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프얀 스티븐스
수프얀 스티븐스는 백인의 음악이다.
거의 10년 전 얘기다. 미국의 한 대학원생이 수능 격인 SAT와 음악 선호의 상관관계를 실험한 적이 있다. 페이스북을 통해 각 대학 학생들이 즐겨 듣는 음악 데이터를 뽑은 뒤 그 대학의 평균 SAT 점수와 연동했다. 1352개 대학에서 뮤지션/장르 1455개가 나왔고 자주 등장하는 133개만 뽑아 SAT 점수에 맞게 나열했다. 베토벤의 SAT 점수(1371점)가 가장 높았고 그다음이 수프얀 스티븐스(Sufjan Stevens)로 1256점이었다. 라디오헤드, 벤 폴즈, U2, 밥 딜런, 콜드플레이 등도 상위권이었다. 꼴찌는 릴 웨인이었다. 889점. 비욘세, Jay-Z, 힙합, R&B 등이 비슷했다.
과학적으로 정교한 실험도 아니었지만 '당신을 멍청하게 만드는 음악'이라는 프로젝트명은 더욱 비과학적인 어젠다였다. 수프얀 스티븐스를 들으면 똑똑해지고 릴 웨인을 들으면 멍청해지는 게 아니기 때문이다. 사실 이 실험 결과는 미국의 인종에 따른 사회경제적 불평등을 보여주고 있다. 백인은 더 부유해지고 흑인은 좋은 교육에서 멀어진다. SAT 점수는 인종차별의 단면이다. 수프얀과 인디 음악이 상위권에, 릴 웨인과 힙합이 하위권에서 발견되는 건 교육과 문화가 인종으로 분화된 미국의 현상을 반영했을 뿐이었다.
그래서 지난해 수프얀이 그래미 수상 결과를 두고 제기한 문제는 재밌다. 당시 아델이 비욘세를 제치고 올해의 앨범상을 탔다. 비욘세는 어번 컨템퍼러리 앨범상을 수상하는 데 그쳤다. 올해의 앨범상을 탄 아델마저 이해할 수 없는 결과였다. 아델은 트로피를 쪼개 비욘세에게 건네는 시늉까지 했다. 수프얀은 자신의 블로그에 비욘세가 올해의 앨범상 대신 받은 어번 컴템퍼러리 앨범상을 두고 인종문제를 제기했다.
Q:"어번 컨템퍼러리"가 도대체 뭐냐?
A:백인 남성이 견줄 데 없는 임신한 흑인 여성의 재능, 힘, 설득력, 잠재력에 위협받아 그녀를 두는 곳.
어번 컨템퍼러리 앨범상은 2013년 도입된 부문으로 2013년 이래 줄곧 흑인이 받아왔다. 기량 있는 흑인 뮤지션에게 가장 큰 상을 주지 않기 위해 '흑인의 음악'이라는 게토를 만든 게 아니냐는 지적이다.
올해는 수프얀의 스포트라이트다. 영화 [콜 미 바이 유어 네임]의 OST에 참여해 이름을 알렸다. 모두가 알고 있어도 듣는 사람은 적던 수프얀을 이제 사람들이 실제로 듣는다. 따분한 음악을 하는 줄 알았지만 꽤 낭만적인 음색이다. 그런데 [콜 미 바이 유어 네임]은 퀴어 시네마의 백인성(whiteness) 질문을 지나칠 수 있을까. 1980년대 이탈리아에 간 미국인을 다룬 이 영화만을 두고 문제를 얘기할 수는 없지만 퀴어 시네마의 인종 문제는 좀 고약하다. 수프얀은 문제적 영화의 묘한 순간을 낭만적으로 스치는 음악으로 남아버렸다. 원하든 원치 않든 누릴 것을 누리는 백인(성)의 음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