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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디지털전사 Nov 15. 2023

오늘도 안녕하시죠?- 인간, 동굴 속에서 생각하다.

저번주에 코로나에 걸렸다. 두통이 심하고 몽둥이로 맞은 것처럼 온몸이 쑤시다. 특히 기장 큰 고통은 잠을 들지 못할 정도로 끊임없이 쏟아지는 생각들의 행진이다. 피곤해 침대에 누워 눈을 감아보지만 온갖 생각이 머릿속에서 쉬지 않고 소용돌이치며 정신은 깊은 심연 속에서 피폐해진다.


새벽에 일어나 로뎅의 생각하는 사람처럼 턱을 괴고 존재에 대해 생각해 본다. 공간은 확장되고 시간은 정지된다. 꿈을 꾸고 있는 것인지 아니면 그냥 가위에 눌린 것인지 구분조차 되지 않는 고문의 시간이  이틀 동안 이어졌다. 


며칠간 정신의 감옥에서 헤매다 문득 죽음 후 미지의 시공간에 대한 두려움, 아니 엄밀히 말하면 기대감이 스며들었다. 장자의 꿈에서 처럼 내가 나비가 된 것인지 나비가 인간이 된 것인지 꿈을 깨는 순간 우리는 알 수가 없다. 이건 마치 죽음의 세계와 비슷하다.


고대 이집트와 고대 티베트 불교에 기반한 사후 세계에 관한 책들이 있다. 죽은 자의 여정에는 공통점이 있다. 신의 세계를 향한 영혼의 여행에서 추구해야 할 감각의 지향점이 하늘, 열린 공간으로 향한다는 점이다. 밤하늘의 별이 되기 위해 영혼은 밝은 빛을 향해 뛰어들어야 한다. 장례식에서 염을 한다는 의미는 죽은 자를 바른 길로 인도하기 위한 여행 지침을 알려주는 역할이 된다.

 

아리스토텔레스의 동굴 속 인간은 벽만을 바라보고 있기에 세상의 진실을 알지 못한다. 바깥세상의 빛을 통한 그림자로만 세상을 인식하기에 본질은 항상 가려져 있다. 


나 또한 자기 인식의 굴레에 갇혀 본질을 알지 못한다. 내가 인지할 수 있는 차원의 한계이기도 하다. 우리는 위에서 만화 속 인물을 내려다볼 수 있기에 전체적인 모습을 한눈에 파악할 수 있다. 이차원 세상에 사는 만화 주인공에게는 상대편의 모습은 그저 선의 연결일 뿐이다. 똑똑한 주인공이라면 주변을 돌며 선의 길이를 잰 후에 상대편이 삼각형인지, 사각형인지 간접적으로 알 수 있을 뿐이다. 만화가 그려진 종이를 벗어난 다른 공간은 상상 자체가 불가능하다.


마찬가지로 삼차원 시공간에 살며 동굴의 죄수인 나는 본질을 알 수가 없다. 우리 세상의 본질 중 하나는 전자기력, 인간의 오감으로는 인지하기 불가능한 힘이 주변 공간 전체를 감싸고 있다는 사실이다.  전기를 이용한 마법의 세상을 살고 았지만 본질의 아주 일부만 어렴풋이 알고 있을 뿐이다. 고전 물리학을 넘어 양자 역학까지 아우를 대통일 이론은 아직도 도달하기 어려운 꿈의 영역이다.


결국은 차원의 문제다. 푸엥카레의 법칙을 통해 공간의 열림과 닫힘을 수학적으로 고찰해 보는 것도 결국 본질을 이해하기 위한 몸부림이다. 이것은 마치 만화책 속의 과학자는 자신이 속한 종이 한 장의 질량만 이해할 수 있는데 관측양보다 훨씬 큰 질량, 만화책의 전체 질량이 나온 세상과 같다. 


우리의 우주도 마찬가지로 관측 불가능한 암흑은 어두움이 아니라 미지의 세계가 된다. 현실적으로는 엔트로피의 변화를 이용해 시간을, 중력의 변화를 이용해 공간을 가늠하는 수밖에 없다.

결국 차원의 문제다. 영화 인터스텔라에서 공간을 가로지르는 웜홀은 우주 비행사에게는 단순한 구형으로만 보인다. 블랙홀에 빠진 주인공인 시간을 모두 볼 수 있는 공간은 사실 인공적 공간일 수밖에 없다. 모든 시간이 한 공간에 펼쳐진 고차원 자체를 인식할 수 있는 감각 기관이 없는 인간에게는 블록과 같은 인위적 시공간이 필요하다.


빛이 파장과 입자의 모습을 동시에 가지며 광자 실험에서 관측자의 개입에 따라 달라지는 이유도 사실 차원의 한계에 기인한 것일지도 모른다. 연극 무대에서 공연하는 배우의 앞모습과 뒷모습이 다르게 보이는 것은 관객의 좌석에 따른 차이일 뿐 배우는 역할에 충실하다. 


사건의 지평선 속에서 나만의 차원의 한계를 넘어 빛을 향해 나아가자. 


'새는 알을 깨고 나온다. 알은 곧 세계이다. 태어나려고 하는 자는 하나의 세계를 파괴하지 않으면 안 된다. 그 새는 신을 향해 날아간다. 그 신의 이름은 아프락사스라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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