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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디지털전사 Aug 24. 2024

중년의 철학: 인간-차원을 달리다 11

텃밭에서 일하다 개수대에서 더러워진 손을 씻는다. 차가운 물이 닿는 순간 후끈했던 피부는 순식간에 시원해지고 먼지는 씻겨 내려 다시 뽀송해진다. 물의 수소-산소-수소가 결합한 분자 구조(H2O)는 104.5도의 각도로 구부러져 있는 불균형 구조다. 이로 인해 전체적으로는 전기적 중성을 띠지만 부분적으로 강한 극성이 생겨 오염물을 제거하는 원리다.


생각해 보니 인간이 늙는 이유도 우리가 사는 시공간의 기하학적 불균형에 기인한 것이 아닐까 싶다. 시간이 한 방향으로만 흘러 늙음이라는 형태로 무질서도가 증가한다는 것은 시공간이 요동치며 구부러져 있음을 의미한다. 


머릿속에서는 마이너스 기호만 추가해 시간을 미래에서 과거로 흘러가게 할 수 있지만 현실에서는 미시적 양자 단위에서만 극악의 확률로 가능할 뿐이다. 아인슈타인조차도 시간이 과거에서 미래로 흘러가는 이유는 모든 것이 한꺼번에 일어나지 않기 위해서라며 우문현답(愚問賢答)을 했다. 우리는 진정한 이 시계의 실체를 전혀 모른다.


XI. 성리학()과 실체적 시공간의 이상적(확률적) 확장 


조상들도 세상의 실체에 대해 많은 고민을 하며 본질을 알아보고자 했다. 조선시대의 성리학은 사대부를 지배하는 관념이자 사상으로 아직도 영향을 끼치고 있다. 성리학의 핵심은 세상(物)과 마음(心)을 모두 이()와 기()의 두 가지로 규정하는 것이다. 이기론에서 이는 물리적 법칙이나 내부 원리를 의미하며 기는 구성 물질과 에너지를 뜻한다고 볼 수 있다.


조선의 유명한 학자인 이이와 이황의 이가 먼저냐 기가 먼저냐는 당시 가장 중요한 학문적 논쟁 중 하나로 관념론과 유물론의 관점에서 해석해 볼 수도 있다. 닭이 먼저냐 달걀이 먼저냐와 비슷해 보이긴 하지만 수백 년에 걸쳐 당파까지 나눠 싸웠으니 뭐.. 참 중요했던 것으로 인정한다.


이기론을 정리하면 태극에서 음양이 나오고 음양은 오행을 낳아 세상은 음양오행에 따라 움직인다는 것이다. 음양오행 이론은 주역에서 조금 더 구체화되어 미래를 예측하는 데까지 확장이 되었다. 예전 글에서 사주팔자에 주역의 이론이 사용되는 내용을 써 본 적이 있다...

이상적으로는 음양이 조화를 이룬 세상은 안정적이고 변화 역시 연속적인 순환이 반복되는 구조가 되어야 한다. 그러나 개인적으로는 음양 또한 한쪽으로 치우쳐 있어 미래의 사건은 불확실성이 가득한 확률적 세상에 놓인 것처럼 보인다. 이것은 양자의 요동으로 우주가 탄생했다는 현대 물리학의 가설처럼 음양 또한 우연한 작은 차이로 인해 한쪽으로 흐트러짐이 강화되는 상태로도 생각할 수 있다.


이런 상황에서는 미래는 정해지지 않고 불확실한 확률의 영역에서 중첩된다. 슈뢰딩거의 고양이처럼 살아있을 수도 죽어 있는지도 모를 중첩은 우리가 사는 세상의 실체적 시공간과 이상적(확률적) 시공간을 구분할 필요성을 만들어 낸다.


인간에게 가장 궁금한 것은 자신의 미래에 관한 것이다. 


빛의 속도에 한계가 정해진 이유는 광속에 도달하는 순간 시간이 흐르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나 시간이 흐르지 않는다고 해서 광속으로 이동하는 우주선 안에 있는 우주인의 시간이 흐르지 않는다는 의미는 아니다. 다만 외부 관측자에게 빛이 도달하는 순간이 무한으로 변하기에 상대적인 시간의 흐름이 정지한다는 이야기다. 


지구에서 공식적으로 가장 가까운 블랙홀은 2022년 발견된 가이아 BH1으로 1560광년(1광년 = 약 9조 4600억㎞) 떨어져 있다. 만약 가이아 블랙홀에 사는 외계인이 지구에 사는 나를 관측할 수 있다면 나는 그들에게 영원한 삶을 사는 성리학에서 말하는 태극의 존재일 수도 있겠다. 누군가에는 내가 바로 신이 될 수도 있다니 요즘 급격히 자신감 상실 중인 나로서는 감개무량할 뿐이다.


시간은 상대적이기에 미래도 상대적이다. 입자 가속기에서 나온 파티클의 이동시간은 광속에 근접하기 때문에 매우 짧은 순간에만 존재했다 소멸하지만 그 찰나에도 관측 가능한 이유는 관측자와의 상대적 시간이 다르기 때문이다. 광속의 99%로 이동하면 시간은 86%가량 느려지기에 입자의 실체적 생존 시간과 관측자의 확률적 관측 시간은 달라질 것 같다.


미래는 상대적이기에 인간의 노력은 그 자체로 의미가 있다. 운명은 정해져 있을지도 모르지만 무수히 다양한 확률 분포의 곡선 어딘가에 위치해 있다. 외부 관측이 이루어지는 순간 그 어디에 미래가 고정되기에 조금이나마 다른 미래를 향한 노력은 헛되지 않을 것이다. 


노력하는 인간에게 의미를 부여하는 찬란한 빛으로 물든 아름다운 우주에 살고 있음에 감사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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