쥬라기 월드: 폴른 킹덤, 2018
쥬라기 월드: 폴른 킹덤, 오웬이 블루를 발견하는 장면.
오웬이 밀림에 버려진 차에 접근한다. 위치추적 시스템이 블루의 위치를 가리킨 곳. 뒤집힌 사이드 미러에 긴장한 오웬의 모습이 비친다. '사물이 거울에 보이는 것보다 가까이에 있습니다.' 사이드 미러가 보여주는 것 이상으로 오웬은 블루와 가까이에 있을 것이다. 순간 차 너머로 튀어나오는 건 작은 새끼 공룡들. 부산스러운 순간이 지나자 블루가 밀림 사이로 뛰쳐나와 버려진 차 위를 짓밟는다. 뒤돌아보고 있던 오웬은 숨 돌릴 여유가 없다.
아무도 공룡을 직접 본 적이 없다. 다큐멘터리, 과학책, 그림의 공룡은 상상의 공룡이다. 영화는 영화대로 공룡을 상상하고 재현한다. 무섭고 큰 공룡이라는 기대만 있다. 과학적 고증을 거쳤겠지만 다양한 형태로 등장하는 공룡의 재현은 상상의 영역이다. 이전의 어떤 것과도 같지 않은 괴수 인도랩터의 등장은 상상의 비약이다. 영화는 얼마든지 그런 비약을 견뎌낼 여유가 있다.
영화는 공룡의 크기를 두고 변주한다. 우린 이 장면에서 아마도 블루를 만날 것을 안다. 우여곡절이 있더라도 블루는 어디선가 뛰쳐나와 오웬을 만날 것이다. 뜻밖에도 오웬을 처음 맞는 것은 아주 작은 공룡이다. 이 새끼들에 비하면 사이드 미러에 갇혔던 오웬의 형상마저 거대하게 느껴진다. 그가 이 장면에서 일어날 모든 상황을 통제할 수 있을 것만 같다. 이어 등장하는 블루는 그 모든 안도감을 압도한다. 갑작스러운 등장의 효과와 새끼 공룡들에 비해 큰 몸집 때문이다. 그런데 막상 블루를 지켜보면 우리가 기대하는 공룡의 크기가 아니다. 블루는 그다지 크지 않다. 높이만 따지면 오웬보다 키가 작다. 작은 공룡 블루가 결국에는 영화에서 가장 중요한 괴수가 된다. '사물이 스크린에 보이는 것보다 큰 것일 수 있다.'
몇몇 장면에서는 암전을 활용해 공룡의 크기를 가늠할 수 없는 것으로 만들어버린다. 어둠 속에서 빛이 반짝이는 찰나에만 공룡이 보인다. 공룡이 카메라 가까이에 다가오는 원근감의 변화를 기이하게 왜곡한다. 공룡이 얼마나 멀리 있는지, 공룡이 얼마나 큰지 우리는 알지 못한다. 영화의 스펙터클이 관객을 집어삼키는 방식이다. 창을 통해 메이지 록우드의 얼굴에 인도랩터의 얼굴이 투사되는 장면도 그렇다. 인도랩터의 크기는 우리가 알아챌 수 없는 것이 된다. 스펙터클이 메이지를 향해 돌진한다.
인도랩터가 메이지를 좇고 블루가 인도랩터를 습격하는 시퀀스는 공룡이라는 스펙터클의 숨은 크기를 드러낸다. 노골적이지만 개성있는 표현주의의 장면. 인도랩터의 그림자가 침대에 누워 떨고 있는 메이지의 방에 들이닥친다. 그림자가 점점 달빛을 장악한다. 목마의 그림자와 겹쳐있다가 점차 날카로운 이빨을 드러내는 인도랩터의 그림자는 기괴하다. [실물보다 큰]에서 니콜라스 레이가 보여준 그림자의 왜곡이 떠오른다. 무한히 커진 인도랩터의 존재감은 비교적 작은 맹수인 블루의 등장으로 흐트러진다. 연속된 장면에서 비대해진 인도랩터의 그림자를 갈가리 찢어놓는 것만 같다.
이제 블루가 스크린을 장악해야 한다. 인도랩터의 거대한 사체를 밟고 있던 블루는 일순간 카메라 바로 앞으로 와 자신의 육중함을 드러낸다. 괴수는 괴수다. 최후에 오웬의 곁을 떠나는 블루의 모습 뒤로 난폭한 괴수의 거대한 그림자가 비친다. 동시에 밀림 속에서 일별했던 작은 블루의 얼굴이 잠깐 스친다. 그녀는 정의하기 어려운 모순이 되어버렸다. 영화의 비약에 블루의 크기는 영원히 알 수 없는 것으로 남는다. 다만 언젠가 더 육중한 괴수가 되어 돌아올 것이라 짐작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