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통은 견딜 수 있다"
리치 에드워즈는 매닉스의 기타리스트였지만 연주한 적이 거의 없었다. 대개 플러그도 꽂지 않고 시늉만 했다. 기타를 제대로 칠 줄 몰랐다. 1995년 리치가 실종된 후 매닉스의 사운드에서 빈자리가 느껴지지 않는 이유다. 매닉스는 리치의 빈자리를 충원할 필요가 없었다. 리치는 실연가가 아니었다.
리치는 사상가일 뿐이었다. 매닉스의 다른 멤버나 일부 팬들은 부정할지 모르지만 리치는 자살의 사상가였다. 끊임없이 죽음을 생각했고 얘기했다. 자살로 생을 마감한 인물들을 음악 속으로 끌어들였다. 그들이 처음 발표한 싱글의 제목도 Suicide Alley였다. "난 '자살 골목'으로 내려갈 거야, 내가 되고 싶은 존재가 될 수 있는 곳."
리치는 당시 매닉스의 일원이 아니었지만 이 곡의 작사에 도움을 주고 얼마 지나지 않아 정규 멤버로 합류한다. 우울감, 공허함이 맴도는 자살의 정서가 매닉스의 음악에 스미기 시작한다. 그들의 첫 상업적 성공이었던 곡 역시 커버곡인 Suicide is Painless였다.
자살은 고통스럽지 않다는 것
자살은 많은 변화를 가져다 주지
내가 원하는 대로 받아들이거나 관둘 수 있어
자살은 고통스럽지 않다는 것
자살은 많은 변화를 가져다 줘
네가 원한다면 너도 똑같이 해볼 수 있어
자살은 매닉스 음악 저변을 이루는 주제가 됐다. 우울증에 시달리던 리치는 더욱 그 주제를 탐닉했다. 자살의 길목을 들락거렸을 것이다. 1991년 4REAL 사건은 한 페이지에 불과했다. NME의 한 기자가 리치에게 매닉스의 진정성에 대해 묻자 리치는 면도날을 들어 자신의 팔목에 '4REAL(진정으로)'이라는 글자를 새겼다. 리치에게 자해는 일상이었다.
리치가 또다시 자해를 했다, 자살을 시도했다, 담뱃불로 제 살을 지졌다는 둥 소문이 무성했다. 사실일 때가 적지 않았다. 리치에게 삶은 "느린 자살"이었고(Motorcycle Emptiness) "자살의 고통으로 전락한" 무언가였다(Spectators of Suicide). 그 자신은 곧 무덤이 될 장미 같은 존재였다(Roses in the Hospital). 청춘의 나이에 절정을 맞고 여름이 올 즈음 창연하게 사라지는 존재. "나는 여름에 죽고 싶다."(Die in the Summertime)
1994년. 리치의 삶은 조금씩 무너져 내렸다. 그해 봄 친한 친구가 목을 맸고 커트 코베인이 자신의 머리에 총을 쐈다. 몇 주 뒤 리치는 태국 방콕에서 자신의 가슴을 난도질했다. 자살을 시도했고 살아남았다는 얘기가 돌았다.
나는 그것(자살)보다 강하다. 내가 약한 사람일지는 몰라도 고통은 견딜 수 있다.
리치는 자살 시도설을 부정했다. 몇 달 후인 1995년 2월 실종됐다. 자살 시도가 빈번하다는 다리 근처에 리치의 차가 발견됐다. 그게 마지막이었다. 목격담은 많았지만 어떤 경우도 사실로 확인되지 않았다. 20여 년이 지나도록 그는 돌아오지 않았다. "슬픔은 지속되리라."(La Tristesse Durera)
2008년이 되어서야 리치의 부고가 실렸다. 가족들은 리치의 법적 사망을 택했다. 매닉스는 이듬해 리치가 썼지만 공개되지 않았던 가사들로 앨범을 만들었다. 어떤 팬들은 앨범에 실린 곡 가운데 William's Last Words를 리치의 유서라고 믿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