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브런치를 꾸준히 시작하기로 마음 먹은 이유
글을 쓴다는 것은 참 좋은 행위라는 것을 알면서도 어렵고 무섭기도 한 일인 것 같다는 생각을 해왔다. 나는 글을 쓰는 것을 좋아한다. 글을 쓰는 과정에서도 여러가지 단계가 있다 - 1단계: 글을 쓰기 전, 2단계: 글을 쓰는 중, 3단계: 글을 쓰고 난 후 - 난 여기에서 2,3 단계를 좋아한다. 일단 글을 쓰기 시작하면 내가 하고 싶은 말이 이렇게나 많았나? 싶은 정도로 쭉쭉 써내려가기 시작한다. 그럼에도 1단계에서의 나는 너무 게으르고 글을 쓰는 것에 대한 알 수 없는 부담감을 느낀다.
언제부터일까, 글을 쓰면 남들에게 보여줘도 부끄럽지 않을 만큼 멋진 어휘를 많이 쓰고 깊이가 있는 화려한 결과물을 보여줘야 한다는 압박감이 있었다(아무도 그만큼 기대를 하지 않는데,,,나 혼자 내 스스로에게 짐을 지우고 부담을 주었다). 어디에서 시작 되었는지 모를 이 부담감은 나를 글을 쓰는 것에서 멀어지게 만들었고, 괜한 부담감은 나를 글을 잘 쓰는 사람들을 부러워만 하는 사람으로 만들었다.
비단 글에서 뿐만 아닌 것 같다. 주변 친구들이 잘나가는 듯 해보여서? 세상에 멋진 사람들은 너무 많은데 나는 그만큼 능력이 없는 것 같아서? 끊임 없는 비교는 나를 작게, 내 방으로 숨게 만든다. 내가 글을 잘 쓴다, 멋지다, 능력이 대단하다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사실 그 누구보다도 노력하고 매일 일어나는 작은 일들과 순간에 최선을 다하고 꾸준한 지구력을 보여주는 사람들이다. 그 끈기가 누적되어 큰 차이와 변화를 만들고 '대단해 보이는 무언가'를 만든다. 꾸준하다는 것이 결국 가장 중요한 것임을 알면서도, 우리는 종종 이를 잊고 다른 사람들이 이뤄낸 결과물들만을 부러워 한다.
요즈음 직장에서 생긴 외부적인 변화, 그리고 이를 계기로 내가 세운 계획들이 틀어지게 되면서 원점으로 돌아가 내 스스로에 대해 많이 생각하는 시간을 갖게 되었다. 그러면서 혼란은 배가 되었는다. 나를 안다는 것이 이렇게나 어렵고 힘든 일이라니! 그래도 짧지 않은 세월을 살았는데 스스로가 어떤 사람인지, 어떤 것을 좋아하는지, 어떤 것을 하고 싶은지, 어떤 삶을 살고 싶은지,,, 어떤 질문이든 명쾌하게 말하는 것이 어려운 스스로를 마주하는 일이 너무 힘들었다. 그러다 사내 독서모임을 통해 읽은 헤르만 헤세의 <유리알 유희>를 읽으면서 큰 감명과 위안을 얻게 되었다.
인간의 일생이라는 것은 모두 자기 자신에게 도달하기 위한 여정, 아니 그러한 길을 찾아내려는 실험이며, 그러한 오솔길의 암시이다.
" 진리는 분명 있네. 그러나 자네가 바라는 '가르침'. 절대적이고 완전하고 그것만 있으면 지혜로워지는 가르침이란 존재하지 않아. 자네는 완전한 가르침이 아니라 자네 자신의 완성을 바라야 하네. 신성의 개념이나 책 속이 아니라 자네 안에 있어. 진리는 체험되는 것이지 가르쳐지는 것이 아니야. 싸울 각오를 하게. 요제프 크네히트
나는 하고 싶은 것도 많고, 분야를 막론하고 쉽게 흥미를 가지지만 어느하다 진득하게 하는 것은 지겨워하는 타입이라 고민이 많았다. 나도 나의 전문성을 가지고 싶고, 무엇하나 특출나게 잘한다고 자신있게 말할 수 없는 내 자신이 속상했다. 그러나 인생이라는 것이 결국 나를 찾아가기 위한 과정이라면, 내가 어차피 내 스스로에 대한 결론을 내릴 수 없는 것이 당연한거라면 이것저것 관심을 가지고 시도해보는 나는 잘 살고 있는 것이 아닐까? 한가지 영역에서 1등이 되지 못하더라도 다른 2가지 영역에서 2등이라면 그런 능력을 가진 사람이 오히려 드문 것이 아닐까? 나는 '딴생각'을 많이 하는 내 스스로를 받아들이고 이를 더욱 특별하고 가치있게 만들어보기로 했다.
그래서 글을 쓰기로 했다.
이렇게 다방면에 관심을 갖고 무엇인가를 배우고 하고 있는 나의 일상에 대해 기록을 하면, 이것이 모여 특별한 스토리가 되지 않을까? 또한 새로운 것들에 도전하며 나를 충분히 탐구하고 경험들을 통해 내가 어떤 발자취를 걷게 될지 궁금해졌다. 나와 같은 고민을 하는 사람들이 이 세상에 무수히 많을 것이라는 생각을 한다. 특별하지는 않아도 다른 사람을 생각을 읽어내려가면서 공감하고 위안을 얻는 것이 글의 힘이다. 멋드러진 글을 쓸 수 있는 재주는 없더라도, 나의 색깔이 깃든 글을 통해 나라는 사람이 있다는 것을 드러내 보기로 했다. 어떤 사람이 내 글을 읽게 될 지는 모르겠지만, 단 한명이라도 나에게 공감하며 위안를 얻는다면 '글을 쓰기로' 마음먹은 내 작은 용기는 충분히 위대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