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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ulia May 03. 2020

오도방 라이딩 시즌2

붕붕붕 꽃향기를 맡으면 힘이 솟는 꼬마 스쿠터

여전히 코로나 시국이다. 2020년은 원더키드가 아니라 2020 코로나로 기억될 판이다. 


부처님 행차하시는 날 4/30을 시작으로 황금연휴가 시작됐다. 멤버들이 모여 오월의 황금연휴를 누가 가져갈 것인지 사다리를 탔는데.. 행운의 주인공은 내가 됐다. 


이번에는 제주에 내려가 렌터카를 빌리지 않고 스쿠터를 타고 다닐 계획이었다. 제주에서 올라와 지하 주차장에 1년을 쉬고 있던 내 오도방이 너무 불쌍하기도 하고 이렇게 오래 타지 않다가는 곧 운전 미숙이 될 것만 같았다. 게다가 동거인의 외삼촌이 바이크 광인이신데 타지 않는 스쿠터를 하나 주신다고 해서 같이 제주에서 타면 좋을 것 같아서 지난 주말 남양주에서 직접 픽업을 해 가져왔다. 


바이크 탁송을 알아보니 한 대 당 편도 25만 원. 경차를 27만 원에 가져왔으니 금액 차이가 크게 없다. 한 차에 여러 대 싣고 오니 더 싸야 하는 게 아닌가? 2대 왕복 금액을 생각하니 갈 때마다 렌트를 이용하는 게 더 나은 선택이 아닌가 싶어 망설이고 있던 그때, '렌트 값 아끼려고 스쿠터 내려보내는 거야? 우리 스쿠터 타고 신나게 제주 라이딩하려고 하는 거 아니었어?'라는 동거인의 말. 역시 이 분은 경험의 가치를 중요하게 생각하는 현자다. 경제관념이 나보다 더 느슨하다는 말


스쿠터를 내려보내고 나도 제주로 왔다. 연휴 시작 이틀 전이라 한산할 거라고 생각했던 건 오산. 얼른 택시를 잡아타고 집으로 왔다. 큰길에서 안으로 꽤 걸어 들어가야 하는데 큰길에서 내리겠다고 하니 기사님이 의아하게 생각하신다. 어두우니 더 들어가도 된다고 하시지만 재차 괜찮다고 했다. 얼른 내려 집으로 가는 좁은 길을 걷는다. 눈에 익은 풍경, 밤하늘, 봄밤의 공기가 나를 설레게 한다. 제주에서만 느끼는 익숙한 설렘이다.


집에 들어가니 떠나던 그 모양 그대로다. 지난 3주간 코로나 때문에 다른 멤버들이 방문하지 않았다. 말끔하게 정리된 모습 그대로지만 방충망 사이로 들어와 죽은 하루살이들과 각종 먼지들이 켜켜이 쌓여있다. 애써 무시하고 침구를 꺼내 잠을 청했다. 


다음 날 아침 9시 스쿠터가 곧 도착한다고 전화가 왔다. 집 앞으로 나가보니 차 타고 배 타고 물 건너온 우리 오도방 2대가 나란히 실려 도착했다. 


용인-완도-제주의 긴 여정을 마치고 드디어 도착한 우리 오도방

다음날 도착한 동거인과 스쿠터 전체 정비를 보기로 했다. 탁송 사장님이 추천해주신 바이크 샵으로 가니.. 왠지 잘 못 온듯한 기분이 들었다. 우리 같은 쪼렙 스쿠터가 아니라 웬만한 수입 자동차보다 비싼 이륜 명차들이 줄줄이 서 있었다. 바이크 샵 사장님은 전혀 상관없다고 하시는데 괜히 우리가 쫄아 있었다. 

튜닝비까지 포함하면 6-7,000 만원은 거뜬히 넘는 이륜 명차들. 진짜 신세계.

바이크 샵 곳곳에 트로피가 즐비했는데 모두 사장님이 수상하신 거라고.. 레이서 출신 사장님 포스가 남다르다. 벽에 붙은 레이서 사진이 제품 홍보용이라고 생각했는데 모두 사장님 화보라고.. 영암 서킷에서 레이스라니..


내 오도방 벤리는 배터리가 아예 나갔고, 탁송 오기 전 잠깐 타 다 넘어진 것 때문에 엔진오일이 주변에 샜다. 끝이 부러진 브레이크 손잡이도 갈기로 했고 윈드 스크린도 벤리 정품으로 달아달라고 요청드렸다. 동거인의 오도방은 크게 손 볼 게 없어 엔진오일만 갈았다. 벤리 부품은 주문을 해야 하기 때문에 주문 요청드리고 담주에 다시 방문하기로 약속을 잡았다. 

좌) 스탠드로 세운 벤리 우) 옆으로 세운 엘리트

배터리를 갈기 전까지 차를 스탠드로 세워 킥으로 시동을 걸어줘야 하는 데 이게 꽤 무겁고 힘들어 한숨을 쉬었더니 사장님이 쉽게 스탠드 하는 법을 알려주셨다. 하.. 이렇게 쉬운 방법이.. 5분 동안 끙끙거리면서 스탠드를 세우던 지난날이 한심하게 느껴질 정도로 3초 컷으로 스탠드를 세웠다. 역시 전문가 최고야. 늘 짜릿해.


부품이 오면 연락 주겠다는 사장님의 배웅을 뒤로하고 집으로 출발했다. 하. 엔진오일만 갈았을 뿐인데 이렇게 잘 나갈 일인가. 쓰로틀을 살짝 당겼을 뿐인데 제법 파워 있게 나간다. 


일 년 동안 햇빛도 들지 않는 지하 주차장에서 오다가다 사람들이 버린 쓰레기도 받아내던 내 오도방. 


이제 피기 시작하는 귤꽃의 냄새를 맡으며 한적한 도로를 달리고 있자니 나도 모르게 웃음이 났다. 왠지 내 오도방도 함께 웃고 있는 것 같다는 착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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