짧은 기억
신문사 공채 시험에는 논술이 있다. 내가 입사할 때도 '대한민국의 애국에 대해 논하라'는 주제로 논술을 써야 했다. 쓸 말이 없어서 꺼냈던 이름이 노회찬이었다. 노회찬 의원의 인터뷰를 인상 깊게 읽은 일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정확히 기억은 안 나지만 애국에 대해 묻는 질문에 노 의원은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이 속한 공동체를 사랑하는 것이라는 식으로 답했다. 이 국가공동체에는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이 살고 있고 그 사람들이 악의 없이 그 공동체를 일구고 있고 그들을 사랑하기 위한 방편으로 이 공동체를 사랑하겠다는 논리. 나는 노회찬의 이름을 빌려 논술을 써내려 갔다. 감사히도 좋은 결과가 있었다.
신문사에 들어가기 전에도 노 의원을 가끔 볼 일이 있었다. 국회에서 일할 때 간담회, 세미나 같은 자리에서였다. 그때 들었던 얘기가 노 의원의 정치가 현실적이지 못하다는 평이었다. 이룰 수 없는 것을 두고 공수표를 던진다는 식이었다. 그런 얘기를 들은 지 얼마 안 지나 사법권력이 노 의원의 의원직을 박탈했다. 그는 그의 판단을 후회하지 않는다 했다. 세간의 평처럼 비현실적인 얘기였다.
몇 년이 지나 정의당을 출입하는 기자가 됐지만 막상 노 의원에게 연락할 일은 거의 없었다. 존재감이 없는 당이었기 때문이다. 그의 이름을 팔아 회사에 들어왔지만 막상 기사에 그 이름을 쓰는 일은 뜸했다. 어쨌든 연락하면 곧장 전화를 받거나 콜백을 주는 흔치 않은 취재원이었다. 총선을 앞두고 노 의원이 출마한 지역구 르포 일정이 잡혀 내심 좋았지만 결국 취재를 하루 앞두고 무산됐다. 존경하던 분이 극적으로 내 고향의 국회의원이 될 문턱에 올랐지만 지면은 사사로운 애정을 담을 여유가 없었다.
회사를 나오면서 정의당에 입당했다. 그를 보고 입당한 것은 아니었지만 그 존재는 든든했다. 그런데 입당 직후에 어떤 기사가 떴다. 당내 여성주의자 조직에서 '노 의원을 공격하는 게 가성비가 좋다'는 식의 얘기가 나왔다는 기사였다. 어쩌다가 그는 값싼 조롱의 대상으로 전락한 걸까. 그리고 그는 어떻게 이다지도 잔인한 그의 공동체를 사랑할 수 있는 것일까. 그땐 이해할 수 없었지만 노 의원은 제 방식으로 사랑을 증명해 낸 것 같다. 사랑했던 모든 것을 저버리는 방식으로 사랑을 고백했다. 무슨 방법으로 그 사랑에 답할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나도 당신이 머물던 이 공동체를 사랑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