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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동 Mar 05. 2018

J를 위한 밸런타인데이

국제앰네스티 영문 인터뷰를 번역했습니다

J를 위한 밸런타인데이

국제앰네스티의 캠페인 'Valentine's Day: Five LGBTI voices from Asia' 중 한 편을 번역했습니다.


J는 레즈비언이라는 단어를 들어보기도 전인 아주 어린 시절부터 이미 자신이 레즈비언인 걸 알았다. 그리고 지금은 주변의 모든 친구들에게 커밍아웃을 했다. 하지만 여전히 그녀의 가족들은 그녀가 레즈비언이라는 사실을 모른다.


현재 J는 한국의 비영리단체에서 일하고 있다. 그리고 2년 전 소지(SOGI, Sexual Orientation and Gender Identity) 아카데미 수업시간에 만난 애인과 함께 살고 있다. J는 자신의 파트너와 함께 밸런타인데이를 보낼 생각에 잔뜩 신이 났다.


언제 처음 자신이 레즈비언인 걸 알았나?

레즈비언이라는 말을 들어보기도 전, 아주 어린 소녀였을 때부터 알고 있었다. 하지만 난 20대 때까지도 벽장 속에 숨어 지냈다. 무서웠다. 내가 레즈비언이라는 사실을 알면 아무리 나와 친하고, 믿을 수 있고, 올바른 사람이라고 해도 나에게서 등을 돌릴 것 같았다. 늘 우울했고 외로웠다. 나에 대해서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친구가 아무도 없었으니까. 그러다가 학교 졸업을 앞두고 갑자기 깨달았다.


평생 이렇게 살 수는 없다 벽장 밖으로 나가자.
그리고 내가 레즈비언이라는 사실을 온전히 받아들이자.


당신의 커밍아웃을 들은 친구들의 반응은 어땠나?

내 모든 친구들은 내가 레즈비언이라는 사실도 알고 애인이 있다는 사실도 안다. 특히 성소수자 친구들은 거의 다 내 애인을 안다. 하지만 이성애자 친구들은 거의 내 애인을 만나본 적도 없고 만나고 싶어 하지도 않는다. 내 생각엔 앞으로도 계속 그럴 것 같다.


난 애인과 손을 잡고 걷는 걸 좋아한다. 그러다 볼에 뽀뽀를 하기도 하고 어쩔 땐 포옹을 하기도 한다.  애인과 손깍지를 끼는 것, 걷다가 볼에 뽀뽀하는 것, 횡단보도 앞에서 포옹하는 것, 다 좋다. 다른 사람들의 시선은 신경 쓰지 않는다. 실제로 아무도 뭐라고 한 적 없다. 딱 한 번, 내가 지하철을 기다리며 애인의 머리를 쓰다듬고 있는데 어떤 할머니가 와서 “레즈비언이야 뭐야? 그런 건 집에 가서 해.”한 적은 있다.

 

한국에서 퀴어 커플로 산다는 것은?

우리는 이성애 중심 사회에서는 부부로 인정받지 못한다. 예를 들어 내 애인은 내 부모님의 장례식장에 올 수 없을 것이다. 왜냐하면 한국은 아직 동성혼 법제화가 되어있지 않고 나는 아직 내 가족에게 커밍아웃을 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한국에서 이성애자들은 연애를 언제든, 어디서든 시작할 수 있다. 일상 속에서 얼마든지 우연히, 갑자기, 자연스럽게 사랑이 싹트고 그 사랑은 연애로 이어질 수 있다. 하지만 성소수자들은 아주 특별한 ‘게이다’라는 것을 장착하지 않고서는 일상 속에서 연애를 시작하기 어렵다. 우리는 연애를 하기 위해서 훨씬 더 공을 들여야 한다. 게이 데이팅 앱을 깔고, 퀴어 행사가 열리면 기웃대기도 해야 하고, 퀴어 친구들에게 소개팅 좀 해달라고 부탁해야 한다. 우리는 사람을 만나기가 너무 어렵다.


당신은 밸런타인데이를 앞두고 설레는가? 잊을 수 없는 추억이 있다면?

나는 밸런타인데이가 너무 좋다. 왜냐하면 초콜릿을 좋아하니까! 밸런타인데이에는 평소엔 보기 힘든 귀한 초콜릿을 쉽게 구할 수 있고 비싸고 맛있는 초콜릿을 고르고 맛보는 건 행복한 일이다.


