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까운 공원을 산책하다 흔들의자에 앉아 흔들리는 나뭇잎을 본다. 초록의 알싸한 푸르름이 여름의 향기로 뒤덮인 나무는 더위에 지친 나그네에게 아이스크림처럼 시원한 청량감을 선물하고는 한다.
그러나 여름이 가면 가을이 오듯 시간은 흘러가고 그 푸르던 나뭇잎도 앙상한 가지만 남기고 다 떨어지는 시기가 온다. 현재의 화려함은 다시 돌아오지 않기에 지금 이 순간은 항상 최고로 아름답다.
아우구스티누스는 저서 <고백록>에서 시간이란 딱 세 가지로만 구분된다고 했다. 과거 일의 현재, 현재일의 현재, 미래일의 현재이다. 시간은 마음 안에 존재하고 있을 뿐 그 밖의 다른 곳에서는 그것을 알 수가 없다고 말한다.
활동과 변화는 시간을 통해 인지할 수 있는 속성이기 때문에 그는 창조 이전의 시간이란 없다고 생각했다. 영원을 무한한 시간으로 정의한 플라톤의 관점에서 벗어나 종교적 차원에서 절대 신에 의해 바뀔 수 있는 가변적인 존재로 여겼다.
과학적 이론을 가지고 주장했던 바는 아니었지만 그의 주장은 현대 물리학, 특히 양자역학에서 정의되는 시공간의 상대적 변화에 상통하는 부분이 있다. 우주의 시작이라고 여겨지는 '빅뱅' 이론이 나왔을 때 바티칸에서 환영했다는 이야기에 새삼 고개가 끄덕여진다.
시간의 흐름 속에서 우리는 태어나고 성장하며, 사랑을 하고 삶을 살아간다. 시간이 과거에서 미래로 흘러가는 이유를 물리학은 '엔트로피(무질서도)의 증가'로 설명한다. 우주 만물은 무질서가 증가하는 방향으로 흐르고 시간도 마찬가지다.
생명 역시 태어남과 동시에 죽음이라는 카오스적 무질서를 향해 끊임없이 나아간다. 또 다른 물리학 법칙인 에너지 보존 법칙에 따르면 나의 증가하는 무질서 또한 미래에는 저 우주 어딘가의 블랙홀 속에 저장되거나 아직 규명되지 못한 암흑 물질의 형태로 흡수될지도 모르겠다. 아니면 그저 우주의 복사 파동으로 흩뿌려져 전 우주를 여행한다면 그 또한 멋진 일이다.
서양과 동양의 철학자를 통해 마음먹기에 따라 자신에게 적용되는 시간의 주관적 체감은 변화할 수 있음을 배운다.
공자는 시간의 흐름에 따라 성장하는 내면적 성숙에 관해 자신을 예로 들어 제시하였다. 나이 오십에 스스로 하늘의 뜻을 안다는 지천명(知天命)의 경지에 이르렀다고 하였다. 즉 자신의 운명을 받아들일 수 있는 사람이 되었다는 것이다.
나이가 들어도 어른이 되지 못하고 자신 내면의 어린아이에서 벗어나지 못한 평범한 나에게는 이를 수 없는 경지다. 영화 '벤자민의 시간은 거꾸로 간다'처럼 혹시 나도 퇴행하는 시간을 살아가는 어른 아이가 아닐까 곰곰이 생각해 본다.
세상을 향해 이유 없는 분노가 가득 차 있다면 자신 안의 어린아이가 원인일지도 모른다. 알 수 없는 우울감이 당신을 지배한다면 과거를 돌아보며 문제의 해결책을 찾아라. 마음속 어린아이와 화해할 때 비로소 우리는 어른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