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딸방에 간 페미니스트
매닉스의 네 구성원은 모두 남자였지만 성정치에 대해 하고 싶은 말은 많았다. 젠더벤더가 되기를 꺼리지 않았다. 자신들의 남성성을 두고 어쩔 줄 몰라했다. 때로는 그것을 과장된 공격성으로 드러내기도 했다. 곧장 뭉개버렸다. 거추장스러운 것이었다.
베이시스트인 니키 와이어는 자주 여장을 했고 종종 기타를 부쉈다. 리치 에드워즈의 눈 화장은 항상 짙었다. 둘은 You Love Us의 뮤직비디오에서 기이한 섹슈얼리티의 장면들을 연출했다. 대단한 퍼블리시티 스턴트였다. 매닉스는 문제적 페미니스트였다.
남자들에게 이용당하고, 이용당하고, 이용당하네
그들이 남기고 가는 건 모두 돈
부서지고 뒤틀린 나무로 만든 종이에 불과해
네 이쁜 얼굴은 거슬릴 뿐
내가 만질 수 없는, 무언가 실재하는 것이니까
꽃으로서의 눈, 피부, 뼈, 윤곽
매닉스는 데뷔 앨범에 실린 Little Baby Nothing을 포르노 여배우인 Tracy Lords와 함께 불렀다. 여성에 대한 남성의 성적 착취와 억압을 노래했다. 뮤직비디오에는 핑크 트라이앵글에 낫과 망치를 그려 넣고 '모든 록앤롤은 호모섹슈얼이다', '백인 남성은 성적으로 열등하다' 등 도발적인 슬로건을 적었다. Tracy Lords는 바나나를 손으로 으깨버렸다.
"우린 그들이 주조해낸 쓸모없는 창년(slut), 록앤롤은 우리의 계시"라는 가사처럼 그들은 창년 이미지를 집어 들었다. 당신의 세계를 파괴하는 음습하고 불쾌한 창년. NME 화보 촬영에서 리치는 립스틱을 꺼내 니키의 가슴에 '문화적 창년(Culture Slut)'이라고 썼다. 글램 록 스타일의 키치한 미감은 마치 저급 콜걸이 된 마크 볼란 같았다. 어쨌든 그게 그들의 계시였다.
계시를 성전에 새기기로 한다. 세 번째 앨범이자 희대의 역작인 <The Holy Bible>. 데뷔 앨범이 나온 지 2년 뒤인 1994년이었다. 노골적이라면 더 노골적으로 '젠더 트러블'을 다룬다.
그녀를 살 수 있어요, 그녀를 살 수 있어. 이건 여기, 이건 여기, 이건 여기, 이건 여기. 모두 파는 중이야.
트랙 1 Yes. 곡을 시작하는 사운드바이트다. 가사는 성매매 여성의 시각에서 매춘의 삶을 묘사한다. "쟨 남자애야. 여자애를 원하면 자지를 잡아 뜯어 버려. 머리 다발을 묶어 버리고 박아버려. 원하면 걜 리타라고 불러도 좋아." 직관적이다.
우린 모두 걸어 다니는 낙태아. 안녕 안녕 우린 모두 우리 아이들을 사랑하지.
트랙 3 Of Walking Abortion. '걸어 다니는 낙태아'라는 제목은 급진 페미니스트의 글에서 따온 것이다. 남성은 미완의 여성이고, 걸어 다니는 낙태아고, 유전자 단계부터 결핍된 존재라는 요지다. 남자는 귀태라는 것. 다만 곡 자체는 레퍼런스와는 별개로 체제에 순응하는 인간 군상을 조소하는 내용이었다.
문제는 다이어트라는 단어만으로는 뭔가 부족하단 거야. 난 시야에서 사라질 만큼 마르고 싶은데.
트랙 7 4st 7lb. 거식증에 걸린 여성의 병적인 집착을 그린 곡이다. 케이트 모스 등으로 대표되는 미디어의 깡마른 여성 표상을 비판한다. 하지만 거식증이라는, 삶도 아니고 죽음도 아닌 경계에서의 우울은 리치가 피할 수 없었던 정서적 상태였다.
