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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혀님 May 14. 2018

파라다이스 개러지 1:레이디 가가 이전의 본 디스 웨이

Carl Bean - I was Born This Way

Paradise Garage 로고. 헤라클레스 머리를 한 근육질 남성이 탬버린을 들었다.

파라다이스 개러지는 디스코테크였다. 오늘날 클럽들의 원형이자 레퍼런스였다. 음악이 있고 춤이 있고 음악에 따라 춤을 추는 사람들이 모인 곳이었다. 다른 나머지는 그저 부차적인 것이 되는 곳. 술조차 팔지 않았다. 다른 클럽들과는 다르게 라스트 콜 없이 음악을 틀고 춤을 출 수 있었던 이유였다. 다른 어떤 것도 아닌, 이념형에 가까운 디스코테크였다.


미국 뉴욕에 문을 연 것은 1977년. 10년 뒤 문을 닫았다. 짧은 시간 동안 수많은 디스코 히트를 이끌었다. 개러지 하우스의 발상지였다. 1960년대 말 스톤월에 대해 얘기하려 한다면 1970년대 말 우리는 파라다이스 개러지를 얘기해야 한다. 그 이야기와 그 디스코 히트들에 관한 얘기를 하려고 한다. 먼저 Carl Bean의 I was Born This Way.




1975년 발표된 I was Born This Way. 흑인 게이 남성인 Valentino가 불렀고 "난 게이야"라는 가사가 직설적으로 담겼다. 물론 이전에도 오픈리 게이 뮤지션의 음악은 존재했지만 이 노래는 메이저 음반사가 배급한 첫 게이 해방 음악이었다. 인디 레이블에서 나와 댄스 클럽에서 인기를 끌자 모타운이 정선했다.


Valentino - I was Born This Way
난 본성을 뒤집어쓴 채 삶을 살아가고 있어
넌 날 비웃고 비난하지
내가 행복하고 근심 없고 게이라고 말이야 - 그래, 난 게이야
그건 잘못이 아니라 사실일 뿐
난 이렇게 태어났던 거야


곡을 만든 것은 뜻밖에도 Bunny Jones라는 이성애자 흑인 여성이었다. 스톤월 항쟁이 일어난 지 얼마 지나지 않은 1971년, 게이들이 사회로부터 받는 억압이 흑인 등 다른 소수자들보다 더 심하다는 깨달음에 곡을 썼다고 한다. 게이 미용사 다수를 고용했던 패그 해그 미용실 사장님의 사명은 4년 뒤 꽤 성공적인 게이 앤섬이 됐다. 베트남전 반전운동 이후 팽배했던 반문화 분위기를 상업적으로 캐치한 모타운의 안목도 한몫했다.

모타운은 2년 뒤 이 곡을 리메이크하기로 하고 흑인 가스펠 가수였던 Carl Bean을 섭외했다. 의도하지 않았지만 알고 보니 그도 게이였다. 모타운은 안목뿐만 아니라 게이다도 갖춘 게 분명했다. 댄스 클럽 DJ들은 훵키하고 소울풀한 가스펠 디스코로 다시 태어난 I was Born This Way를 놓치지 않았다. 무엇보다 그 해는 뉴욕의 파라다이스 개러지가 문을 연 해였다. (정식 오픈은 1978년이었지만 한 해 전부터 '공사 중 파티'를 열어왔다.)


Carl Bean - I was Born This Way (Larry Levan Remix)


파라다이스 개러지는 인종이나 성적 지향에 제한 없이 모든 사람을 포용했다. 다만 멤버십과 초대를 통해서만 입장할 수 있다 보니 독특한 인구 지형을 갖췄다. 게이와 레즈비언, 그중에서도 흑인이나 히스패닉 남성이 많았다. 레지던트 DJ인 Larry Levan 역시 게이였다. 클럽과 Levan은 정치적으로 도전적이되 종교적으로 거룩한 이 디스코를 사랑했다. Levan의 탁월한 취향은 파급력이 컸다. 파라다이스 개러지가 사랑한 디스코는 곧 뉴욕이 사랑하는 디스코가 됐다. 게이 앤섬은 파라다이스 개러지 앤섬이 됐고 이내 디스코 앤섬이 됐다.


이후 HIV 유행이 뉴욕을 휩쓸었다. 곡은 몇 번씩 반짝 인기를 끌었고 사람들은 다시 노래를 잊었다. 디스코의 인기가 식었다. 촌스러운 것이 되어버렸다. 그러다 2011년, Lady Gaga는, 사람들은 다시 이 노래를 기억하기로 한다.


Lady Gaga - Born This Way
난 나대로 아름다워
하느님이 실수할 리 없으니까
난 옳은 길을 가고 있어
난 이렇게 태어났던 거야


Lady Gaga의 Born This Way는 동성혼 법제화 투쟁의 시대를 위한 게이 앤섬에 등극했다. 또 다른 패그 해그의 사명이었다. 사람들은 30여 년이 지나 영 달라진 정치적 투쟁에서 꼭 닮은 메시지의 가사를 불러야 함이 서글펐다. 그렇지만 1970년대의 디스코가 여전히 영감과 경의의 대상이 될 수 있음에는 감사해했다.


Lady Gaga의 Born This Way가 울려 퍼지던 미국의 싸움은 종종 승리했다. 파라다이스 개러지는 이미 오래전 문을 닫았다. 민망한 일이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Larry Levan도 요절했다. 여전히 파라다이스 개러지를 그리워하는 사람들은 Carl Bean의 I was Born This Way를 찾는다.


*파라다이스 개러지가 문을 닫던 날 Larry Levan의 마지막 디제잉은 실황으로 남아 있다. Carl Bean의 곡은 42분 30초부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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