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산물 홈파티
여사님이 몸보신을 시켜준다며 제주 돌문어 두 마리를 동문시장에서 사 오셨다. 나이 들면서 해산물이 왜 더 좋아지는지 이유를 알 수 없지만 요즘 나는 고기 대신 해산물을 열심히 찾아 먹고 있다. 최근 읽은 책 때문이기도 한데 요즘 육고기보다는 해산물을 주로 먹고 있다.
아직 여사님이 집에 도착하기 전에 내가 먼저 집에 도착했다. 나는 겉옷도 벗기 전에 문어 삶을 물을 불에 올렸다. 무를 좀 넣으면 문어가 더욱 부드럽게 삶아진다고 들었기 때문에 무를 조금 썰어 냄비에 넣고 거기에 색을 내줄 간장 한 스푼과 설탕 1 티스푼을 더 넣었다.
여사님이 가져온 봉지를 싱크대에 올려두니 문어를 담은 봉지를 보니 조금씩 움직였다. 순간 동공 지진이 된 여사님과 나는 서로를 바라보며 문어를 어서 집어넣으라고 했다. 옥신각신 서로 미루다가 '이런 건 엄마가 해야지!' 하는 말에 여사님이 집게로 문어를 들어 냄비에 넣었다.
문어는 이미 시장에서 내장을 다 빼내어 손질된 상태였지만 뇌와 장기가 없어도 사지를 움직일 수 있는 무서운 생명력을 가졌기 때문에 살아 움직이고 있었다. 뜨거운 물에 넣으니 순간 문어가 다리로 집게를 휘감아 올렸다. 놀란 여사님은 들고 있던 집게를 놓쳤고 문어는 집게를 휘감은 채 냄비 속으로 풍덩하고 들어갔다.
문어 머리 쪽으로 다리가 예쁘게 말리려면 머리를 들고 다리부터 조금 넣었다가 빼고, 다시 조금 넣었다가 빼는 순서를 거쳐야 한다고 했는데 움직이는 문어 탓에 삶은 모양이고 뭐고 냄비 앞에서 둔해지는 문어를 그냥 관찰할 수밖에 없었다.
여사님은 그냥 삶은 문어를 썰어 초장과 함께 먹자고 했는데 내가 문어 초회를 만들어 보겠다고 했다. 얼마 전에 식당에서 곁들임으로 먹은 문어 초회의 맛이 생각났기 때문이다.
포털에서 문어 초회 드레싱을 검색하고 레시피를 훑어봤다. 쯔유를 기본으로 식초와 레몬즙, 설탕이 들어가는 것 같았다. 더 많은 재료들이 있으면 좋았겠지만 일단 집에 있는 재료로 만들어 보기로 했다. 레몬즙이 없어서 라임즙으로 대체.
간간하게 초회 드레싱을 만들어 두고 양파를 썰어 찬물에 담갔다. 물기를 제거해 접시 바닥에 적당히 깔았다. 오이는 껍질을 벗기고 씨 부분을 발라낸 뒤 얇게 썰었다. 깻잎이 조금 있는 걸 보고 돌돌 말아 채를 쳤다.
채소를 손질하는 사이에 물을 끓이고 불려둔 마른미역을 넣었다. 5초 정도 지나니 바다에 있었을 때의 새파란 색으로 변했다. 건져내 체에 받친 후 찬물에 담가 열을 식히고 손으로 짜 물기를 없앴다.
물기를 짠 미역에 초회 드레싱을 넣고 조물조물 무쳤다. 어차피 드레싱을 부을 거지만 미역까지 맛이 들기에는 모자랄 것 같아 미역에 먼저 무쳤다. 가운데에 미역을 놓고 그 주변으로 문어 썬 것을 올렸다. 그리고 먹기 직전 드레식을 전체적으로 부어줬다. 마지막으로 채 썬 깻잎을 올리니 완성.
사진으로 남기지 못했지만 약한 도수의 안동 소주를 선물 받아 저걸 언제 먹나 하고 있었다. 오늘이 날이라 싶어 살짝 차게 해뒀다가 오픈했다. 제대로 된 술잔이 없어 찻잔에다 술을 따랐다.
