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런지 어휘의 탄생과 뉴욕타임스의 대형 오보
언론은 정말 좆도 모른다. 항상 발정 나 있지만 발기부전인 상태다. 어디 흉내라도 내고 싶은데 그것조차 잘 안 선다. 뉴욕타임스의 그런지게이트(grunge-gate)는 음악 저널리즘에 대한 영원한 조롱이다.
그런지(grunge)는 언제 그런지가 됐을까. 먼지, 오물, 쓰레기를 뜻하는 이 다섯 철자 단어가 언제 음악 장르, 패션의 표현, 대중 현상과 동의어가 됐을까. -NYT
1992년 11월 15일 뉴욕타임스 스타일 섹션 1면에 실린 그런지에 대한 기획기사다. 도입처럼 그런지가 어떻게 장르, 표현, 현상이 될 수 있었는지에 관해 썼다. "문화가 탄생했다." 거창했다. 사이드 기사로는 "그런지 어휘(Lexicon of Grunge)"가 실렸다.
모든 하위문화는 암호로 말한다. 그런지도 예외는 아니다. 시애틀의 캐롤라인 레코드에서 일하는 25세 판매원 Megan Jasper가 그런지 용어의 어휘를 제시했다. 곧 여러분 근처의 고등학교나 쇼핑몰에서 들을 말이다. -NYT
간단한 설명에 이어 단어 14개가 소개됐다. Wack Slacks(거지 바지)는 찢어진 구제 청바지, Harsh Realm(가혹하계)은 실망, Lamestain(절룩얼룩)은 구린 사람. 이런 식이었다. 이전 해에 발매된 너바나의 Nevermind와 펄잼의 Ten이 미 전역에서 인기를 끌면서 그런지에 대한 관심이 뜨거운 터였다. 'Wack Slacks'를 입은 그런지의 씬스터들은 작별인사 대신 "Rock on"이라고 한다니 꽤 들어줄 만했다.
이듬해 초. 이 모든 은어가 아무렇게나 지어낸 말이란 주장이 나왔다. 소규모 문화비평 잡지였던 The Baffler가 폭로했다.
인디 록에 실제로 시간을 할애했거나 시애틀에서 공연을 가본 사람이라면 어느 누구도 저런 표현을 실제로 쓰지 않는다는 것을 안다. 다만 그럴 일이 곧 있으리라는 것은 확실하다. 청년 무브먼트에 대한 문화 산업의 간절한 환상에 발맞춰 Jasper의 가벼운 어휘가 이제 생명력을 갖게 된 것이다. "시애틀 하위문화"에 대한 그녀의 우스꽝스러운 설명이 이제 곧 미디어의 과장을 거쳐 규범이 될 것이다. -The Baffler
어처구니없는 사연이다. 너바나의 레이블이었던 Sub Pop 전 직원 (지금은 CEO인) Jasper는 뉴욕타임스 기자의 전화가 황당했다. 그런지의 성지라는 Sub Pop이 파산할 지경에 처해 자신은 정리해고까지 당했는데 그런지가 얼마나 잘 나가는지를 말해달라니. 시애틀 씬을 그런지 씬으로, 혹은 그 반대의 방식으로 규정하는 것도 우스웠다. 심지어 듣지도 보지도 못한 그런지 어휘를 알려달라니. Jasper는 아무 소리나 지껄이기 시작했다. 놀랍게도 기자는 그 모든 개소리를 성실하게 받아 적었다. 개소리가 전국지를 장식했다.
그런지게이트였다. 적반하장으로 The Baffler가 헛소리를 하는 게 아니냐고 따지는 뉴욕타임스에 The Baffler는 답했다.
유수의 신문이 차세대 거물을 찾아 헤맬 때 차세대 거물이 거기에 오줌을 휘갈긴다면 우린 그게 웃기다고 본다. -The Baffler
뉴욕타임스의 오보가 확실했다. 심지어 그런지(grunge)의 철자 개수는 여섯 개였다. 따지고 보면 기사는 그런지가 다섯 철자 단어라는 도입부터 엉터리였다. 정정보도는 없었다. 오보 자체가 그런지 현상의 역설적인 단면이기도 했고 개소리가 점점 현실이 되어 갔기 때문에 정정은 필요 없었다. 해프닝이 재밌다고 생각한 씬스터들이 그런지 어휘가 적힌 티셔츠를 입기 시작했다. 그런지라는 이름의 밴드왜건에 올라타려는 이들이 멍청하게도 그 어휘들을 입에 올렸다.
이듬해 너바나의 커트 코베인이 죽었다. 그런지도 함께 사그라들었다. 그게 정말 실체 있는 장르나 현상이었는지도 모를 정도였다. 그런지 자체가 애초에 그런지 어휘 같은 것이 아니었나. 어쨌든 새로운 씬은 생겨나고 사라진다. 그런데 좆도 모르는 언론은 아직도 이 지면 저 지면에서 그런지 어휘 같은 것을 찾아 헤매는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