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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ulia Oct 16. 2018

비 오는 제주도, 어디를 갈까?

제주도 여행은 날씨가 반이다.


제주도를 여행하겠다는 사람이 나타나면 '날이 좋았으면 좋겠다'하고 덕담을 건넨다. 도시와 달리 비가 와도 들어갈 실내 관광지가 별로 없고 여행하는 사람들 대부분 '푸른 하늘이 비치는 옥빛 제주 바다'를 기대하기 때문이다.


누구나 눈이 시리게 푸른 하늘의 맑은 날을 기대하지만 우리나라 최다우 지역인 제주를 여행하다 보면 하루 이틀쯤은 비를 만날 수도 있다. 처음엔 나도 항상 맑은 날만 고집했지만 살다 보니 비가 내려 아스라이 안개가 끼는 날도 운치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됐다. 맑은 날과 달리 좀 더 신비로운 분위기가 난다고 해야할까?


문제는 비가 거세게 오거나 돌풍이 부는 날인데.. 관광이 어려운 정도가 아니라 안전을 위협받는 날들이 꽤 있기 때문에 조심해야 한다. 이런 날은 사실밖에 나가지 않고 숙소에 푹 쉬길 권하지만 2박, 3박 일정으로 짧게 제주에 오는 사람들은 가만히 있는 시간을 무엇보다 아까워한다.


제주에 왔는데 비가 온다면 어딜 가야 할까? 종종 물어보는 사람들이 있어 이번에 한 번 정리해봤다.




1. 비가 와도 밖으로 나가 자연과 함께 하고 싶다.

 

 1) 비자림

 

제주 동쪽 구좌읍에는 '비자림'이 있다. 많은 사람들이 다녀 가는 곳이다. 제주에 살면서 열 번쯤 와봤을까. 날씨가 좋든 나쁘든 눈이 오든 바람이 불든 비자림은 항상 옳았다.


비자림의 산책길은 화산송이가 깔려 있는데 밟을 때 나는 소리가 꽤 경쾌하다. 자갈길과 다르게 가벼운 소리가 난다고 해야 할까? 천년을 사는 나무들 사이로 화산송이를 꾹꾹 밟고 산책하노라면 모든 스트레스가 날아가는 기분이다.

비자림의 화산송이

처음에 비자림을 걸을 때 영화 <반지의 제왕>이 생각났다. 간달프와 호빗이 지나던 신비로운 숲과 같은 느낌이 들었기 때문이다. 육지에서 보지 못한 식생 덕분인지 외국에 온 것만 같은 착각이 들 정도였다.


비자림에는 100년 이상된 수령의 비자나무들이 가득하다. 비자 열매에는 갖가지 효능이 있어 옛날에는 임금님께 진상도 했다고 한다. 그래서 그런지 이 비자나무 숲을 걷고 있노라면 눈과 코가 상쾌하다. 몸 속 아픈 곳 어딘가가 치유되는 느낌이 든다.


함께 여행하는 사람들과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며 걸어도 좋고 말없이 처음부터 끝까지 걸어도 좋다. 입구와 끝이 같아 한 바퀴 둘러보는데 전혀 부담이 없다. 비가 오는 날이나 맑은 날이나 언제나 추천하는 곳이다.


워낙 울창해서 한여름에 가도 시원함을 느낄 수 있고 비가 오는 날에도 비를 덜 맞는다.


 

 2) 엉또폭포


'비가 오면 터진다'. 엉또폭포를 두고 하는 말이다. 평소에는 물이 내려오지 않는 마른 폭포인데 한라산에 최소 70mm 이상의 비가 내리기 시작하면 마른 절벽에 물줄기가 떨어진다. 그 모습이 꽤 장관이라서 이 곳은 맑은 날보다 비 오는 날 많은 사람들이 방문한다. 근처에 차를 세우고 시원한 폭포 소리를 따라 가보면 장관이 펼쳐진다. 비가 오는 날이 아니면 볼 수 없는 광경이니 서귀포에 있다면 한 번 들러보는 것도 좋을 듯하다.

폭우가 쏟아진 다음 날 찾아갔던 엉또 폭포


 3) 절물 자연휴양림

 

비가 오는 날 숲길을 산책하고 싶다면 자연 그대로의 숲보다는 인공 조림의 휴양림을 더 추천한다. 사람들이 다니기 편한 길을 만들어둔 것도 그렇고 곳곳에 비를 피할 수 있는 정자나 쉼터 같은 공간을 제공해 주기 때문이다. '물이 나오는 절'이 있다는 뜻의 '절물 자연휴양림'에 들어서면 키 높은 삼나무 숲이 방문객을 맞이해 준다. 삼나무 숲 사이로 한가롭게 걷노라면 마음의 안정이 찾아오는 것 같다.

