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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무정체성 Apr 13. 2020

말랑말랑 대롱대롱

나도 토마토를 먹을 수 있을까?

운동 다녀오는 길에 미니 토마토 뿌리와 청상추 모종을 샀다.

오늘도 햇살은 좋았고 자전거에 담긴 모종과 프리지아 꽃은 귀했다.

그리고는 화분을 잔뜩 사서 베란다에서 분갈이를 하는 저지레를 했다.

어쩌다 보니 거실 한 켠은 화훼단지가 됐다.


아무래도 어제 정주행 끝낸 <멜로가 체질> 때문이었다.

손범수 감독이 마지막화까지 집에서 방울토마토를 따먹었기 때문이었다.

드라마에서 방울토마토가 처음 등장한 건 범수 감독이 진주 작가에게 검은 비닐봉지를 건넸던 순간, 그 민망한 순간이었다지.

여러 멜로가 나왔고 감정 이입이 되는 멜로는 따로 있었지만, 보는 이도 행복하게 만드는 커플은 단연 범수 감독과 진주 작가였다.

간만에 드라마를 보며 눈물도 찔끔 흘리고 미소도 지어보는 황홀한 작품이었다.

아직도 여운이 가시질 않으니 길 가다 ‘흔들리는 꽃들 속에서~’만 나와도 멜랑꼴리해질 정도다.


대사 하나하나가 참 감정을 건드렸다. 무미건조하게 살았었는데. 감정 따윈 무시해버리고 살았었는데. 덤덤하게 기계처럼 살았었는데.

애써 무시해왔던 감정들이 올라오는 걸 보고 ‘그치? 나도 인간이지. 나도 설렘이 뭔지 알고, 행복이 뭔지 알고, 사랑이 뭔지 아는 인간이었지.’라며

또 한 번 말랑말랑해지곤 했다.


물론 그제와 어제 <부부의 세계>를 본방 사수하며 이 행복함은 순간 홀연히 사라지기도 했지만.

다행히도 그 문제적 드라마가 끝나고 바로 <멜로가 체질> 마지막화를 보며 다시 말랑한 감정을 되찾았다.

(어제 예고편에서 바람난 년놈을 우위에 두는 <부부의 세계> 스토리라인을 보곤 자체 종방 했다. 굳이 김희애를 미친년으로 만들다니 작가 제정신이냐?)


어쨌든 이 두 드라마의 간극을 오가며 온탕과 냉탕 마냥 감정선도 왔다 갔다 했지만,

결국에 난 토마토 화분을 집에 들였고 물도 듬뿍 줬다.

내 여운은 거기에 머문다.

얼른 토마토가 대롱대롱 달리면 좋겠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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