작년 밸런타인데이는 잊을 수 없다. 왜냐하면 애인과 처음으로 함께 보내는 밸런타인이었기 때문이다. 우리는 아주 맛있는 초콜릿을 서로 주고받았다. 애인이 내가 준 초콜릿을 먹고 맛있어하던 표정을 떠올리면 나도 모르게 입가에 미소가 번진다. 그때의 행복했던 기억과 초콜릿의 맛과 향기가 온몸을 감싼다. 작년 밸런타인데이만 생각하면 나는 항상 행복으로 가득 찬다.


그렇다면 올 해는 어떤 밸런타인데이를 준비하고 있나? 애인에게 줄 선물은 골랐나?

당연히 골랐지만 비밀이다. (왜냐하면 지금 애인이 이 인터뷰의 영문 답변을 번역해주고 있기 때문이다.)


한국 정부와 한국 사회는 성소수자들을 어떻게 취급하는가?

내 생각에 한국 정부와 한국 사회는 성소수자의 사회를 지우려고 한다. 미디어에 나오는 게이 커플은 브로맨스로 둔갑하고 레즈비언은 걸 크러쉬로 가려진다. 한국 사회는 게이나 레즈비언이 ‘진짜’ 게이, 레즈비언으로 보이는 걸 원하지 않는다.


한국의 퀴어 커플들은 평생을 부부로 살아도 신혼부부 전세자금 대출 같은 복지혜택을 전혀 받지 못한다. 우리는 동성혼도 할 수 없고 한국엔 생활 동반자법도 없으니까 말이다.


모든 커플이 그들의 성적 지향이나 성별 정체성과 상관없이 평등해지기 위해 무엇이 바뀌어야 하는가?

나는 우리 사회가 다양성을 받아들이기를 바란다. 그러려면 우선 학교와 가정에서 퀴어 프렌들리를 포함한 다양성 교육을 해야 한다. 그리고 다양성을 가르치기 위해 우리에게는 포괄적 차별금지법이 필요하다. 그러면 우리 문화에도 다양성이라는 것이 자연스럽게 자리 잡을 것이다.




국제앰네스티에서 2018년 밸런타인데이를 맞아 캠페인 PRIDE AND PREJUDICE: VALENTINE'S DAY FOR LGBTI ACTIVISTS IN ASIA를 준비했습니다. 아시아 각국 다섯 명의 성소수자를 인터뷰하는 캠페인이었는데요 다섯 명 중에 저도 포함되어 이메일로 질문과 답변을 주고받았습니다. 사실 처음에는 이렇게 큰 캠페인에 쓰일 인터뷰인 줄은 모르고 재미있을 것 같아 인터뷰에 응했는데 이렇게 크게 나온 걸 보니 쑥스러웠습니다. 지인의 가벼운 제안에 오케이 했는데 헤드라인이 코리안 액티비스트 J라서 깜짝 놀랐습니다. 실명을 썼으면 더 부끄러울 뻔했습니다.


제 인터뷰 원문과 다른 네 명의 인터뷰 내용이 궁금하시다면 아래 링크를 클릭해주세요.



앞으로의 연재 계획
'우리 회사에 성소수자가 다닌다' 퀴어인컴퍼니 인터뷰 프로젝트는 2018년 3월 현재 일시중지 상태입니다. 퀴어인컴퍼니를 위해 기꺼이 인터뷰 섭외에 응해주신 분들의 이야기를 2017년 엔진 님 인터뷰를 끝으로 모두 다 발행했기 때문입니다. 2018년은 새로운 인터뷰이들을 모집하는 시기를 가지며 퀴어인컴퍼니 인터뷰 프로젝트를 쉬어가겠습니다. 그래도 프로젝트 진행 후기라던가 지난 인터뷰 내용들을 다시 소개하는 등의 활동은 종종 이어갈 예정이니 꾸준한 관심 부탁드립니다. 퀴어인컴퍼니 블로그에 귀한 발걸음 해주신 여러분께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지금까지 연재된 인터뷰들을 읽어주시고, 인터뷰이로 프로젝트 시즌2에 참가하고 싶으신 퀴어 독자가 계신다면 이메일(queerincompany@gmail.com)이나 QiC 트위터 공식계정(@queerincompany)으로 연락 주시면 고맙겠습니다. 퀴어인컴퍼니 프로젝트에 관심 있는 성소수자라면 누구든 두 팔 벌려 대환영입니다.

퀴어인컴퍼니(Queer in Company, QiC) / 우리 회사에 성소수자가 다닌다

직장인 성소수자 드러내기 프로젝트 매거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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