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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수미니마니모 Oct 18. 2021

좋은 것은 좋다는 것만으로 충분하니까.

환경팟캐스트 <디스이즈웨이스트유니버스>의 시작

  준비만 몇 달을 했던 환경 팟캐스트 <디스이즈웨이스트유니버스>. 좀 늦은 감이 있었지만 두 번째 첫 녹음을 무사히 잘 마쳤다(사실 글이 늦어서 벌써 두 번째 녹음과 업로드까지 마쳤다). 팟캐스트는 두 번째라 두 번째 첫 녹음이 된 것인데, 이 부분이 괜히 뿌듯하기도 하고 좋기도 하고 아쉬운 마음도 있는 터라 글로서 남겨두고 싶었다.


  디스이즈웨이스트유니버스는 말그대로 갑자기 탄생했던 상품이다. 올해 초에 강선생(현 남자친구)과 이야기를 하다가 정말 뜬금없이, 꿈이 뭐냐고 물으니, 또 예상치 못하게 진짜 꿈이 나왔다. 클래식 문화를 향유하기 어려운 저소득 취약계층 아동들에게 폐플라스틱을 활용해 악기를 만들어주고 싶고, 그 아이들과 함께 연습해서 오케스트라 연주를 해보고 싶다고.


뭐야, 진짜 멋있잖아? 하자.


  신나서 바로 해보자는 나를 전혀 기대감도 없이 바라보며 가볍게 답변하던 그의 표정이 기억난다. 그러나 나는 언제나 그랬듯, 좋은 것은 내가 하고 싶었다. ‘마냥 좋은 게 좋은 거지’와 같이 언제부터인가 무책임한 어감을 주는 그런 느낌 말고,  좋은 것들은 그저 그것만으로 충분하다는 느낌으로 말이다. 만들어보자고 하며 자꾸 이야기하고 쿡쿡 찌르자 강선생도 점차 반응이 왔고 결국 실행에 나섰다.





  한창 추웠던 겨울에 우리 둘은 장갑까지 끼고 롱패딩을 입은 김밥이 되어 무작정 을지로에 갔다. 아무 계획도 없이 갔던 터라 주말에 철물점이나 각종 자재를 팔고 가공하는 기업들이 문을 열지 않으리라는 생각조차 없었다. 막상 도착한 을지로는 힙지로라고 익히 알고 있던 것과 달리 꽤 을씨년스러웠고, 유명하고 예쁜 카페들도 코로나와 추위를 피해 문을 굳게 걸어 잠그고 있었다. 멀찍이 허공에 대고 욕지거리를 하는 사람들과 날을 잘못 맞춘 연인들, 쉬는 날 일하러 나온 상인들만 군데군데 눈에 띄었다.

 

  우리는 상황에 굴하지는 않았다. 그저 새롭고 재밌을 것 같은 일 덕분에 이상할 정도로 들뜬 상태였다. 장갑을 끼고도 추운 손을 자꾸만 움켜쥐고, 철물점이라고 퉁쳐서 알고 있었으나 사실은 모두 달랐던, 수많은 종류의 가게 문을 두드렸다. 지금 떠올려보면 이때의 들어갈까 말까 고민했던 순간의 분위기와 느낌은, 마치 부동산에 처음 방문하는 20대 초반의 그것이었다. 왠지 초짜인 나를 금방 알아보고 상대해주지 않을 것만 같은 느낌이랄까.

  게다가 그냥 금형을 만듭니다, 라고 써있지 않고 정밀 / 금속 / 기계 / 전기 이런 식으로 따로 써있다보니 어디에 들어가야 할지도 난감했다. 다행히 혼자가 아닌 강선생과 함께였기에 슬금슬금 아무 가게나 안으로 몸을 들인 다음 어디를 가야 하는지부터 묻기 시작했다. 불퉁스럽기는 했지만 결국 목적지를 알려주시는 친절한 사장님들의 도움으로, ‘정밀’이라는 곳에 가야 한다는 것을 알게 되는 큰 소득을 얻었다.

