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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ulia Oct 04. 2018

원초적 생명력을 느끼다

선흘곶자왈(동백동산)을 다녀와서

주말에 동백동산에 다녀왔다. 곶자왈에 가보고 싶다는 여사님의 청이 있어 화순 곶자왈을 갈까 선흘 곶자왈을 갈까 고민하다가 가까운 선흘 곶자왈을 선택했다.


'곶자왈'은 제주 방언으로 숲을 뜻하는 '곶'과 돌, 자갈을 뜻하는 '자왈'의 합성어이다. 사전 정의에는 '화산이 분출할 때 점성이 높은 용암이 크고 작은 바위 덩어리로 쪼개져 요철(凹凸) 지형이 만들어지면서 나무, 덩굴식물 등이 뒤섞여 숲을 이룬 곳을 이르는 제주 고유어'라고 설명한다.


주차장에 차를 세우면 바로 알 수 있다. 이 곳에 관광객이 거의 없다는 사실을.. 허, 호, 하 넘버의 흰색 차량은 거의 보이질 않는다. 방문한 사람들의 대부분이 제주 도민이다. 이름난 명소가 아니라 그런지 관광객이 많지 않다. 주차장 맞은 편의 이름난 카페에는 모든 차종의 흰색 차량이 주차되어 있다.

동백동산의 탐방코스. 약 2시간이 소요된다.

 

주차장에서 시작해 탐방 코스 전체를 돌아본다면 대략 2시간이 걸린다. 총 3.4km. 얼마 전에 한라산을 다녀와서 그런지 이 정도쯤이야 하고 우습게 보인다. 하지만 산책길은 대부분 돌이 많고 울퉁불퉁해 생각보다 걷는 게 쉽지 않다. 제대로 된 신발을 신지 않으면 발목이 삐끗하거나 넘어질 수도 있으니 조심해야 한다.


곶자왈은 대부분 경작지로 활용되는데 이 곳은 암석이 많아 자연 그대로의 상태를 유지하고 있다. 많은 양치식물과 다양한 식생을 그대로 구경할 수 있고 실제 인공 조림과 관리가 없어 원시의 깊은 숲에 들어가 외부와 완벽하게 차단되는 경험을 해볼 수 있다. 실제 휴대폰 데이터가 매우 느려 채팅방에 사진 업로드를 종종 실패했다.


길을 따라 걷다보면 발자국 소리, 새소리, 바람에 부딪히는 나뭇잎 소리만 가득하다.


입구에서 멀지 않은 곳에 '도틀굴'이라는 용암 동굴이 있는 것을 봤다. 안내판을 보니 제주 4.3 때 주변 마을 사람들이 몸을 숨겼던 곳이라고 했다. 입구가 1미터 정도로 아주 작은데 들어가면 300m쯤 된다고 한다. 이 글을 쓰기 위해 도틀굴에 대해 더 찾아보니 학살령을 피해 동굴로 사람들이 숨어들었고 이내 발견되어 모두 학살됐다고 한다.(참조) 차가운 동굴에서 죽음을 마주하며 숨죽여 울었을 사람들을 생각하니 눈물이 난다.


생태계의 보고인 동백 동산에서 많은 사람들이 목숨을 빼앗겼다니.. '인간은 정말 무엇인가'에 대해 고민하게 된다.



동백동산에는 '먼물깍'이라는 습지가 있다. 2011년 람사르 습지로도 인정된 곳이다.' 먼물깍'은 마을에서 멀리 떨어져 있는 물이라는 뜻의 ‘먼물’과 끄트머리를 뜻하는 제주어 ‘깍’이 모여서 된 이름으로 ‘먼 곳 끄트머리에 있는 물이라는 뜻이다. 제주의 이런 조어들은 참 귀엽다.


한 시간여를 빠듯이 오르면 먼물깍이 나타난다. 빽빽한 원시림을 걷다가 탁 트인 곳이 나오니 한 껏 상쾌하다. 습지를 바라보는 정자 하나와 습지 바로 앞 벤치가 두 어개 놓여있다. 간단한 점심을 싸들고 올라와 나들이 겸 오면 더욱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물이 고이질 않는 제주에서 습지를 보는 것은 매우 희귀한 일이다. 예전에 살았던 집 앞에는 폭이 6-7미터는 되는 건천이 있었는데 큰 비가 와서 물이 흐르다가도 하루만 지나면 모두 말라버릴 정도로 물이 고이질 않았다. 그런데 이렇게 큰 사이즈의 습지를 보니 신기하고도 반갑다. 개구리밥과 수초가 가득한 걸 보니 수생 식물들이 잘 살고 있는 것 같다. 개구리나 소금쟁이 같은 물가 생물은 보이질 않았다.



2018년 10월 현재 동백 동산에는 설치예술가 목가(mokga)님의 전시회가 진행되고 있다. 10월부터 11월까지 한 달간 동백 동산 곳곳에 설치 예술품들이 전시되어 있다. 대형 거울에 나무뿌리를 붙여 만든 이 설치 예술품은 '서로 each other'라고 이름 붙여졌다.


처음엔 이 팻말이 '서쪽 입구' 방향을 가리키고 있어 서쪽 길이라는 뜻의 '서로'의 동음이의어인 '서로 each other'라고 표기한 줄 알았다. 하지만 이내 행정기관에서 그런 팻말을 제작했을 리 없다고 도리질을 하며 주변을 둘러보니 대형 거울이 보여 설치 미술의 작품임을 유추할 수 있었다.


동백동산을 내려가는 길에 설치를 마무리하는 작가님 일행을 마주쳤고, 3일에는 공연을 하니 구경하러 오라는 친절한 이야기도 들을 수 있었다.


서쪽 입구로 내려가면 선흘리 안쪽 마을을 구경할 수 있는데 제주에 오래 살았거나 자리를 잡고 사는 사람들의 집을 구경할 수 있었다. 갑자기 돌아선 골목에서는 2층 규모의 갤러리를 발견하기도 하고 3-400평 되는 규모의 땅에 오두막 같은 별채를 지어두고 생활하는 집도 있었다.


대나무로 만든 숲, 수풀 림자를 집에 걸어둔 집 답게 나무와 꽃이 많았다.


대여섯 채의 집을 지나치면 다시 숲길로 접어든다. 이 숲을 따라 900m쯤 이동하면 처음 들어섰던 입구가 다시 나오고 2 시간의 여정을 마칠 수 있다. 어느덧 해가 지는 시간이 됐다. 물 한 모금 먹고 삼나무 너머로 지는 해를 바라봤다. 여사님이 '이번 제주행은 아주 알찼다'며 좋아하는 소릴 들으니 슬그머니 웃음이 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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