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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바셀린 Jan 22. 2021

Inside D

2101

 과연 이 눈 앞에 있는 것만으로 나를 보호할 수 있는 것인가-라는 의구심은 어쩌면 당연한 것이다. 뉴스에서만 보다가 실제로 만져보니 그리 두껍지도 않을뿐더러 그렇다고 해서 2중으로 입는 구조도 아니다. 종이 같은 재질이지만 실은 튼튼한 플라스틱인 타이벡 소재인가 싶기도 하고. 형태는 앞쪽에 지퍼가 달린 점프 슈트라서 착용하기 전에 반드시 화장실을 다녀와야 할 것이다. 

 포도맛 소다 같은 속장갑을 낀다. 너무 타이트하면 일하는 내내 저린 감이 있어 틈나는 대로 주물러야 하는 수도 있다. 또 그렇다고 여유 있는 사이즈를 택하면 조금 후에 훨씬 두꺼운 겉장갑을 착용할 때 겉돌거나 아예 들어가지 않는다. 적당한 것. 무조건 적당한 것이 정답이다. 마찬가지로 점프 슈트도 적당한 것을 입고 싶지만 실은 일률적인 XL 사이즈뿐이다. 180cm가 넘는 간호사도 160cm이 안 되는 다른 간호사도 모두 한 사이즈. 덕분에 커다란 사람은 주저앉을 경우 엉덩이 근처의 재봉선이 터져 나가거나 반대로 거의 허연 목화솜 이불을 뒤집어쓰고 일하는 것처럼 보이는 자그마한 사람도 있다. 실제로 상체에 힘을 주다 등판이 잘 익은 새우처럼 터진 경우도 있었고, 작은 체구인 몇몇 간호사들의 경우 슈트 안에 공간이 남아돌아 PAPR에 의해 일어난 양압에 온몸이 마시멜로우처럼 빵빵하게 부푼 채 일하곤 한다. 

 신발을 감싸는 커버를 신고 PAPR을 켜본다. 클리넬로 소독되어 그 특유의 냄새가 배어 있는 일종의 환풍기다. MAX 레벨까지 올려도 사실 그 세기를 체감하기는 힘들다. 하지만 업무를 끝내고 탈의할 때 잠시 PAPR을 끄고 분리해야만 하는데 양압이 사라지는 그 순간, 위력을 느낄 수 있다. 그야말로 숨이 턱 막히는 몇 초. 질식하는 느낌까지 들어 없던 폐소 공포증까지 생기는 줄 알았다. 다행히 지금은 많이 나아졌지만. 

이어 주름관을 연결하고 끝에 슈트와 같은 소재로 만들어진 헬멧도 잇는다. 이제 머리에 써야 하는데 그전에 마스크를 고정시켜야 한다. 안 그러면 착용 시 혹은 업무 중 마스크가 벗겨지는 불상사가 있다. 그러면 하던 업무를 즉시 중단하고 탈의실로 가야 한다. 그 사이 담당 환자는 다른 간호사에게 맡겨야 한다. 민폐의 현장이다. 흔한 테이프로 마스크의 콧잔등을 고정했다가 나중에 떼면서 살갗이 벗겨지는 듯한 통증이 있어 그 경험 이후 실리콘 제재의 테이프만 사용 중이다. 헬멧 또한 조이개를 적당히 조절해야 한다. 자칫 4시간 동안 두통에 시달릴 수 있다. 너무 느슨하면 급하게 몸을 돌릴 때 헬멧이 헛돌아 반 박자 늦게 돌아가는 코미디가 벌어진다. 어깨끈을 매고 벨트를 끼운다. 앞치마를 헬멧이 들어갈 만큼 끈을 찢고 다시 고정한다. 허리를 묶는 끈을 등 뒤에 맨 PAPR 위로 묶어야 하는데 혼자 하기엔 조금 어렵다. 못하는 것은 아닌데 성가시다고 할까. 그래서 보통은 누군가 옆에서 서포트를 하며 Level D를 완성한다. 

 저벅저벅. 내가 걷는 소리가 보호구 안 쪽으로 울린다. 커다란 비닐봉지 안에 부유하는 이 느낌. 처음에는 얼마나 어색했는지 모르겠다. 커다랗게 목소리를 내지 않으면 서로 의사소통도 어렵다. 윙-하는 PAPR이 작동하는 소리가 내내 귓가에 들린다. 저벅-윙, 저벅-위잉. 전실을 거쳐 오염 구역 안으로 진입한다. 이곳은 Level D가 아니면 출입 자체가 금지되어 있다. 경계 아닌 경계가 얇은 막처럼 서려있는 셈이다. 간호사 1명당 배정된 환자는 2명. COVID 19에 의해 심각하게 망가진 폐를 가진 이 사람들. 산소 요구도는 평균 70%로 시작한다. 국가에서 병상 수를 관리하는 시스템이라 무엇 하나 허투루 돌아가는 법이 없다. 거의 모든 면에서 폐쇄적인 이 곳은 CPCR 같은 이벤트가 터져도 일단은 간호사들끼리 해결하고 있어야만 한다. 외부에서 도움의 손길이 오기까지, 그 인력도 오염 구역에 출입을 하려면 Level D를 착용해야 하므로 최소 10분이 걸린다. 그 공백을 메우고 있어야 한다. 어떻게든 해낸다. 여태 그랬다.


