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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바셀린 Jan 25. 2020

Adapted

2001

 저 멀리 알람 소리가 들린다. 날 선 물방울 소리 같기도 한 것이 시퍼런 새벽을 잘도 가른다. 손을 휘저어 폰을 잡는다. 화면의 밝기를 주변 조도에 맞게 자동변환이 되도록 조정을 해놨지만 어둠 속에서는 무용지물. 한쪽 눈만 간신히 뜨고 중단 버튼을 누른다. 눈이 시리다. 초점이 맞지 않는다. 조심스레 다른 눈을 뜬다. 겹치던 시선이 삐걱거리며 맞춰진다. 이제야 보인다. 지금의 시간과 오늘의 날짜.

 환자가 새로 올 예정이었다. 병원 생활을 몇 달동 안이나 했었던, 그래서 생활패턴 자체가 병원 사이클에 맞춰져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 환자로서 처음 겪는 의료행위일지라도 이해의 역치가 어느 정도 높을 것이라 예상했다. 하지만 그 기대를 가볍게 엎었더랬다. 신체 보호대 없이는 단 5초도 마음을 놓아서는 안 됐다. 조금 안정된 상태라고 여겨질 때쯤 이곳이 어딘지 어떤 목적으로 오게 되었는지 물어보면 격한 반응이었지만 어쨌든 알고 있다고 했다. 그러고 돌아서면 또 침대가 부서질 듯 온몸을 뒤틀고 다리를 공중으로 치켜들고 땀을 가습기처럼 쏟아내었다. 마치 의료진과 기싸움을 하듯-어쩔 수 없이 진정제가 투여되고 다시 잠들었다가 또 깨어나며 같은 일이 반복되고 있었다. 그럴 때마다 간호사들은 지금이 몇 시인지, 이곳에 왜 입원해있는지, 왜 신체 보호대를 할 수밖에 없는지 등을 끊임없이 설명을 하며 치료에 대해 협조를 구했다. 환자와 의료진, 누구도 포기하지 않았다. 팽팽했다.
 사흘 정도가 지난 아침, 환자의 눈빛이 바뀌었다. 세상 모든 것이 주적 인양 쏘아대던 붉은 동공 대신 약간의 체념이 섞인 침착함이 물씬 묻어나고 있었다. 투여되고 있는 진정제의 양이 줄어든 것은 아니었다. 천천히 신체 보호대를 풀어 보았다. 환자는 가지런히 두 손을 모았다. 눈을 천천히 감았다가 떴다. 마침내 안착의 순간이었다.

 담당의들이 바뀌었다. 꼭 한 달마다 있는 일이다. 봤던 얼굴도 있고 물론 초면도 있다. 큰 줄기야 같겠지만 다들 스타일이 미묘하게 다르다. 그것이 담당 간호사와 결이 같으면 별 문제가 없다. 하지만 각자 기질도 다를뿐더러 생각하는 우선순위가 전혀 맞지 않을 경우도 많다. 그럴 때마다 공기는 다시 단단해진다. 서로 불만은 있지만 대놓고 드러내지는 않는다. 중간자 역할을 자처하는 사람은 없다. 이럴 때 해결책은 사실 환자 그 자체와 쌓여가는 시간이다. 환자의 상태가 나빠지면 나빠지는 대로 서로 마음이 급해서 어떻게든 삐걱대며 해낸다. 어쨌든 살려야 하니까. 둘쑥날쑥 날이 선 단어들이 오고 가고 서로 기꺼이 닳게 된다. 그렇게 인정하고 싶지는 않지만 미운 정 같은 것이 생긴달까. 다음에 비슷한 의견 충돌이 있을 때면 확실히 그 전의 같은 상황보다는 무언가 수월한 느낌이 있다. 반대로 환자가 좋아지면 그저 눈 녹듯 앙금이 사라진다. 아니, 사라지는 건 아니고 못 본 척한다는 게 맞다. 좋은 게 좋은 거다, 라는 느낌으로. 어른인 척 구렁이처럼 어물쩍 넘어가는 것이다. 다음에 부딪힐 일은 그때의 우리가 알아서 해결할 예정이다. 그렇게 시간이 지나며 서로가 서로에게 적응을 조금씩 해낸다. 그러고 한 달을 채우고 담당의들은 다시 떠난다. 또 다른 이가 오고, 새로운 환자가 등장한다. 우리는 적응한다. 안착한다. 또 반복한다.

 플로팅을 거쳐 이곳에 정식발령을 받은 중견(!) 간호사들, 타 부서로 옮긴, 그리고 옮겨갈 예정인 개인적으로 아끼던 간호사들, 다른 중환자실에서 옮겨온 유엠님, 당장 3월이면 새로 입사할 신규 간호사들, 그리고 담당의들, 환자들.
 연속적이다. 물처럼 흐른다. 뿌리를 내린다거나 화석처럼 박히는 일은 없다. 환자는 죽거나 살아난다. 의사는 돌아다닌다. 조무원은 떠돈다. 간호사는 버티거나 떠나거나 옮긴다. 그렇게 이들 모두가 중환자실에 거치는 중이다. 모두가 모두에게 날마다 적응 중이다. 그로 인해 창출되는 폭포 같은 공기, 혹은 압사할 것 같은 적막. 드물게 따뜻한 하루. 무엇인가 놓치고 있는 것 같은데 다음 날이면 새까맣게 잊는다. 어느 날은 잊는다는 사실조차 인지하지 못한다. 그 상태로 출근한다. 환자가 놀랄 만큼 좋아졌단다. 그 간호사가 이만큼 늘었단다. 저 의사가 간 밤에 훌륭한 처치를 해내었단다. 우리는 웃는다. 정확한 이유는 모르겠지만 한 번 더 웃는다. 해학에 가까운 이 순간이 적응의 최종장이 아닐까 싶다.

 샤워 중 다시 알람이 울리지 않도록 완전히 기능을 끈다. 비틀대며 뜨거운 물을 틀고 온 몸을 적신다. 조금씩 정신이 깨어나는 느낌. 동시에 카페인이 절실하다. 진하게 내려서 남은 정신머리를 마저 일깨워야겠다. 약간은 기계적이고 이제는 자연스러운 일상. 처음 3교대가 얼마나 힘들었는지 상상도 안 된다. 지금은 사람 많은 시간에 외출하는 것 자체가 스트레스로 다가올 지경으로 익숙해져 버렸다. 머리를 바짝 말리고 옷매무새를 고친다. 그래, 적어도 정장 같은 것들을 입고 출근할 필요는 없는 직업이다. 모처럼 새 로퍼를 신어야겠다. 발뒤꿈치가 다치지 않도록 살살 길을 들여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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