 

샘물을 마실 수 있도록 옆에 바가지를 뒀다.
잘 관리된 산책길. 비가 와도 걷기 편하다.
시원하게 쭉쭉 뻗은 삼나무 길

어디를 찍어도 배경이 좋아 그런지 스냅 사진을 찍는 사람들이 많이 보인다. 이 곳은 마방목지, 사려니숲과도 가까워 같은 동선으로 묶어 다녀오는 것을 추천한다.




2. 보송한 실내에서 한가로운 시간을 보내고 싶다.


 1) 오설록 티 뮤지엄 티스톤

  

서귀포시 안광면에 있는 오설록 차밭이나 이니스프리 하우스에 많은 방문객이 들린다. 하지만 오설록 티 뮤지엄의 정수는 바로 '티스톤'이라고 불리는 다도 체험 프로그램이다. 티 뮤지엄을 지나 이니스프리 하우스로 가는 길에 유리 통창의 검은색 건물이 하나 보이는데 바로 이곳이 티스톤 프로그램을 진행하는 건물이다.

 

벼루와 먹의 검은색을 상징하는 건물 외관
티스톤은 티(tea)와 벼루(inkstone)의 조합어로 추사 김정희가 벼루 10개, 붓 1000개가 닳아 없어질 때까지 실력을 갈고닦아 추사체를 완성했다는 일화처럼 차를 갈아 세상과 사람을 아름답게 만들겠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 홈페이지 발췌


이 티스톤 건물은 3면이 유리로 되어 있기 때문에 편안하게 바깥을 조망할 수 있다. 봄에는 벚꽃을 여름에는 다원의 푸르름을 겨울에는 설경을 보며 다도 체험이 가능하다. 1인 당 1.5만 원이며 체험 후 텀블러도 증정한다. 1일 5회 진행하며 사전 예약을 해야 하나 당일 자리가 남는 경우도 있을 수 있으니 전화를 해보도록 하자.


자세한 내용 및 예약 확인은 '이곳'을 참고




 2) 본태박물관


삼성이 '리움미술관'을 운영한다면 현대에서 운영하는 갤러리가 바로 '본태박물관'이다. 자금력이 있는 기업에서 운영하다 보니 유명 작가의 작품이 많이 전시되어 있다. 작품도 작품이지만 세계적으로 유명한 건축가 '안도 타다오'가 설계한 박물관 건물 자체를 구경하는 재미도 있다.


미술관 관장이 40여 년간 수집했다는 한국의 공예작품과 살바도르 달리, 백남준 등의 유명 현대 미술 작품도 관람이 가능하다. 개인적으로 인상적이었던 전시는 4관에서 전시 중인 <상여와 꼭두의 미학>이라는 전시였다. 우리나라의 전통 상여와 꼭두인형을 소개하는 전시인데 이 전시는 반드시 도슨트 시간을 확인해 설명을 들어보길 바란다. 도슨트의 재치 있는 입담에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전시를 구경했던 기억이 아직도 난다. 덕분에 사후 세계에 대한 조상들의 염원과 상여와 꼭두의 다양한 모습에 대해 많은 정보를 알게 됐다.

 


많은 사람들에게 유명한 쿠사마 야요이의 호박 작품도 전시되어있다. 환 공포증이 있는 사람들에게는 아찔한 작품이지만.. 나는 <무한 거울방-영혼의 반짝임> 전시가 참 좋았는데 마치 우주의 어느 공간에 와 있는 게 아닐까 싶을 정도로 몽환적인 느낌이 있었다.

 

몽환적인 거울방

이 곳의 최대 단점은 바로 입장료인데 성인 기준 정가 2만 원이다 보니 관람객이 참 없다. 전시를 관람할 때 사람이 없어 호젓한 게 장점이긴 하지만.. 금액이 부담되는 사람은 소셜커머스에서 상시 20% 할인권을 판매하고 있으니 방문 전에 구매해 가져 가는 게 좋을 것 같다.




3. 제주에 대해 좀 더 알고 싶다.


