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때, 그곳에서 마주친 사람들
코로나19에도 시간은 착실히 흐르고 벌써 졸업까지 두 달 밖에 남지 않았다. 다른 글들을 더 쓰기 전에 오늘은 내 전공에 대한 이야기를 해보면 어떨까 싶어 평소와 조금 다른 마음가짐으로 브런치를 켰다.
나는 현재 네덜란드에서 도시경제지리학 석사 과정의 마지막 학기를 보내고 있다. 스스로를 소개할 일이 생길 때마다 가장 자주 듣는 질문은 "땅 파고 발굴하는 일을 하시는 건가요?"인데 안타깝게도 지리학과 지질학을 혼동하는 건 전 세계 어딜 가나 정말 흔한 일이다 (그래서 이런 질문은 괜찮다). 그다음은 "기후나 지형 같은 걸 연구하시는 건가요?"인데 나 역시 비슷한 이유로 대학원 전공을 정하기 전 "내가 공부하고 싶은 게 지리학일 리가 없어"라고 생각했던 시기가 있었다 (그래서 이런 질문도 괜찮다). 고등학교 때 선택과목으로 들었던 한국지리에서 배운 내용들을 곱씹어 보면 이런 오해도 타당하게 느껴진다. 시베리아 기단, 고온다습한 기후, 장마전선의 형성 등 대부분은 자연지리학에 연관되는 내용이다. 이와 달리 인문지리학은 "사람들의 행동이나 문화"가 장소에 따라 어떻게 달라지는지를 연구한다. 이걸 제대로 이해하는 데에 나 역시도 꽤 오랜 시간을 필요로 했다. 그리고 나의 학문적 관심사는 사실 계획학이 아니라 지리학에 있다는 걸 받아들이는 데에 또 그만큼의 시간이 걸렸다. 학부 때는 사회학을 전공했지만 전공 안팎에서 들었던 도시 관련 과목이 유난히 재밌었던 터라 대학원에 간다면 계획학을 해야겠다는 마음이 막연하게 있었다. 2014년 말 네덜란드를 처음 다녀간 뒤로 부쩍 커진 건축학에 대한 관심 역시 이런 결심에 큰 몫을 했다. 그런데 입시를 준비하면서 학교를 알아보고 서류를 준비할수록 내가 알고 싶어 하는 건 "도시를 어떻게 만들 것인가"라기보다 "도시는 어떻게 다르게 경험되는가"라는 것이 선명해졌다.
지리학(地理學, geography)은 인간이 사는 지표상의 지역적 성격을 밝히는 학문이다. 지리학을 이해하는 출발은 세상에 사는 사람들의 모습은 장소와 지역에 따라 다르고 이러한 차이를 땅과 연관 지어 생각하는 것이다. 자신의 정체성을 알 수 있는 가장 좋은 방법의 하나는 다양한 사람들과 만나고 서로의 문화나 언어, 역사, 종교 등에 대해 열린 마음으로 이해하는 것이다.