미역과 오이, 양파와 문어를 적당히 집어 먹었다. 쯔유의 짭조름한 맛과 식초, 라임즙의 상큼함이 먼저 다가왔다. 이내 오이와 양파의 풋풋한 맛이 나고 문어의 찰진 살점이 씹혔다. 맛있었다. 번거롭게 그런 걸 하냐며 마뜩잖아했던 여사님도 잘 드셨다. 좀 더 새콤했으면 더 좋았겠다고 평가도 해주셨다.
삶은 문어도 하나 집어 와사비를 푼 초장에 푹 찍어 먹어봤다. 이 조합은 뭐 나무랄 데가 없다. 가족이 모여 문어를 질겅질겅 씹으며 식사를 하자니 주중 끝 주말 시작의 기분이 반짝 났다.
맛있는 안주가 있는데 술맛이 좋지 않을 리가 없다. 발효주정의 냄새가 콤콤하게 난다. 희석식 소주와는 다른 향과 맛이다. 22도라 목넘김이 부드럽다. 45도짜리를 맛본 적이 있는데 나 같은 쪼렙은 고도수의 술은 아직 어렵다. 전통주 명인 박재서 님의 술도가에 언젠가 방문해보면 좋을 것 같다.
딱새우가 먹고 싶었던 동생이 동문시장에서 딱새우회를 사 왔다. 딱새우는 제주에 와서 알게 된 식재료인데 그냥 새우보다는 훨씬 더 달고 찰진 맛이 있다. 껍질이 매우 두껍기 때문에 까는 게 좀 힘들지만 딱새우 까는 법을 한 번 배워두면 요긴하게 쓸 수 있다. 제주에 살면서 꽤 많이 먹어봤기 때문에 오늘은 모두 동생에게 양보.
횟집에서 먹는 느낌을 좀 내보려고 콘버터를 해봤다. 지난여름 삶아둔 제주 초당 옥수수를 해동해 옥수수 알만 발라냈다. 초당 옥수수는 그냥 쪄 먹어도 매우 달다. 일명 사탕옥수수라고 불리기도 한다. 프라이팬에 버터를 넣고 녹인 후에 옥수수 알을 붓고 그 위에 찢은 크래미를 올려준다. 모짜렐라를 가득 올리고 잠깐 뚜껑을 덮어준 후 치즈가 녹으면 뚜껑을 열고 밑에 옥수수가 살짝 눌어붙을 때까지 기다린다.
단짠의 정석이다. 옥수수의 달큼함과 크래미의 짭짤한 맛의 조화가 좋다. 모짜렐라 치즈는 진짜 치트키 같다. 별로 인상적이지 않은 음식도 구미가 당기게 만들어 준다.
안주가 좋아 360ml 한 병이 순식간에 사라진다. 살짝 취기가 오르나 싶었는데 문어 삶은 물에 라면을 삶는 것을 보고 정신을 차린다.
해산물 안주를 먹고 난 후에 마무리로 먹는 라면은 왜 이렇게 맛있을까? 아니 사실 라면은 언제 먹어도 맛있기 때문에 해산물 뒤에 먹는 라면이 특별히 더 맛있는 건 아니긴 하다. 하지만 어떤 음식이든 기본이 되는 베이스가 중요한데 문어 두 마리를 삶은 진한 육수에 라면을 끓이니 평소에 먹던 라면보다 특별한 맛이 나는 건 사실이다.
라면을 마지막으로 금요일 해산물 파티는 이렇게 끝이 났다. 다른 날보다 금요일에 잠드는 일이 좀 어렵다. 주말 시작이라 이대로 자는 게 아쉽기도 하고 늦잠을 잘 수 있다는 생각에 늦게 잠들다 보니 금요일 밤 수면 습관이 좋지 못하다. 하지만 오늘은 술도 한 잔 먹었겠다, 배도 부르겠다 잠이 잘 올 것 같다. 가족을 위해 문어를 사주신 여사님께 감사의 말씀을 가슴속으로 드리며.. 오늘의 해산물 파티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