 1) 4.3 평화공원


부끄럽지만 제주에 와서 살아보기 전에는 '4.3 사건'을 잘 알지 못했다. 아니 거의 알지 못했다고 표현하는 게 맞을 것 같다. '공권력에 의해 무고한 주민들이 학살당한 사건' 정도로만 어렴풋이 알기나 했지 정확히 언제, 어떤 이유로 이런 사건이 일어났는지 알지 못했었다.


우연히 4.3 평화공원을 지나게 되어 들렀던 그 날 4.3 사건에 대한 자세한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당시 제주도 인구가 20만이었을 때 약 3만 명의 희생사자가 발행했다. 마을에 각 가정마다 모두 같은 날에 제사를 지낸다는 이야기를 들어보면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한꺼번에 희생됐는지 알 수 있다.

 


4.3 공원을 함께 갔던 이들은 나오면서 모두 가슴이 답답하다고 했다. 이런 슬픈 역사가 있었음에 가슴 아프고 이런 슬픈 역사를 알지 못했음에 답답하기 때문이다. 그래도 이 아름다운 섬 제주가 어떤 역경을 겪고 이렇게 아름다울 수 있는지 그 의미를 새겨보는 것도 좋을 것 같다.

 


 2) 해녀박물관


구좌읍 세화리에 있는 해녀박물관에 가서 울고 왔다는 지인의 이야기를 듣고 '뭔데 그러지..'싶은 마음에 방문했었다. 제주 하면 가장 먼저 떠올리는 것들 중에 하나가 바로 '해녀'다. 숨을 참고 자맥질을 해서 삶을 꾸려나가는 해녀들의 고달픈 삶은 다큐멘터리를 통해서 들어봤지만 해녀박물관에 와서야 그 고달픔이 어느 정도였는지 알 수 있었다.


1층에서는 10여분짜리 영상물을 관람할 수 있는데 이걸 보는 내내 사람들의 훌쩍임을 들을 수 있다.


이제 얼마 남지 않은 해녀들의 인터뷰 영상을 통해 그 시정 정말 얼마나 어렵게 살았는지 생생하게 전해 들을 수 있다. 가장 놀랐던 것은 물질을 하고 올라온 날 아이를 출산했다는 한 할망의 인터뷰를 보고 귀를 의심했었다. 얼마나 사는 게 힘들었으면 출산 당일까지 물질을 했을까.. 해산하고 일주일도 되지 않아 다시 물질을 하러 나갔다는 할망의 말에 나도 눈물이 핑 돌기도 했다.


해녀박물관 꼭대기(그래 봤자 3층) 층에 가면 세화 해변을 한눈에 담을 수 있다. 이 시원한 광경이 좋아 의자에 앉아 한참 바라보다가 내려왔던 기억이 난다.


해녀가 잡아오는 싱싱한 수산물이나 횟집이나 검색했던 내가 얼마나 철딱서니가 없는지 반성도 좀 했던 기억이 난다.

해녀박물관 꼭대기층에서 바라본 세화해변



위에 설명한 곳을 동선 별로 방문한다고 하면 아래와 같이 묶어볼 수 있을 것 같다.


[제주 시내] 절물 자연휴양림 - 4.3 평화공원

[제주 동쪽] 비자림 - 해녀박물관

[제주 남쪽] 본태박물관 - 오설록 티 뮤지엄 티스톤 or 엉또폭포


고대했던 제주 여행 기간에 비가 온다고 너무 속상해하지 말자. 이 섬은 비가 와도 눈이 와도 언제나 신비롭고 아름다운 곳이다. 아무쪼록 즐거운 제주 여행되시길..




p.s

- 사실 비 오는 날은 맛있는 안주에 낮술이나 마시고 기분 좋게 낮잠 드는 게 최고다.

- 제주 전역에 비가 오는 날 제주시 <->서귀포시를 가야 한다면 5.16 도로와 1100 도로 이용은 자제하자. 전방 5미터도 보이지 않는 무시무시한 안개 때문에 생명의 위협을 느낄지도 모른다.

- 강풍이 부는 날 특히 바닷가 야외 활동을 자제하자. 바다 보겠다고 바닷가 앞에 섰다가 물벼락을 맞거나 우산이 뒤집힐 질 수 있다.

- 제주시가 흐리고 비가 와도 한라산을 넘어 서귀포시는 해가 쨍쨍 날 수 있다. 일기예보를 보거나 SNS의 태그를 통해 올린 게시물을 보고 그쪽 날씨를 확인해 보자. 날씨가 도와주지 않는다면 내가 이동할 수밖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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