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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혀님 May 13. 2018

매닉스의 경우 1:사회주의자

노동계급 밴드의 배반

브릿팝 시대의 이상한 논쟁은 어느 밴드가 진정한 영국 노동계급의 적자냐는 것이었다. 논쟁의 근원에는 사주라고 할 만한 4개 밴드의 프런트맨이 있었다. 거칠었던 오아시스의 갤러거 형제들은 우리가 떠올리는 전형적인 노동계급 남성의 이미지와 딱 맞았다. 그야말로 워킹 클래스 히어로였다. 하지만 블러의 그레이엄 콕슨이나 펄프의 자비스 코커는 그런 배포를 갖지 못했다. 둘 모두 출신성분으로 보나 하는 짓으로 보나 포쉬스러웠다. 노골적으로 양성구유를 내세운 스웨이드의 브렛 앤더슨 역시 별로 다르지 않았다.


브릿팝을 얘기할 때 특기하는 네 밴드의 로고


하지만 진짜 적자는 따로 있었다. Manic Street Preachers, 보통 줄여 매닉스. 매닉스는 사상으로 무장한 노동계급 밴드였다. 대표곡인 A Design for Life는 그 선언에 가까웠다.


Manic Street Preachers - A Design for Life
“‘서적들이 우리에게 권력을 줬고’ 곧 다가온 ‘노동이 우리를 자유롭게 했다’
(노동의) 존엄성을 따진 얄팍한 책 한 권이 이제 무슨 가치가 있겠냐만은
내 더러운 면전에다가 병 하나가 날아왔으면 좋겠어
그 흉터가 내가 어디에서 왔는지를 보여줄 테니까”


브릿팝을 대표하는 밴드들이 허접한 이미지 전쟁을 벌이며 시대가 저물어갈 동안 매닉스는 그들이 신봉하는 사상가의 활자를 끼고 냉소했다. 브릿팝 밴드들이 시시껄렁한 사랑노래를 부르고 있을 때 매닉스는 연인(Lover)의 철자를 뒤집은 곡 Revol에서 그들이 사랑했던, 실패한 혁명가의 이름을 읊었다. 물론 자신들의 해석대로.


“레닌, 소년을 일깨운 자
스탈린, 양성애적 시대
흐루쇼프, 거울 앞에서의 자기애
브레즈네프, 집단성교의 일원으로 결혼
고르바쵸프, 순결하지만 자발적 발기부전
옐친, 실패는 그 자신의 발기부전”


그들은 그렇게 정치를 수많은 곡의 레퍼런스로 삼았다. 물론 다른 브릿팝 밴드들 역시 그러지 않았다곤 할 수 없지만 매닉스는 달랐다. 콕슨과 자비스는 아트스쿨 출신이지만 매닉스의 리치와 니키는 대학에서 정치학을 공부했다. 오아시스는 토니 블레어를 만났지만 매닉스는 피델 카스트로를 만났다.


카스트로를 만난 사연도 재밌다. 어중이떠중이들이 매닉스도 결국은 시시껄렁한 사랑노래를 한다고 비난할 때쯤 매닉스는 The Masses against the Classes를 발표했다. 싱글 슬리브에 쿠바의 국기를 변형해 달았고 노래의 두미에 각각 촘스키의 육성과 까뮈의 인용을 넣었다.


Manic Street Preachers - The Masses aganist the Classes
“계급제에 저항하는 대중들
난 근거를 대는 것조차 지쳤어
우리가 오직 믿는 것은 미래뿐이니까
우린 겨울을 사랑하지
우릴 더 가깝게 해주니까”


이전에 발표했던 어느 곡보다도 정치적 확신에 찬 곡이었다. 그들은 여전히 노동계급 대중을 겨울의 연인처럼 사랑했고 대중들도 여전히 그들을 사랑했다. 이 곡은 밀레니엄 이후 첫 영국 싱글 차트 1위 경신곡이 됐다. 이듬해 서구 락 밴드로는 사상 처음으로 사회주의 쿠바에서 공연했고 카스트로가 파격적으로 무대 뒤를 찾았다. 노동계급 밴드를 자처했던 매닉스로서는 자랑스러웠을 테고 같은 해 Let Robeson Sing에서 자신들의 사정을 “사회주의자 좌파 혁명가(pinky lefty revolutionary)” 흑인 가수 폴 로버슨에 빗대기까지 한다.