출처 [네이버 지식백과] 지리학 [Geography] (학문명백과 : 사회과학, 김영훈)
이 글을 쓰기 전 포털에 지리학을 검색했다가 뜻밖의 문장에 약간 감동을 받았다. "자신의 정체성을 알 수 있는 가장 좋은 방법의 하나는 다양한 사람들과 만나고 서로의 문화나 언어, 역사, 종교 등에 대해 열린 마음으로 이해하는 것이다." 백과사전에서 이런 문장을 마주칠 거라고도 생각하지 못했지만, 심지어 그 문장이 내가 지리학을 선택한 이유의 대부분을 설명해줄 거라고는 더더욱 생각지 못했다. 교환학생 신분으로 1년 간 지냈던 스페인에서 피부에 가장 생경하게 닿았던 경험은 "여기 사람들이 나를 아시안으로 본다"였다. 길에서 무방비로 노출되는 인종차별의 경험에서도, 수업 중 내 의견을 전달하는 데에 있어서도 나는 그들에게 "아시안"으로 인식됐다. 한국 안에서, 다시 서울 안에서, 출신 학교나 사는 동네로 촘촘하게 나뉘었던 나의 정체성이 순식간에 "아시아"라는 엄청나게 광범위한 분류로 희석되는 경험은 (좋고 나쁨을 떠나) 충격적이었다. 내가 무슨 행동을 하든 그건 아시안의 양식이 되었고, 조금 더 가까워진 사이에는 한국인의 양식이 되었다. 내가 원하든 원치 않든 나는 계속 무언가를 대표하는 사람이 되어 있었다. 이런 경험이 쌓이다 보니 누가 먼저 물을 것도 없이 나부터가 "나는 왜 이렇게 행동하게 되었을까? 왜 이런 생각을 갖게 되었을까?"를 캐묻기 시작했다. 그리고 이때 쌓인 고민의 시간들이 나에게, 중국인 친구 A에게, 장애가 있는 B에게, 퀴어인 C에게, 또 이곳에 오래 살아온 D에게, 이민자이지만 백인인 E에게 "도시는 어떻게 다르게 경험되는가"에 대한 질문을 만들어 냈다고 생각한다.
공부를 하면서 생긴 습관 중 하나는 어느 공간을 가든 그곳에 온 사람들은 얼마큼 비슷하고 또 다른가를 관찰하는 것이다. 친구들끼리 자주 찾는 공간인지 아니면 연인 사이, 혹은 가족들끼리 자주 찾는 공간인지. 성별이나 나이대는 어떤지, 옷 입는 스타일은 또 어떤지, 아이폰을 사용하는지 아니면 다른 기종을 사용하는지, 어떤 책 앞에서 더 많은 시간을 보내는지, 사진을 찍는다면 그 대상은 무엇인지. 평일 이 시간대에 오는 사람이라면 혹은 주말 이 시간에도 노트북을 가지고 업무를 하는 사람이라면 어떤 근무 패턴을 가지고 있을지 같은 것들. 우리 삶의 많은 부분은 우연과 운으로 이뤄져 있지만 또 적지 않은 부분이 필연으로 이어져있기도 하다. 애착을 갖고 자주 찾는 공간이라면 더더욱 나와 비슷한 사람들을 많이 마주치게 된다. 주변에 앉은 사람들이 말할 때의 톤이나 자세, 텀블러를 들고 다니는 습관 같은 것에서 예기치 못한 아늑함과 편안함을 찾게 되기도 한다. 그러니까 그때, 그곳에서 마주친 우리들은 겉으로 드러나지 않더라도 무언가를 공유하는 사람들인 것이다.
하지만 이러한 일종의 필연을 깨닫는 것보다 더 중요한 건 내가 "마주치지 못한" 사람들을 구체적으로 인지하고 그려내는 것이다. 알러지 정보를 구체적으로 적어두지 않아서, 우유를 대체하는 옵션을 제공하지 않아서, 채식 메뉴를 팔지 않아서, 노키즈존이어서, 휠체어가 접근할 수 없어서, 가격이 비싸서, 정보가 없어서 못 오고 안 오는 사람들은 누구일지를 생각해보는 것. 우리의 일상에 얼마나 많은 계획들이 스며들어있는지, 동시에 그 계획이 닿지 못한 부분은 무엇인지를 고민해보는 것. 그래서 다시 그들에게 도시는 어떻게 다르게 경험되는지, 내가 보고 있는 도시와 타인이 보는 도시는 필연적으로 얼마나 유사하고 다른 공간인지를 질문하는 것. 과거의 어느 때, 어느 곳에서 누군가가 던졌던 이 질문, 혹은 의심이 지금의 나에게 더 살만한 도시를 만들어주었다는 생각을 한다. 그리고 구태여 이 글을 끝까지 읽은 당신의 마음 덕분에 앞으로의 도시는 더 많은, 더 다양한 사람들에게 보다 나은 곳이 될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