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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바셀린 Jun 16. 2020

꿈의 대화

2006

“아직 젊습니다. 희망은 있을 것이니 먼 길이라도 한 번 해보는 것이 어떨까요. 이리도 적극적으로 치료를 받고 싶어 하시는 환자의 의지와 가족분들의 응원도 큰 도움이 되겠지요. 이번 치료, 진행해보죠.”
상상의 대화를 해봅니다. 아마도 중환자실에 내려오기 전까지 이런 문장들이 오고 갔을 것입니다. 그렇지만 당신처럼 거의 뇌사 상태로 내려오는 경우가 드물지만 이따금 있습니다. 그저 그 사실 자체가 모두에게 불행이었던 것이 슬플 뿐입니다. 가족들은 결코 믿을 수 없어서 합니다. 나는 늘 안쓰럽습니다.

그런 당신은 커다란 몸을 매트리스에 온전히 맡기고 있습니다. 조심스레 말을 걸어보지만 당연히 반응은 있을 리가 없죠. 인공호흡기가 숨을 쉬어주는 대로 횡격막이 움직일 뿐입니다. 동공은 활짝 열렸고 어떤 자극에도 당신은 반응을 해주지 않습니다. 대신 뇌사 환자의 특유의 역한 냄새가 입 안에서 풍겨져 나옵니다. 열심히 구강 간호를 해도 그때뿐인 그 냄새는 역설적으로 그가 아직은 여기 있다는 작은 신호처럼 느껴집니다. 하지만 좋은 냄새는 아니죠.
이렇게 의학적으로 사망했다고 선고받은 당신에게 해줄 수 있는 것이 어떤 것이 있을까요. 일단 살아있다고 일컬을 수 있을까요. 비록 뇌가 본래의 기능을 잃어버렸다고는 하지만 분명히 심장은 뛰고 있고 피부는 따뜻합니다. 그렇지만 인공호흡기가 없이는 단 한 숨도 내뱉지 못합니다. 어떠한 미동도 없습니다. 당신, 살아있는 것이 맞습니까.

베개 커버가 구겨져 있습니다. 얼룩도 좀 보입니다. 아직 온기가 가시지 않은 새 커버로 교체합니다. 탁탁 펴서 주름이 없게 합니다. 종아리 뒤쪽으로 눌린 자국을 아까 봤거든요. 엉덩이 사이가 습합니다. 기저귀를 치우고 피부를 건조하게 해주는 크림을 바릅니다. 그러고 나서 사타구니 사이를 살펴보았는데 아, 이럴 수가. 진균 감염으로 여겨지는 피부병변이 회음부 전체에 진한 갈색으로 번져있습니다. 허연 곰팡이 같은 것이 군데군데 자리를 잡고 있습니다. 이 병변은 간호사로서 환자의 상태를 깨끗하게 한다고 해서 나아지는 성질의 것이 아닙니다. 항진균 기능이 있는 연고를 적어도 일주일은 도포하고 건조하게 해 주어야 떨칠 수 있습니다.
문제가 되는 것은 당신의 상태가 POLST에 접어들었다는 것입니다. 에이라인은 어제 제거했습니다. 바이탈 사인도 8시간마다 한 번, 그 흔한 엑스레이도 검체 채취할 오더도 없습니다. 보호자의 동의가 없어 오직 기관 발관만 하지 않고 인공호흡기만 치렁치렁 달고 있다는 것입니다. 투약되는 것도 위궤양을 예방하는 주사제와 영양제 정도입니다. 이런 상태의 환자에게서 발생한 피부병변은 어찌해야 할까요. 의미가 없다고 해도 사실 틀린 말은 아닙니다. 그렇다고 해서 2시간마다 자세 변경을 하지 않고 있는 것도 아니고 그 와중에 욕창도 생기지 말라고 보습제도 발라 가며 당신의 육중한 몸을 이리저리 옮기고 있습니다. 그렇다고 큰 의미가 있을 리가 없습니다. 당신은 이미 의학적으로 사망한 상태니까요.

늘 고민을 하게 됩니다. 죽음의 의미와 그 경계. 내가 생각하는 죽음과 당신의 가족들이 느끼는 그것의 차이. 중환자실이라는 상황에서의 달라지는 그 크기. 경계의 범주. 연명의료 중단이라는 법의 언저리. 모든 것이 뒤범벅되어 있습니다. 엉킨 실타래 같은 테두리 안에서 나는 다만 이렇게 생각하기로 합니다. 당신의 가족들이 당신의 죽음을 받아들이기 전까지는 존엄성을 지켜주겠다고, 다른 중환자들처럼 적극적인 케어는 어렵겠지만 이 방 어딘가에서 당신의 영혼이 당신과 나를 바라보고 있다고 상상하기로 합니다. 그렇게라도 가정하지 않으면 나 또한 의미를 부여하기 어렵습니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  것, 당신은 아직 이렇게 따뜻하니까요. 적어도 완전히 떠나지 않았다 라고 생각해야 내 마음이 편하니까요. 당신의 이름을 무심코 불러 봅니다. 당연히 대답은 없습니다.

“여기 일단은 아무것도 안 하기로는 했는데 그래도 이 부분은 연고라도 도포하는 게 좋지 않을까요.”
“오, 그래요? 한 번 봅시다. 아... 그렇네요. 제가 처방 넣을게요.”
“하루에 두 번으로 오더 부탁드려요.”
“네, 그럴게요.”
“아, 그리고요. 고마워요. 선생님.”
“에이, 뭘요.”

그게 이틀 전이었고 지금은 당신의 심박동이 0을 가리키며 알람을 울려대고 있습니다. 드디어 당신의 가족들이 당신을 받아들였다고 추측했습니다. 하지만 그것은 사실이 아니었고 당신의 가족들이 끝내 인공기도 발관을 거부한 상태에서 갑자기 심장이 멎은 것이었습니다. 아무런 전조도 없이 심박동이 툭툭 떨어지더니 멈춰버린 것이었습니다. 담당 간호사는 물론 당직의도 놀랐습니다. 젊디 젊은 당신의 죽음을 결정해야만 하는 엄청난 짐을 가족들에게 지우기 싫었기 때문이었을까요. 그래서 당신은 스위치처럼 당신의 인생을 셧다운한 것일지도 모릅니다. 결과적으로는 혹시나 가질 수 있는 가족들의 죄책감 정도는 덜어주고 싶었나 봅니다. 그렇게 깨끗한 환의로 갈아 입고 하얀 천을 덮은 채 당신은 중환자실을 떠났습니다.

당신은 오전 다섯 시 오십 분에 사망했습니다. 당신의 투약 기록지에는 향진균제 연고가 오전 네 시에 야무지게 수행되어 있습니다. 나는 후회가 없습니다. 당신 덕에 무엇인가 더 단단해진 것 같습니다. 내가 하는 행동에 대한 확신이 조금 더 생겼습니다. 조심스레 전해봅니다. 고맙습니다. 안녕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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