼈던 상냥함의 종류를 다시 생각해 본다. 그리고 역시 가장 강력한 마법의 문장은 "오늘도 라떼로 드릴까요?"라는 생각을 한다.
1. deti가 있던 스페인 그라나다의 면적은 88㎢, 인구는 24만 명이다.
2. H***가 있는 네덜란드 로테르담의 면적은 326㎢, 인구는 64만 명이다.
3. 누구나의 모든 것이 있는 서울의 면적은 605㎢, 인구는 997만 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