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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미성 기자 Apr 06. 2017

60일간의 특검 취재기

대전·세종·충남 기자협회보에 올린 글

시작은 그 유명한 '최순실' 얼굴 한번 보자는 것이었다. 대한민국을 좌지우지했던 그들의 얼굴을 보고 싶었다. 그리고 그들의 결말을 가장 가까이에서 지켜보고 싶었다. 그런데도 쉽지 않은 선택이었다. '잘할 수 있을까'란 부담감이 어깨를 짓눌렀다. 지금 내 자리에서도 아직 헤맬 뿐인데, 파견 가서 짐만 되진 않을까 걱정이 앞섰다. 그때 동기가 한 선배에게 받았다는 문구를 보고선 마음을 바꿨다. "너무 많은 생각은 두려움이 되는 거야. 너무 많은 준비와 걱정은 널 겁쟁이로 만드는 거야. 한 번만 깊게 그리고는 그냥 널 믿어" 그렇게 특검팀 파견을 시작됐다.


특검팀의 아침은 '단독'의 향연이었다. 매일같이 쏟아지는 20개의 단독을 따라가기 벅찼다. 하지만 좌절할 틈도 없이 옥석을 가려야 했다. 사실과 과장, 오보를 가리는 일이 나의 첫 임무였다. 흐름이 잡히기 시작했다. 블랙리스트 사건, 정유라 이대 입시·학사 비리, 삼성 등 기업의 뇌물죄, 비선 의료 비리 등. 꼭지를 나눠 공부하는 데만 오랜 시간을 투자해야 했지만, 노트에 써가며 각 사건의 핵심과 의혹을 정리했다.


피의자들은 호송차를 타고 특검 사무실에 내린 뒤 엘리베이터를 타고 조사실로 향한다. 그들에게 따라붙어 멘트를 받는 것도 내 역할이었다. 오랜 시간밖에 서서 그들을 기다려야 했기 때문에 핫팩은 필수였다. 함께 기다리던 기자들과 수다도 떨고 핫팩도 나누며 동지애(?)를 느낄 수 있는 시간이기도 했다. 피의자마다 다양한 스타일을 보여 구분하는 것은 또 하나의 재미였다. 고고한 학처럼 걸어가며 준비된 답변만 하는 스타일부터 마치 달리기라도 하는 것처럼 도망가듯 엘리베이터를 타는 스타일도 있었다. 잊을 수 없는 장면은 단연 "더 이상 민주주의 특검이 아닙니다"라며 억울함을 호소하던 최 씨를 목격한 것이 아닐까 싶다. 최 씨의 멘트를 따기 위해 따라붙었다가 두 눈이 정면으로 마주쳤는데 날 보며 씩 웃던 최 씨의 얼굴도 잊을 순 없을 것 같다.



특검 사무실에는 하루에도 몇 번씩 피의자와 참고인이 왔다. 그들이 조사실로 향하는 길까지 질문을 던지다 보니 내 얼굴이 TV 생중계에 곧잘 잡히곤 했다. 추운 겨울날 파란 패딩을 주로 입었는데, 지인들은 "왜 맨날 파란 패딩만 입니", "패딩 하나 사줄까"라며 측은해했다. 급히 떠나느라 두꺼운 패딩을 하나밖에 못 가져갔다는 점을 알아줬으면 한다(?)


한 달이 넘어가며 재미를 찾기 시작했다. 법조 기사를 처음 쓰는 나로서는 취재원과의 통화에서 '행간'을 읽는 일이 어려웠다. 취재원은 "아시잖아요?"라고 말했지만, 난 알지 못했다. 당연히 취재원에게 소스를 더 끌어낼 재간 따윈 없었다. 선배들께 조언을 구하기 시작했다. 풀워딩에서 행간을 읽는 연습을 했다. 조금씩 배우며, 흐름과 행간을 읽은 재미를 찾기 시작했다.


길고도 짧은 두 달간의 파견을 마치고 돌아오는 길. 너무나 힘든 두 달이었지만, 결론적으로 특검팀 파견은 옳은 선택이었다. 기자 인생에 절대 경험할 수 없는 시간을 보내고 돌아왔기 때문이다. 한 가지 바람이 있다면 돌아온 뒤 한 뼘이라도 성장한 나를 발견했으면 하는 것이었다. 그 순간 대전에서 기다리고 계실 선배들과 혼자 고생하고 계실 캡이 떠올랐다. 고향으로 내려오는 기분이 이런 것일까. 밤 기차를 타고 대전으로 내려오며 혼자서 옅은 미소를 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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