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유동 Jun 25. 2017

나는 그냥 여자로 태어났는데 여자를 좋아하는 사람

청소년에게 노동인권을 교육하는 강사, 그리고 레즈비언

은규 님을 만나기 전, 조금 떨렸다. 퀴어인컴퍼니 인터뷰를 통해 낯선 사람을 만나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었기 때문이다. 이때까지의 인터뷰이들은 모두 소지(SOGI)인권아카데미를 통해 알게 된 지인들이었다. 퀴어인컴퍼니 공식메일로 인터뷰 참가 의사를 밝혀주신 첫 사람, 은규는 학교 현장에 노동인권과 관련한 교육을 나가는 활동을 하는 비영리단체에서 일하는 노동인권 강사다.

퀴어인컴퍼니 메일로 인터뷰 참가 의사를 밝혀주신 첫 사람, 은규 님. ©QiC


“원래는 대학에서 사회복지를 전공하고 사회복지사 1급 자격증을 준비하고 있었어요. 그런데 지금 일하는 단체에서 사회복지사 자격증이 있으면 우대한다고 해서 지원했어요. 사회복지를 하려고 들어왔는데 들어와 보니 노동인권 단체더라고요. ‘지금 내 코가 석 자인데 남의 노동인권을 걱정해?’하는 생각으로 다니고 있습니다. (웃음) 전혀 제가 생각해보지 못한 분야니까요. 교육을 나갈 때도 만약 제가 관심 있는 성소수자 인권교육이라고 하면 교재 만드는 것도 자신 있고 강의도 잘할 자신이 있는데 노동인권교육은 하래서 하는 거니까 교안 만들 때도 그냥 공통 기본 교안 보고 제 스타일대로 바꾸는 정도로 일하고 있어요.”


-노동인권교육이라니, 생소합니다.


“말 그대로 중·고등학교 학생들을 대상으로 노동인권에 대해 교육하는 겁니다. 노동에 대한 개념, 노동인권에 대해 생각할 기회를 줘요. 한국의 공교육 자체가 노동에 대해 생각할 기회를 주지 않으니까요. 또 아르바이트와 관련해서는 임금체납을 당했을 때 근로자복지센터에 신고하는 법을 알려주고 노무사와 연결해주기도 하죠.


실제 학교의 노동인권 교육 현장. ©은규 제공

 

-지금 회사에서 첫 사회생활을 시작하신 건데 어떠신가요?


“나이가 어려서 받는 부당함이 있어요. 나이를 어디 가서 더 먹고 올 수도 없는데… 어리다고 까라면 까야 하는 사내 분위기를 겪을 때마다 괴리감이 들죠. 한 번은 속마음을 얘기했다가 제가 이 일을 계속 해야 하나 싶기도 했어요. 소강된 상태라고 할까요? 학생들 앞에서 교육할 때 내가 당당히 노동인권에 관해 설명해주고 부당한 일 있으면 이런 단체들이 있으니까 가서 신고하라고 얘기하는 것도 죄책감이 드는 거예요. 제가 나이가 더 들고 연차가 쌓이면 개선될 수 있다는 생각은 들지만 그건 먼 훗날의 이야기고 지금 당장 제가 뭘 할 수 있는지 생각하고 있어요. 그러다 찾은 게 행동하는 성소수자 인권연대(행성인)입니다.”


최근 행성인 후원회원 활동을 시작했다는 은규. 그는 회사 생활을 하며 알게 된 사람들에게 커밍아웃까지 했다. 청소년 성소수자 위기 지원센터 ‘띵동’에 자원봉사활동을 나간 것이 계기였다.


“저희랑 협력하는 비영리단체가 있는데 거기 대표님이 행성인, 친구사이, 언니네트워크까지 다 가입하고 활동하시는 분이더라고요.  그래서 그분에게 커밍아웃했죠. 같이 하고 싶다고요.실은 퀴어인컴퍼니 인터뷰하는 것도 망설였는데 제가 의지하는 선생님께서 도전해보래서 나온 겁니다.”


'띵동' 식당 토토밥(토요일 토요일은 밥먹자)에 참여한 은규 님이 직접 만든 식사. ©은규 제공


-용기 내주셔서 감사합니다. 일터에서 알게 되는 사람들에게 커밍아웃하기가 결코 쉬운 일이 아닌데 여러모로 용기가 있으세요.


