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은 없지만 조건은 까다로워요.
작년 11월부터 집을 보러 다니기 시작했다. 주말마다 제주 교차로와 제주 오일장 사이트를 열심히 뒤졌다. 제주는 네이버 부동산, 직방/다방 같은 서비스보다 저 두 곳에 매물이 더 많다. 처음 제주에 와서 팀원들이 집을 골라줄 때도 제주 교차로에서 보고 찾았다.
매물을 검색하며 내가 생각한 제주집 조건은 이랬다.
필수 조건
- 공항에서 최대 40분 거리일 것
- 남향 또는 남서향일 것
- 방이 2개 이상일 것
- 풀옵션일 것
기피 조건
- 바닷가 바로 앞은 피할 것, NO 관광지
- 아파트는 아닐 것
추가 조건
- 가급적 동쪽이면 더 좋음
- 주변에 귤밭이 있으면 더 좋음
제주도가 비행기로 1시간 거리라고는 하지만 집에서 김포공항까지, 이동 시간과 대기 시간을 합치면 평균 3시간 정도가 걸린다. 그런데 제주 공항에 또 도착해 1시간가량을 또 이동해야 한다면 아무것도 안 해도 이미 지친 상태일 것이다. 그래서 공항에서 30-40분 거리에 있는 지역이 타깃이 됐다.
제주에 사는 동안은 6세대가 사는 시내 빌라와 700여 세대의 아파트에서 살았다. 집 자체는 좋았지만 주변 환경이 제주스럽지는 않았다. 처음 살던 동네는 판교 백현동 카페 거리쯤에 있는 기분이 들었고 두 번째 동네는 중산간이었지만 아파트 단지라 별 다른 게 없었다. 현재 경기도에 살고 있는 곳도 아파트이니 제주집만큼은 단독 주택의 형태가 좋을 것 같았다.
남향집. 무슨 말이 더 필요할까. 같은 아파트라도 남향집이 몇 백에서 천만 원쯤은 더 비싸다는 사실을 독립한 뒤 알게 됐다. 해 잘 드는 게 뭐, 그게 뭐 싶지만 집은 그게 다다! 남향집은 정말 여름에 시원하고 겨울에 따뜻하다. 집에 빛이 얼마나 잘 드는지.. 남향집은 집에 들어가는 순간, '아, 여기 뭔가 따뜻하다'라는 기분이 든다.
가끔 있을 게스트를 고려해 방은 2개 이상이었으면 했다. 금액적인 부담을 확 줄이려고 1.5룸이나 원룸도 고민해 봤지만 우리 나이가 나이인지라 그런 조건은 눈에 차지 않았다. 그래서 과감하게 제외.
주거지가 아니다 보니 제주집에는 많은 투자를 할 수 없다. 필수품인 냉장고 같은 걸 중고라도 사다 두는 게 부담이 됐다. 돈도 돈이지만 짐을 싸서 풀고 다시 싸는 부담이 없으려면 풀옵션이 좋을 것 같았다. 최근 제주에 지어지는 집들은 한 달 살기 같은 걸 염두해 최소 에어컨이나 냉장고쯤은 기본적으로 갖추는 곳이 많았다.
처음에 제주 왔을 때 '나도 이제 바닷가에서 살아보는 건가!' 싶었지만 제주에 좀 살다 보니 바닷가 앞으로 사람이 살기가 좀 어렵다 싶었다. 일 년 내내 바닷바람이 강하게 불고, 그 바닷가의 소금을 머금은 습기는 모든 걸 부식시켰다. 그래서 제주 사람들 말로는 제주 바닷가 앞 부락들은 경제적으로 여유가 덜 한 사람들이 사는 곳이라고 들었다.(하지만 지금은 도내 평 당 매매 비용이 가장 높다는 게 반전) 바닷가에서는 좀 떨어진 중산간 동네가 좋을 것 같았다.
그리고 가급적이면 내가 익숙한 동쪽이었으면 했다. 제주 사는 동안 왜 그런지는 모르겠지만 서쪽보다는 동쪽으로 많이 다녔다. 바다가 더 예뻐서 그랬나? 귀여운 오름들이 더 많아서 그랬나? 이유는 잘 모르겠지만 어쩐지 나는 애월, 한림보다는 조천이나 성산이 더 좋았다.
이런 조합으로 매물을 검색하니 한 번에 10개쯤밖에 결과에 나오지 않았다. 그마저도 (거래 완료)라는 제목이 붙은 게 한 2개쯤 있었고, 사진 썸네일이 없는 게 하나쯤, 아주 낡은 구옥이거나 바닷가 바로 앞에 매물을 제외하고 나면 5개 정도의 매물이 있었다. 올라온 정보를 살피면서 하나하나 추려가면서 리스트업을 하고 부동산에 연락해 방문 시간을 잡았다.
아직 실체는 없지만 제주도 우리집에 한걸음 다가선 기분이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