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전, 2018
독전. 락이 태안 염전에서 두 농아 남매와 수어를 나누는 장면.
락의 넥타이 핀 몰카로 염전 마약공장의 전경이 잡힌다. 두 농아 남매가 다가오고 외국인으로 보이는 일꾼들 서넛이 보인다. 그만큼의 시야가 매복한 경찰들에게 전해지는 정보다. 남매와 락이 수어 특유의 과장된 몸짓과 표정으로 나누는 대화를 수어 통역사가 나긋한 목소리로 전한다. 검은 드럼통에 담긴 마약 원료의 양에 남매와 락의 수어는 우스꽝스럽게 거칠어진다. 존나 많아. 이틀? 좆까! 작업이 시작되고 밤. 저녁식사를 앞에 두고 락이 어머니 소식을 알리고 그 자리에서 조기가 올라간 제사상이 차려진다. 남매가 차려준 제사상 앞에 락이 무릎을 꿇고 남매가 대화를 이어간다. 통역은 여전히 은근하지만 이들의 대화는 전에 없이 차분하다.
영화적 설정은 수어 통역이지만 영화적 상상력은 변사다. 변사는 무성영화 시대의 동아시아적 전유였다. 서구에서는 영화에 맞춰 악사가 음악을 연주했지만 한국과 일본에서는 변사가 영화를 읽었다. 간자막을 통역했고 극 중 대화를 상상했고 장면을 해설했다. 외국어로 만들어진 영화를 해설할 필요를 판소리, 가부키 등 이 지역 전통문화에서 익숙한 교감으로 채웠다. 변사는 관객과 함께 영화를 보고 대사 이상의 정보를 전했다.
수어 통역사가 보는 것은 락의 가슴에 달린 몰카 화면뿐이다. 락의 손짓을 거의 보기 어렵고 표정을 전혀 읽을 수 없어야 한다. 락의 전방에 보이는 대화 외에는 통역사가 읽을 수 없는 정보다. 하지만 통역사가 오프스크린에서 전하는 통역은 전지적이다. 락의 수어도, 락이 보지 않는 곳에서 이뤄지는 남매의 수어도 모두 담긴다. 통역사는 몰카 화면이 아니라 관객의 시점에서 장면을 보고 있다. 연기자의 육성이 사라진 채 표정과 몸짓이 과장된, 무성영화에 가까운 장면을 변사처럼 읽어준다.
영화적 설정으로는 절대 설명할 수 없는 통역사의 기질 덕분에 관객은 불안감을 떨친다. 어느 순간 이 내레이션이 통역사의 통역이 아니라 관객을 위한 시네마의 상상일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한다. 영화 후반부에서 드러나는 락과 남매의 작전을 생각한다면 그들은 통역사의 통역과는 전혀 다른 대화를 했을지도 모른다. 통역사는 이 장면의 제한된 가능성을 전복하는 악당이다. 그래서 우리는 이 장면을 [셰이프 오브 워터]에서 일라이자가 자일스에게 항변하는 번역 그대로의 수어처럼 볼 수 없다. 오히려 장 뤽 고다르가 [비브르 사 비]에서 무성영화를 인용하는 방식처럼 읽힌다. 이 영화에서 여주인공이 보는 [잔다르크의 수난]의 장면은 갑자기 간자막이 사라지고 자막이 화면과 동시에 오버레이된 것으로 재편집된다.
미처 놓쳤거나 개연성을 포기한 연출일지라도 우리는 계속 고민에 빠진다. [독전]에서 테이블 아래 폭탄은 두 번 터진다. 관객이 모른 채로 한 번(공장), 관객이 안 채로 한 번(염전). 히치콕의 잘 알려진 '테이블 아래 폭탄' 이야기는 그 차이에 대해 전자를 서프라이즈, 후자를 서스펜스라고 설명했다. [마리아 브라운의 결혼]의 파국을 빼닮은, 공장이 폭파되는 풀샷을 보면 영화 전반에서 파스빈더적인 광기가 떠오른다. 용산역 총격전이나 마지막 롱샷에서의 극단적인 흑백 미장센도, 원호가 메타-연기를 한다는 설정도, 이냐리투의 개에 비견할 만한 라이카의 거친 이미지도 우리 몫의 질문거리다. [독전]은 우리를 시네마의 세계로 안내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