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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미성 기자 Oct 07. 2017

황금연휴의 책, '배를 엮다'

사전을 만드는 사람들의 콧등이 시큰해지는 감동 스토리

사전에 대한 책을 읽었다. 정확히 말하면 사전을 만드는 출판사 사람들의 스펙터클 고군분투 스토리다. 단숨에 읽어버렸다. 참 재밌고 감동스러운 좋은 소설이었다. 


사전에 대한 고찰 따윈 없었으니 사전을 만드는 사람들에 대한 생각조차 없었다. 하지만 그런 내게도 이 책은 많은 울림을 주었다. 


단순히 사전을 향한 그들의 열정뿐만 아니라 '말'의 힘과 '글'의 힘에 대해서. 그리고 글(기사)을 쓸 때도 조금 더 신중을 기해야 한다는 것을.  


"뭔가를 만들어 내기 위해서는 말이 필요하다. 기시베는 문득 먼 옛날 생물이 탄생하기 전에 지구를 덮었다고 하는 바다를 상상했다. 혼돈스럽고, 그저 꿈틀거리기만 할 뿐이었던 농후한 액체를. 사람 속에도 같은 바다가 있다. 거기에 말이라는 낙뢰가 떨어져 비로소 모든 것은 생겨난다. 사랑도, 마음도, 말에 의해 만들어져 어두운 바다에서 떠오른다."


겐부쇼보 사전편집부에서 이들이 긴 세월 우여곡절을 겪으며 만든 국어사전의 이름은 '대도해(大渡海)'다. 사전은 말의 바다를 건너는 배이므로 바다를 건너는 데 어울리는 배를 엮자는 의미에서 그렇게 지었다고 한다. 


이들의 사전에 대한 열정은 한 단어 속 용례를 만드는 것부터 각 단어에 대한 이해가 깊은 전문가들에게 집필을 부탁하는 대외 활동, 사전에 가장 적합한 용지를 만드는 것까지 속도감 있게 전개된다. 


특히 수차례에 걸쳐 사전에 가장 적합한(흔히 '손맛'이라 표현하는) 종이 개발에 성공하는 장면에선 나도 모르게 울컥하기도 했다. 



소설 속 사전편집부 사람들은 10년이 넘는 기간 동안 사전을 만든다. 자금이 부족해서, 사람을 빼가서, 돈이 안 돼서. 온갖 이유로 출판사의 사전은 천덕꾸러기 같은 존재로 취급됐지만, 드디어 완성돼 세상의 빛을 본다. 그렇다면 조금 더 풍족하게 사전을 만들기 위해 공공기관에서 주도해서 사전을 편찬하면 어떨까? 


"외국에서는 자국어 사전을 국왕의 칙령으로 설립한 대학이나 시대의 권력자가 주도하여 편찬하는 일이 많습니다. 즉 편찬에 공금이 투입되는 거죠."


이에 대해 작가는 새로운 관점을 제시했다. 사전에 공금이 투입돼선 안 되고, 민간 출판사가, 일반인이 만들어야 하는 이유를 말이다. 


"공금이 투입되면 내용에 간섭할 가능성이 없다고 할 수 없겠지요. 또 국가의 위신을 걸기 때문에 살아 있는 생각을 전하는 도구로서가 아니라 권위와 지배의 도구로서 말을 이용할 우려도 있습니다."


"말이란, 말을 다루는 사전이란, 개인과 권력, 내적 자유와 공적 지배의 틈새라는 항상 위험한 장소에 존재하는 것이죠."


"그러니까 설령 자금이 쪼들리더라도 국가가 아닌 출판사가, 일반인인 당신이나 내가, 꾸준히 사전을 만들어 온 현 상황에 긍지를 가집시다."


이 책은 입사한 지 4개월이 지나 수습을 뗄 무렵 까마득한 선배가 내게 준 선물이었다. 선배는 내게 책과 함께 짧은 메모를 남겼는데 내용은 이랬다. 


글, 문장, 단어를 써내려 감에 열정을!

당시 짧은 메모만 받아봤을 땐 그 의미가 정확히 와 닿지 않았다. 내 기사가 나만의 단독 바이라인을 달고 독자에게 내보내 진지 얼마 안 됐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 책을 읽고, 하나의 기사로 독자에게 다양한 피드백을 받게 된 이 순간. 짧은 메모는 결코 짧지 않은 울림을 줬다. 


기사에서 한 단어, 한 문장에 따라 의미가 달라지면 팩트가 달라지기 때문이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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