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 좋은 날이 왔다.
날이 좋다. 그 어느 때보다 탁한 뉴스밖에 없는 요즘이지만, 햇살은 눈부시다.
어제도 날이 좋았고, 그제도 날이 좋았지만, 오늘에서야 집 밖을 나서보았다.
원체 날 좋은 날을 아까워하는 사람이라 이런 눈부심을 가만히 두고 볼 수 없는 성격인데, 무려 이틀을 허송세월 보내버렸다.
오늘은 안 되겠다 싶어 혼자 또 페달을 밟았다.
집에서 가장 가까운 한강 공원으로 향했다. 사람들은 북적였고, 햇살은 어느 때보다 눈부셨다.
동과 서로 나뉘는 갈림길에서 어느 쪽으로 가야 할지 몰라 고민했다.
내게 서울의 동과 서는 상당히 다른 구역이었다.
서울살이 대부분을 동쪽에서 보냈고, 그렇기에 서쪽은 낯설었다.
왜인지 동쪽으로 가면 안 될 것 같아서 서쪽으로 페달을 밟았고, 자그마한 한강 공원에 도착했다. 처음 가보는 곳이었다.
아담한 그 공원에도 사람이 북적였고, 바람이 세차게 불었다.
처음 오는 곳이라 그런지 모든 게 낯설었다. (당연히 모르는 사람들이지만) 사람들도 낯설었고, 공기도 낯설었다.
한국이 아닌 것 같은 이유 모를 동떨어짐을 느꼈다.
애써 그 낯섦을 무시하고 계단에 앉아 물비늘을 바라보았다. 갈대와 일렁이는 그 광경이 몹시나 아름다웠다.
그리고 그제야 정말 ‘봄’이 오는 것이 조금 두려웠다.
이 따뜻한 계절이 주는 상대적 괴리감이란. 오늘 조차 그걸 느꼈는데, 앞으로의 봄날은 어떨까 싶었다.
봄을 사랑하고, 햇살을 사랑하는데, 감히 올봄에도 그래도 될까?라는 의심이 들었다. 그 괴리감이 두려니까. 무서우니까.
봄은 행복한 계절이니까.
올봄을 어떻게 날 지 아직 잘 모르겠다.
온전히 이 계절을 만끽할 수 있을지, 아님 지금 내 감정을 무시하며 지내는 것처럼 이 봄날도 무시해버려야 하는 건지.
어느 쪽이든 애처롭다. 어쩌다 이런 처지가 되었을까.
그렇게나 기다려온 봄날인데 말이야.
웃고 싶다. 잇몸을 드러내며 정말 행복하게 웃고 싶다.
메마른 겨울이 지나면 메마른 감정도 지나버릴 것 같았는데.
차라리 여름이 바로 오면 좀 나아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