“카스트로를 만나러 쿠바에 갔지만
생기 잃은 모스크바를 결코 빠져나오진 못했지”
(*로버슨은 카스트로를 만나기 위해 쿠바를 가려 했지만 모스크바 체류 중 건강이 급격히 악화돼 쿠바를 가지 못했다. 반면 매닉스는 쿠바에 가 카스트로를 만났다. 이 가사는 두 상황을 뒤섞어 놓았다.)


하지만 10여 년이 지나 그들의 자신감은 자조감으로 바뀐다. 2014년 발표한 The Next Jet to Leave Moscow에서는 이 사연을 이렇게 얘기한다.


“‘그래, 쿠바에서 공연했다며, 그래서 좋았냐?
당연히 거만한 기분이 들었겠지, 이 멍청한 좆마니야’
60년대 몽상가들은 온통 우릴 (웨일스인이 아닌) ‘영국인’이라 불렀고
그들이 끝낼 수도 있었을 것을 우리가 시작해버렸다고도 했지”


어떤 사람들은 매닉스의 변절을 얘기한다. 또. 더 이상 과거처럼 노동계급을 대변하거나 사회주의 좌파를 자청하지 않는다고. 반복되는 얘기다. 매닉스의 사상가였던 리치가 실종된 이후 처음 내놓은 앨범 Everything Must Go에서 서정적인 사운드를 선보였을 때도,


“난 단지 당신이 우릴 용서해줬으면 좋겠어
하지만 모든 것은 흘러가야만 해
당신이 해명을 구한다면
모든 것은 흘러가야만 한다고 할 수밖에”
(앨범에 수록된 앨범 제목과 동명의 곡)


그들이 리치가 이룩한 모든 걸 버리려 한다고 비난했다. 다음 앨범인 This is My Truth Tell Me Yours에서 라디오-프렌들리한 히트들을 쏟아냈을 때도,


“당신이 내 가슴에서 태양을 빼앗아 갔어요
난 이제 그만 웃어야 할 것만 같아요
잘못된 인상으로 오해하실까 봐요
난 여전히 당신을 사랑해요”
(You Stole the Sun from My Heart)


다른 브릿팝 밴드들처럼 뻔한 사랑노래를 부르기 시작했다고 조롱했다. 매카시즘으로 대중 정치인이 된 미국 공화당 출신 대통령 리처드 닉슨을 옹호하는 듯한 곡을 발표했을 때도(The Love of Richard Nixon), 실제로는 자살에 관한 곡이지만 사랑노래로 오해받기 쉬운 팝 히트를 발표했을 때도(Your Love Alone is Not Enough) 그랬다.


그럴 수도 있고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그들은 언제나처럼 비판에 저항했다. 하드록 사운드로든, 치열한 사상으로 무장한 가사로든, 그들은 어떻게든 노동계급 밴드를 자처했던 그 원점으로 돌아갔다. 물론 과거 기성세대를 두고 “쓸데없는 세대들아, 니들은 멍청하게 국기나 흔들어대는 인간쓰레기란다”(Repeat)라고 욕할 때만큼 가열차지는 못하지만.


얼마 전 13번째 정규 LP를 내놨다. 제목은 “저항해봤자 소용없다”는 뜻의 Resistance is Futile. 그들이 항복하겠다는 건지, 그들이 싸워온 무언가에 위협하는 건지 알기 어렵다. 그들의 역사는 진정 타협의 역사일까. 가사도, 사운드도 예전 같진 않다. 다만 그들이 여전히 그들을 규정하려는 것에 항복 없이 저항하고 있다는 건 틀림없는 사실이란 것이다.


Manic Street Preachers - Sequels of Forgotten Wars
"방관자들을 위한 진보 사상
부패한 이들을 위한 연단
진영논리에 빠진 이들을 위한 블루 스크린
잊힌 전쟁들의 후속작들"
(Sequels of Forgotten War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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