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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유의 친구는 어디로 사라졌을까?

인터넷이나 방송에서 왕따에 대한 뉴스가 방영될 때마다 나는 철렁하고 마음이 내려앉곤 한다. 사회성이 떨어진다는 말은 매년 선생님께 듣고 있는 말인데.... 중학교에 올라가고 나니 내가 아이의 사회성을 위해 친구를 만들어 줄 수 없는 현실이 더욱 다가온다. 왜 울 아이는 항상 집에 혼자만 있을까? 왜 우리 아이는 친구가 없을까? 아이가 학교에서 괴롭힘을 받지 않을까? 걱정이 끝도 없다.

조심스레 공유에게 친한 친구가 누구인지 물어보았지만 모른다는 무성의한 답변으로 나의 마음을 한번 더 철렁하게 한다. 동욱이는 친구들과 노느라 정신이 없어 집에 있지를 않는다며 동욱이 엄마가 통화 중에 걱정이 늘어졌는데 우리 공유는 지금도 혼자 집이다. 답답한 마음에 건 전화에 불안은 더 커지고, 우리 공유가 친구들과 잘 어울리지 못하는 것을 다시 한번 확인했을 뿐이다.


공유의 친구들은 어디로 사라진 걸까?


사실 공유는 남들이 말하는 사회성 좋은 아이가 아니었다. 초등학교 1학년에 들어가서 생일 초대를 받지 못하고 울던 날, 난 알게 되어 버렸다. 우리 아이의 사회성에 대한 막연한 불안과 의문 역시 그날 해답은 정해진 듯 무너진 마음처럼 밀려왔다.

 그런데 나는 사회성이 좋은 건가?

나 역시 공유가 초대받지 못한 생일파티에 아는 학부모도 없었고 알고 싶은 사람도 없었다.

아이를 통해 나를 돌아보게 된다.

난 친구가 있나? 근데 사회성이 뭐길래 다들 사회성이 좋다, 나쁘다 하며 평가하는 걸까? 갑작스런 생각의 홍수에 머리가 멍해진다.

분명 카톡의 친구, 페이스북의 좋아요를 누르는 사람들이 친구는 아닌데... 걱정스런 눈으로 혼자 컴퓨터를 하고 있는 공유를 보며 복잡한 얼굴이 되어 한참을 서있었다. 공유는 대체 친구가 뭔데 내가 친구가 없다고 생각하냐며 오히려 날 걱정하고 있다.


공유와 친구에 대해 이야기를 좀 나누기로 한 날, 나는 나의 친구들에게 연락을 해보았다.  친구들의 힘이 필요했다. 친구의 정의에 대해 아이와 이야기를 하는 것은 쉽지 않을 것을 느꼈기 때문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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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의 많은 아이들은 현실세계의 친구들과의 대화나 만남을 이미 어려워합니다. 선생님이나 어른들 혹은 선후배들과는 잘 지내지만 유독 또래집단과 함께 지내는 것을 어려워하는 아이들은 때로는 스스로를 고립시키면서도 자신이 왕따라며 불안해하곤 합니다. 친구관계가 꼭 또래관계여야 할 이유는 없습니다. 하지만 그것이 가장 강하게 지켜지는 시간인 10대 학창 시절을 살고 있는 아이들은 반에서 혼자 지내며 스스로 문제가 있을지 모른다는 생각을 하고 살게 되고, 그리고 나면 어느새 사회성 없는 어른이 되어버리곤 합니다.

하지만 이 시간을 버티는 것이 많이 어렵더라도 어느 연령의 사람이든 관계를 맺으며 지내는 것이 괜찮은 아이들은 의외로 추후에 문제가 없는 경우가 많으니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동일연령 또래집단의 힘이 가장 강력한 시기는 사춘기 학창 시절이기 때문이고, 사회에 나가면 다양한 연령집단 안에서 내가 편안한 구석을 찾아나갈 수 있기 때문입니다. 친구 역시 그러하고 동갑이냐 아니냐는 더 이상 중요하지 않은 시간이 곧 찾아오게 되는 것입니다. 친구는 동일 연령에서만 발생하는 것이 아님을 사회에 나가면 알 수 있습니다. 그러니 내 아이에게 격려를 해주며 버티는 힘을 주는 것은 중요하고 또 중요합니다. 아이들에겐 친구가 생길 수 있는 준비시간이 필요하기 때문입니다. 누구나 날 때부터 타인과 마음을 나누는 능력이 생기는 것은 아니고 마치 수학이나 영어를 배우듯이 사회성도 배워야 하는 하나의 요소입니다. 사회성은 학습이 가능하고 학습해야 하는 것입니다.  혼자만의 삶이 가능하게 된 현대 사회에 사회성을 배워야 하는 것은 공유만이 아닙니다.


 사실 혼자 있는 것이 익숙한 아이들은 자신만의 세계에 빠져있는 경우가 많습니다. 이런 시기에는 친구관계를 맺는 것이 낭비라는 생각이 들 때도 있고 세상에 날 이해하는 사람이 없다는 것이 힘들게 느껴져 힘듭니다. 또래들의 취향과 차이가 있는 아이라면 더욱 이해받는 것이 어렵다 생각합니다. 하지만 가족과의 관계, 부모와의 관계가 나쁘지 않다면 내 아이의 사회성을 크게 걱정할 필요는 없습니다.

인간이 혼자 지낸다는 것은 어려운 일입니다. 자신을 이해해주는 사람과 함께 하는 것은 너무나 중요하지만 그것이 타인이기에 쉽지 않고, 가족도 특수한 관계지만 타인이기 때문에 나와 내 아이의 관계는 꽤 괜찮다면 조금의 연습이면 충분할 것입니다.

개인의 차이가 있을 뿐 친구와 사회성 모두 누구에게나 어려운 것입니다. 혼자 있는 것이 아무렇지 않은 사회적 분위기가 되면서 10대 시절의 친구관계에 대해서만 관심을 갖는 분위기를 도리어 이상하게 생각하는 것이 맞을 것 같다고 생각이 듭니다. 어느 시간이나 나를 온전히 이해하고 지지해주는 타인인 친구가 생긴다는 것은 중요한 문제이기 때문입니다. 사실 중요한 것은 반대로 함께 관계를 맺는 상대에게 내가 그런 사람이 되고 있는지 살필 수 있는가를 가르쳐주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것이 타인과 관계를 맺기 위해 가장 먼저 배워야 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관찰과 이해, 공감을 통해 관계는 조금씩 적립되어 가고 친구가 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조금 늦어져도 진정한 관계를 맺을 수 있는 힘은 누구나 있습니다. 나의 첫 친구를 생각하고 그 시작과 지속을 돌아보면 내 아이에게 줄 수 있는 팁은 늘어나 있을 것입니다. 함께 드라마나 영화를 보며 관계를 관찰하고 그 관계를 현실에서 차용하는 연습도 좋습니다. 책은 언제나 너무나 좋은 스승이지만 요즘은 생생한 시청각 교재들이 많으니 아이들도 부모들도 배울 곳이 많아진 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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