“사실 우리는 어디에나 있고 어디에도 없잖아요. 스쳐 지나갈 수도 있고, 같이 회의를 할 수도 있고, 밥을 먹을 수도 있고, 개인적으로 만날 수도 있는데 우리를 신기하게 생각하는 사람들은 거부감 들어요. 그런 사람에겐 절대 커밍아웃 안 하죠. 우리를 동물원 동물 보듯 하는 자체가 싫어요. 아니 나는 방금까지 당신과 얘기하고 있었고 어제도 지금도 같이 밥을 먹고 있는데…”


나는 그냥 여자로 태어났는데 여자를 좋아하는 사람


“제가 어릴 때는 레즈비언이라는 말 자체를 모르다 보니까 10대 내내 ‘내가 남자가 되고 싶은 건가?’ 생각했어요. 여자는 머리가 길어야 하고, 치마를 입어야 하고, 파랑 말고 분홍 옷을 입어야 하고 이런 게 다 불만이었으니까. 그래서 내가 여자로 태어난 게 싫은가보다 생각했죠. 그런데 커서 보니까 제가 여성인 게 싫은 게 아니라 여성에게 가해지는 성차별이 싫었던 거였더라고요.”


-인터뷰를 하기로 마음먹기까지 시간과 고민이 있으셨을 텐데 퀴어인컴퍼니 인터뷰에 참여하기로 결정 내려주셔서 감사합니다. 처음 퀴어인컴퍼니를 어떻게 알게 되셨으며 처음 접했을 때 어떤 기분이셨나요?

 

“저는 솔직히 얘기해서 문화충격이었어요. 콕 집어서 ‘직장인, 퀴어’ 이렇게 생각해본 적은 없었거든요. 그리고 제가 성소수자 관련해서 알고 있는 지식이나 상식, 커뮤니티가 굉장히 편협하기도 했어요. 트랜스젠더의 반대어가 시스젠더라는 걸 안 지도 한 달이 안 됐어요. 알고 있는 커뮤니티도 다음 이반카페가 유일했어요. 그런데 나이가 들수록 회의감이 들더라고요. 원래 온라인으로 사람 만나는 걸 안 좋아하는데 만날 수 있는 창구가 없으니까 어쩔 수 없이 오프를 하고. 그렇게 만난 사람들은 서로를 하루 만에 판단하려고 하고. 그런 게 질리고 상처도 많이 받아서 이제는 안 만나요.”


-그전까진 몰랐다가 비영리단체에 입사하면서 행성인을 알게 된 거군요.


“그렇죠. 집회에 나갔는데 행성인 무지개 깃발이 있는 거예요. ‘아 이런 단체도 있구나’ 싶었죠.”


-은규 님께서 요즘 퀴어와 관련해서 하는 고민이 있다면요?


“공감대를 형성할 수 있는 사람. 친구가 됐든 연인이 됐든 좀 다양한 사람을 많이 만나보고 싶어요. 솔직히 친구도 마찬가지겠지만 연애도 많이 알아보고 겪어보고 하는 거잖아요. 그리고 제가 이렇게 인터뷰를 함으로써 다른 분들도 용기 내서, 부끄러워 하지 말고 인터뷰에 많이 참여해주시면 좋겠어요. 서로의 생각을 공유하고 나누면서 생각의 크기를 키워나가면 좋겠어요.”


은규 님을 만나는 날 성소수자와 관련한 다양한 핀배지를 가지고 나갔다. 은규님은 청소년 성소수자들을 위한 학교성교육표준안폐지촉구 배지를 집어들었다. ©QiC
앞으로의 연재 계획
퀴어인컴퍼니 프로젝트에 관심 있는 성소수자라면 누구든 두 팔 벌려 대환영입니다. 앞으로 연재될 인터뷰들을 읽어주시고, 인터뷰이로 프로젝트에 참가하고 싶으신 퀴어 독자가 계신다면 이메일(queerincompany@gmail.com)이나 QiC 트위터 공식계정(@queerincompany)으로 연락 주시면 고맙겠습니다. 더 많은 여러분의 이야기를 듣고 싶습니다.



퀴어인컴퍼니(Queer in Company, QiC) / 우리 회사에 성소수자가 다닌다

직장인 성소수자 드러내기 프로젝트 매거진입니다.

queerincompany@gmail.com

트위터 https://twitter.com/queerincompany

QiC 매거진 https://brunch.co.kr/magazine/queerincompany

유동이 브런치 https://brunch.co.kr/@seedinearth

매거진의 이전글 콜센터 상담원이 된 게이, 제이슨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