  ‘정밀’이라고 이름 붙은 곳은 파열음이 지속적으로 났고 우리가 발을 들여도 나오는 이도 없었다. 문을 탁 닫고 들어선 그곳들은 모두 다른 세상 같았다. 소리만이 존재하는 세상. 강선생은 밀어붙였던 나보다 신이 나서 사장님을 찾고 부르고 필요한 것들을 이야기하며 정보를 얻었다. 멀뚱해진 나는 사진을 열심히 찍었는데 그 공간에 있는 나마저도 괜히 멋진 것 같아서 뿌듯하기도 했다.


  그렇게 얻은 정보들은 어쩌면 사소할 수 있지만 우리에게는 더없이 소중했다. 그날 이후 바빠져 일에 치여 사는 바람에 마음 한 켠에 넣어두고 아주 가끔씩 꺼내보기만 했는데, 서로 함께 생각했다는 것을 몰랐던 우리는 최근에서야 대화를 통해 알게 되어 행동하기로 했고 기록을 시작했다. 마침내 기록되지 못한 채 날 것의 형태로만 남아있던 기억들은 10월이 된 지금에서야 팟캐스트를 통해 나올 수 있었다. 

  다만 당시의 을지로 현장조사를 통해 깨닫기로는 악기를 만드는 데 큰 비용과 고도의 기술이 필요했다. 나는 목표 자체의 부피를 키워 폭넓은 목표를 가져보자고 제안했다. 그래서 우리는 폐플라스틱의 일상적이면서도 의미있는 활용을 목표로 하는 원더웨이스트유니버스를 꿈꾸게 되었다. 팟캐스트의 이름은 조금 변화를 주어 <디스이즈웨이스트유니버스>가 되었다. 디스이즈웨이스트유니버스에서는 우리가 고군분투하는 모든 과정을 기록하게 될 텐데, 짧을 때도 길 때도 있을 것이고 조금은 미숙하기도 할 것이다. 하지만 뭐 어떠랴. 좋은 것이라 믿어 의심치 않는걸.


시작의 위치에 있는 내가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은 그저 좋은 것을 하는 것, 
그리고 지금의 여력으로도 충분해서 쉽게 중단하지 않는 것이다.



결국 좋은 것을 지속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지 않을까.


  첫 녹음 때는 땀을 뻘뻘 흘렸던 강선생도 두 번째가 되니 보송보송했고, 나 또한 오랜만의 오디오 편집이라 버벅댔으나 금방 적응했다. 한 번 경험을 해봐서인지 더욱 수월하고 재미있었고, 오히려 나도 소화시키지 못했던 방대한 양의 정보를 편집하는 것보다 심적인 부담도 덜했다. 음악 저작권 때문에 첫 클립 업로드부터 차질을 빚어 계획보다 늦어지긴 했으나, 우리는 시작을 했다. 시작을 하고 밀어붙이고 끝까지 하는 것은 내 전문이니까(강선생이 그렇다고 했다.) 난 지금 엄청나게 자신이 있다!

  






⭐️함께 보면 좋은 글

저는 디스이즈웨이스트유니버스라는 제목의 팟캐스트를 통해, 꿈꾸는 세상을 만드는 작지만 강한 걸음걸음을 들려드리려고 합니다. 본 매거진에서는 팟캐스트인 디스이즈웨이스트유니버스 뿐만 아니라 원더웨이스트유니버스를 만들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저희의 속이야기를 알려드릴 예정입니다. 많이 많이 기대해주세요. 협업문의나 제안은 wwuniverse@naver.com으로 보내주세요:D



⭐️함께 들으면 좋은 팟캐스트

프롤로그에서는 환경새싹성장기 <디스이즈 웨이스트유니버스>의 목표와 진행자에 대한 간략한 소개를 합니다. 저희가 팟캐스트를 시작하게 된 계기와 생각들을 가감없이 15분 안에 들어볼 수 있어요. 처음이라 좀 어색한 것은 양해 부탁드려요~:>


ep.1 폐플라스틱의 활용을 찾는 그간의 여정에서는 본문에서 말씀드렸던 을지로 현장조사 시 알게 된 내용을 본문보다 더 자세히 말씀드립니다. 구체적인 금액과 그날의 분위기를 생생하게 들어보시면 좋을 것 같습니다. 만족하셨다면 구독과 좋아요는 사랑입니다<3 그럼 앞으로 잘 부탁드릴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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