앨범은 상업적으로는 실패했지만 팬들은 열광했다. 웰메이드 하드록의 남성 서사가 지겨웠다면 더욱 그랬다. 하지만 실망은 머지않았다.
같은 해 여름 매닉스는 태국 방콕 공연을 갔다. 무대에서 니키는 태국의 국왕을 모독했고 리치는 칼로 자해했다. 1994년 방콕은 매닉스의 중요한 분기점이었다. (수년 뒤 Ballad of Bangkok Novotel이란 곡에서 회고된다.) 공연을 르포한 NME 기사에는 이런 내용이 나왔다.
NME가 방콕에 도착하기 전, 리치는 호텔이 솟아오른 안락한 지역을 나와 팟퐁(방콕의 유흥가)보다도 더 지저분한 지역을 다녀왔다. 결국 그는 사창가에서 매춘부를 사 대딸을 받았다.(...)
그래서 네 섹슈얼리티에 대해 하고 싶은 얘기의 요지는.
"나도 사실 모르겠다. 아마 내가 섹스하려고 돈 내는 게 그루피와 자는 게 별반 다르지 않다는 것. 기능적 차원에선 모두 같은 행위니까."
사람들이 이제 널 성차별적 꼰대라고 생각할 텐데.
"그렇다. 그들은 그렇게 생각하겠지." 한숨.
이곳에 와서 이곳 사람들을 착취하는 그저 또 다른 멍청한 서양인이라고 생각하겠지.
"그들은 아마 그럴 거다. 나도 안다."
영국 언론들은 신나게 떠들기 시작했다. 그 매닉스가, 그 매닉스의 리치가 대딸을 받다니. 어떤 팬들은 크게 망연자실했다. 하지만 매닉스는 그 사실을 부정하지도, 부끄러워하지도 않았다.
"사람들이 충격받았다는 게 믿기 힘들다. 그들에겐 똑같은 짓을 했을 친구가 있거나 그들 스스로 똑같은 짓을 했을 텐데 말이다. 그건 그냥 인간 본성이야."
-매닉스의 제임스, Kerrang!과의 인터뷰에서
제임스의 말처럼 방콕 사건으로 타인의 도덕에만 결벽적인 대중과 언론의 선정주의가 적나라하게 드러난 셈이다. 사람들은 다른 질문을 던질 수밖에 없었다. 리치는 정말 돈을 내고 대딸을 받았던 걸까.
PC함이 광신도와 빅브라더를 애무한다. 레위기를 읽을 것. 학습된 검열. 프로-라이프는 곧 안티-초이스. 깃털 따위에 겁먹도록.
다시 <The Holy Bible>로 돌아가 트랙 13 P.C.P. 매닉스가 결국 견딜 수 없었던 것은 PC함, 즉 정치적 올바름에 대한 대중들의 집착이었다. 남색하지 말라는 레위기 구절을 들어 동성애를 혐오하는 이들의 PC함. 임신중절을 반대하는 것만으로 여성을 억압하는 것이라 주장하는 이들의 PC함. 그 모든 PC의 논리는 곧 미세한 공포를 주입하는 공권력의 승리라는 것.
리치가 대딸을 받았다고 밝힌 것은 진실된 고백이었을까, 노이즈 마케팅이었을까. 사실이라면 그는 페미니스트가 아닌 것이 되는 걸까. 아니면 이전보다 덜 페미니스트인 것이 되는 걸까. 애초에 남자는 페미니스트가 될 수 없는 걸까. 페미니스트를 규정짓는 것은 누구일까. 그 규정이라는 게 있다면 그건 곧 PC의 승리가 아닐 수 있을까.
논란은 얼마 가지 않는 스캔들이었다. 매닉스는 그 이후에도 여성 서사를 놓지 않았다. 그중 나는 유독 이 곡을 좋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