 사실 그보다도 가장 먼저 맞닥뜨리는 문제는 어떠한 행위를 하든 둔하게 움직일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누가 불러도 잘 안 들리는 건 당연하고 레드 알람도 음압병실 문이 닫히면 정말 안 들린다. 외부에서 모니터링을 하며 '아산톡'으로 알려주는 경우가 훨씬 많고 그 편히 효율적이다. 그럴 때면 부랴부랴 병실 안으로 들어가긴 하지만 여전히 걸음은 더디다. 단단히 고정했던 신발 커버는 줄줄 흘러 간신히 형태만 유지하고 있어서 급한 걸음을 옮길 때면 스스로 신발 커버를 밞아 넘어질 뻔했던 순간이 한두 번이 아니다. 그리고 그러한 둔함의 절정은 IV 카테터를 삽입하거나 말초혈액배양검사 등의 침습적인 행위를 할 때이다. 마치 정확한 혈 자리를 골라 침을 놓는 의녀 장금이처럼 손가락 끝의 둔탁한 감각으로 기어코 찾아내고 또 찌른다. 이제 어느 정도 요령은 생겼지만 일반적인 경우와는 많이 다른 느낌인 것은 분명하다. 

억지로 닫힌 감각 때문일까. 오염 구역에서 업무를 수행할 때면 매사 다들 예민할 수밖에 없다. 조금만 일이 틀어져도 짜증스럽고 답답하다. 그 시간만큼은 마음에 드는 구석이 단 하나도 없다고 생각된다. 무슨 부귀영화를 누리겠다고 내가 지금 이런 걸 뒤집어쓰고 이런 고생을 하고 앉았는가. 그러다가도 COVID 19 확진 이후 사회와 격리된 채 의료진에게 완전히 의존하고 있는 환자들을 보며 다시금 마음을 다잡는다. 이런 식으로 4시간 동안 오로지 혼자 냉탕과 온탕을 얼마나 오가는지 아는 사람은 안다. 가까스로 탈의하고 나오면 모든 정력을 쏟았다는 확신이 스스로도 느껴진다. 다만 그것이 ‘보람’이나 ‘사명감’이라는 감정보다는 ‘소진’에 가까워서 조금 슬프다. 

 우주복 같은 보호구 때문에 조금만 움직여도 땀투성이가 되는 반면 끊임없이 돌아가는 PAPR 때문에 안면부는 엄청나게 건조하다. 비강은 바짝 마르고 입안 또한 가뭄이며 입술은 사막이다. 피부는 찢어질 것 같고 눈알도 빡빡하기 이를 데 없다. 퇴실 30분 전엔 정말 차가운 물 한 잔 생각이 간절하다. 간단하게 인계를 주고받고 뒤도 안 돌아보며 탈의실로 향한다. 마지막 관문이다. 

앞치마를 제거하고 장갑을 벗고 점프 슈트에서 빠져나온다, 흰 번데기에서 녹색 나비로 변태 하듯 하나하나 허물을 벗어내는 느낌이다. 헬멧까지 벗고 나면 클리넬 냄새가 진동하는 탈의실 공기가 달콤하다. 하지만 몸은 끈적하고 얼굴은 바삭하다. 머리는 떡이 져있고 몇몇 간호사들의 눈썹은 사라져 있다. 아름답지는 않아도 멋있긴 하다. 그래도 그저 서로 못 본 척, 자신들의 땀으로 오염된 몸뚱이를 세척하러 샤워실로 향한다. 길지도 않은 시간에 어느새 일상이 되어 있다.


 온갖 부서에서 모두가, 그리고 모든 것이 모였다. 치약 끄트머리를 쥐어짜듯 각출한 인력, 3일 만에 완성된 고도 격리구역, 응급환자에게 수혈하듯 여기저기서 급하게 차용한 의료기기들, 날마다 모자라서 구걸하듯 얻어온 각종 소모품들. 이토록 급하게 꾸려진 병동은 이래 봬도 중환자실 전체의 도움을 등에 업은 놀라운 추진력과 고마움의 역사인 셈이다. 지금 당장은 체감되지는 않아도 훗날 돌아보았을 때 모두에게 값진 경험일 것이라고 조심스레 스스로를 다독이고 싶다. 적어도 비슷한 상황이 언젠가 터져버렸을 때 그에 대한 의연함은 어느 정도 학습되었으리라 믿는다. 시스템이 어떻게든 받쳐준다 하더라도 정작 그 안에서 실질적으로 운용하는 사람은 마음부터 단단히 갖추어야 하니까.  

 지금도 어떤 것은 넘쳐나고 어떤 것은 채울수록 모자라다. 당연히 말도 많고 탈도 많다. 비록 완벽하지 않더라도 최선을 다해야 한다. 그것이 이곳에 어울리는 간호가 아닐까 싶다. 아무도 알아주지 않아도 우리는 안다. 안 해 본 건 쉬워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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